송새벽 "춘향 희롱장면은 음주연기..맨 정신으론 도저히.."

[JES 김범석] "아버지가 소설가이신데 며칠 전 '방자전'을 보셨나 봐요. 전화로 '재미는 있는데 아따 좀 거시기 하더라'며 웃으시더라고요. 제가 야하다는 말씀을 미리 못 드렸거든요."
영화 '방자전'의 히든카드 송새벽(31)이 주목받고 있다. 이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은 '전반전은 오달수, 후반전은 송새벽'이라며 두 배우에게 두둑한 갈채를 보내고 있다. 여자 꼬드기는 일에 관심 많은, 문제적 인간 변학도를 이 배우 만큼 완벽하고 능청스럽게 연기할 수 있을까.
▶ 봉준호가 픽업
그런데 이 남자, 어디서 본 듯 싶다. 맞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 용의자 원빈의 입에 사과를 물리고 돌려차기를 한 세팍타크로 시골 형사다.
송새벽의 활동 반경을 대학로에서 충무로로 넓혀준 이는 봉준호였다. 신선한 얼굴을 찾기 위해 2007년 동숭동을 찾은 봉준호는 우연히 극단 연우무대의 작품 '해무'를 보고 무릎을 치게 된다.
고기가 안 잡혀 조선족 밀항에 가담한 뱃사람 얘기를 다룬 이 연극에서 송새벽은 주인공인 막내 선원 동식을 연기했고, 봉준호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동아연극상 수상작이기도 한 '해무'는 전남 여수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을 극화한 작품이다.
"하루는 공연 끝나고 분장을 지우는데 누가 '오늘 봉준호 감독이 다녀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며칠 뒤 원빈씨와 다시 우리 공연을 보러와주셨어요. 참, 신기한 일도 다 있다 싶었는데 덜컥 '마더' 오디션 제안을 받았죠."
마침 '방자전'을 본 봉 감독은 송새벽에게 '이제 새벽씨 덕 좀 보게 되는 건가요'라는 축하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군산동고를 나와 군산대 철학과에 입학했지만 그의 관심은 철학개론이 아니었다. 교내 연극동아리 마당과 군산에 있는 극단 사람세상에서 연극에 빠져 20대 초반을 바쳤다. 무작정 상경해 극단 연우에 입단한 건 제대 직후인 2002년. 연우는 강신일, 송강호, 김뢰하 등이 거쳐간 연기파 배우의 산실이다.
"2000년 1월 육군으로 입대했는데 전경으로 차출돼 경기도 화성에서 근무했어요. 매향리 사격장 반대 시위와 대우자동차 노사 대립 때문에 시간이 금세 갔죠.(웃음) 신기한 건 말년이 돼도 사회 나가서 뭘 해야 될지 고민이 전혀 안 되는 거예요. 할 줄 알고 가장 자신 있는 게 연극이었으니까요. 먹고 사는 문제는 어떻게 되겠지 하며 아주 낙관했어요.(웃음) 일단 극단에만 들어가면 잠 잘 곳은 생기는 거니까요."
말은 그렇게 해도 생활고 때문에 신문 배달부터 식당 알바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몸은 고달팠지만 무대에 오를 때 느끼는 희열과는 바꿀 수 없었다며 머쓱하게 웃었다. 대학도 졸업을 1년 앞두고 미등록 제적됐다.
▶ 햄릿형 인간
송새벽은 '방자전'에서 가장 힘들게 촬영한 장면이 춘향으로 출연한 조여정을 학대하는 신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태어나서 여자를 때린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따귀신에서 계속 NG가 나니까 여정씨가 '저, 괜찮으니까 세게 때리세요'라고 하더라고요. 작고 예쁜 얼굴에 손을 갖다대는데 어찌나 죄책감이 들던지. 가슴 만지며 희롱하는 장면은 죽어도 맨 정신으로 못 찍을 것 같아서 감독님께 소주 마시고 하겠다고 허락 받았어요. 거의 한 병을 다 비우고 연기했죠."
순한글 이름은 작은 아버지가 '동틀 때처럼 밝게 살라'는 의미로 지어줬단다. 영어 강사인 여동생 이름도 송새로나다.
"이름 때문에 학기 초마다 시달렸죠. 새벽종이냐, 인생 종쳤냐 같은 놀림을 수없이 들었어요. 그래도 한번 들으면 절대 못 잊어 버리죠.(웃음)"
관객 반응이 궁금해 혼자 영화를 보러 간 일화도 공개했다.
"집 근처 대학로 CGV에서 영화 상영이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뒷좌석에서 한 여성 관객이 '야, 저거봐. 변학도 이름이 송새벽이래. 엄청 깬다'며 웃더라고요. 마음 같아선 '그게 접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얼굴이 벌게져 맨 나중에 나왔어요."
기회와 위기는 함께 온다는데 혹시 요즘 두려운 게 있을까. 한참 생각에 빠진 송새벽은 조심스럽게 "관객에게 휘둘리는 연기를 하게 될까 봐 겁난다"고 했다.
"제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데 저도 모르게 관객에게 의존하는 배우가 될까 봐 두려운 거죠." 이 남자, 볼수록 생각이 많은 햄릿형 인간이다. 휴대전화 액정화면에 '느끼라 온전히'라는 글을 입력해놓은 것도 자기와의 싸움에서 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예상했지만 송새벽은 벌써 많은 감독들에게 선택됐다. 6월초 크랭크 업 한 설경구 주연 '해결사'에선 오달수와 형사로 출연했고, 7월부턴 '제7광구' 촬영에 합류한다.
'방자전'을 찍으며 그를 눈여겨본 류승범은 자신이 출연하고, 형(류승완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부당거래'에 송새벽을 추천했다고 한다.
"감사하죠. 별 것도 아닌 저한테 이렇게 많은 기회를 주시니까요. 한번 뿐인 인생인데 부끄러움을 아는, 그러나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될 겁니다."
김범석 기자 [kbs@joongang.co.kr]사진=이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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