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롯데와 호텔신라의 면세점 경쟁

호텔롯데 면세사업부인 롯데면세점이 AK면세점을 인수했다는 소식과 함께 '딸들의 면세점 경쟁'이 재계의 화젯거리가 됐다.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은 각각 대표이사가 있긴 하지만(롯데면세점 : 최영수 대표이사, 호텔신라 : 성영목 대표이사) 실제로는 신영자 롯데면세점 사장(롯데쇼핑 사장 겸임)과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가 양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면세점업은 롯데그룹과 삼성그룹 두 그룹 간 딸들의 전쟁이나 다름없다.
지난 5월 초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면세점의 AK글로벌 인수가 면세점시장에서 실질적으로 경쟁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며 인수를 승인했다.
공정위는 "두 회사 결합 이후 롯데면세점의 서울시내 면세점 시장점유율이 57%로 1위 사업자 지위가 공고해지긴 하지만, AK면세점 점유율이 4.7%에 그치고 호텔신라(25.7%) 등 유력한 경쟁사업자가 있어 경쟁을 제한할 가능성이 낮다"고 설명했다. 롯데면세점 모회사인 호텔롯데는 지난해 12월 AK면세점 주식 81%를 취득한 뒤 올 1월 기업결합 신고서를 공정위에 냈다.
롯데 점유율 신라 2배
롯데면세점의 AK면세점 인수는 그룹이 추진하는 '2018년 비전'과 관계가 깊다.
롯데그룹은 '2018년 아시아 톱 10 유통기업'을 지향한다. 그에 맞춰 각 계열사들도 2018년까지 달성해야 할 목표가 할당됐다. 2008년 롯데면세점 대표이사가 된 최영수 대표는 '2018년 기대매출액 6조원, 글로벌 톱3 면세점 업체로의 부상'이라는 비전을 세웠다.
그 비전을 향한 첫걸음이 바로 이번 AK면세점 인수다.
현재 롯데면세점은 서울 소공점·잠실점·부산점·제주점 등 시내면세점, 인천공항점·제주공항점 등 공항면세점, 인터넷면세점 2개 등 총 8개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롯데면세점 매출액은 1조6500억원, 시장점유율은 46.5%다. 여기에 코엑스점, 인천공항점, 김포공항점의 AK면세점 매출액 2986억원을 합치면 매출액은 일약 2조원대로 올라선다. 전체 시장점유율은 AK면세점의 8.9%를 합쳐 54.4%로 늘어난다. 2위인 호텔신라(27.6%)와의 격차는 두 배로 벌어진다. 이번 인수를 계기로 최영수 대표와 성영목 사장 표정은 정반대가 됐다.
롯데면세점의 AK면세점 인수는 단순히 시장점유율을 몇 % 더 올리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최영수 대표는 이번 인수를 통해 명실상부 '글로벌 면세점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희색을 감추지 않는다. 현재 롯데면세점은 국외 면세점을 단 한 곳도 보유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 세르메치예보공항에서 액세서리와 선물용품을 판 적이 있지만 적자를 거듭하다 지난해 8월에 아예 철수했다. 그러나 세르메치예보공항은 러시아와 롯데의 남다른 인연에 기대 아주 작은 규모로 입점한 것으로, 진정한 의미의 국외 진출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제대로 된 첫 국외 진출 시도는 2006년이다. 싱가포르 창이공항 입점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에 참가했다.
롯데면세점은 마지막 절차까지 갔지만 입점업체로 선정되지 못했다. "왜 탈락했는가?"라는 질문에 "공항면세점에서 전 품목을 취급해본 적이 없지 않은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 롯데면세점은 국내 최강자 면세점이라는 위상에 어울리지 않게 유독 공항면세점에서 빛을 발휘하지 못했다.
2006년 당시 롯데면세점은 인천공항점에서 화장품과 향수만 취급했다. 주류, 담배 판매권을 얻지 못했기 때문.
인천공항점 2기 입점업체 선정에서는 거꾸로가 됐다. 주류, 담배 판매권을 얻은 대신 화장품, 향수 판매권은 AK면세점에 뺏겼다. 결과적으로 단 한 번도 공항면세점에서 전 품목을 취급한 경험을 가질 수 없었다. 이번 AK면세점 인수로 롯데면세점이 드디어 '전 품목 취급 경험'을 얻게 된다.
그뿐인가. 50%에 육박하는 시장점유율이 무색하게 인천공항점에서는 독보적인 1위는커녕, 그냥 1위와도 거리가 멀었다.
현재 인천공항 면세점 시장점유율은 호텔신라면세점이 38.3%, 롯데면세점 37.2%로 신라가 조금 앞선다. AK면세점 시장점유율 13.9%를 보태면 롯데면세점은 신라면세점을 제치고 인천공항점에서도 1위로 올라선다.
최영수 대표는 2008년 롯데면세점 대표가 된 이후 글로벌 면세점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왔다.
그 첫 번째 행보가 '다모델 전략'이다. 최 대표는 취임 직후 배용준 한 명이던 전속모델을 여러 명으로 바꾸는 작업을 지시했다.
현재 롯데면세점 전속모델은 비, 빅뱅, 최지우, 송승헌, 박용하, 강지환, 지성, 동방신기(탈퇴하지 않은 3명) 등 총 여덟 명이다. 아시아 국가별로 해당 국가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모델을 내세운다는 '따로 또 같이' 전략이다. 최 대표는 다모델을 기반으로 한 한류마케팅이 향후 롯데면세점의 국외 진출에 큰 힘이 돼줄 것으로 믿는다.
한류마케팅 전략은 또 롯데면세점의 외국인 비율을 높이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현재 롯데면세점의 외국인과 내국인 비율은 50:50가량으로 여타 면세점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최 대표는 이 비율을 향후 70:30(외국인:내국인)까지 끌어올린다는 생각이다.
원래도 롯데면세점과 큰 차이가 나는 2위였지만 이제 그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된 호텔신라의 성영목 대표 얼굴은 당연히 더욱 어두워졌다.
사실 성 사장도 AK면세점에 군침을 삼켰다. 그러나 롯데면세점이 워낙 공세적으로 나서면서 호텔신라는 뒤로 물러앉았다. 게다가 공정위가 인수를 승인한 직전인 지난 4월 호텔신라는 부산파라다이스면세점 인수를 추진하다 실패했다. 재무통에서 유통전문가로 변신한 후 호텔신라 면세유통사업을 총괄하다 2007년 51세 나이에 당시 사장 승진자 중 최연소로 사장이 되는 등 승승장구해온 성 사장인 만큼 더 뼈아프게 됐다.
롯데 '국외진출 계기' 기대
면세사업은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할 수 있다. 당시 면세점 허가권을 쥐고 있는 관세청은 '호텔신라가 부산파라다이스면세점 면세사업권을 양도받는 게 법에 맞지 않다'는 해석을 내렸다.
부산파라다이스면세점에 면세사업권을 준 것이므로 부산파라다이스면세점이 임의로 이 면세사업권을 제3자에게 팔 수 없다는 것. 부산파라다이스면세점은 면세사업권을 반납하고 호텔신라가 새로 면세사업권을 신청하라는 게 당시 해석의 핵심이다.
그러나 면세점이 원래 취지인 외국인들의 쇼핑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내국인이 명품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통로로 주로 활용된다는 측면에서 2000년대 들어 정부는 면세사업권을 신규로 내주는 것을 자제해왔다.
호텔신라가 새로 면세사업권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셈. 엄밀하게 따져 부산파라다이스면세점의 면세사업권을 사려 했던 호텔신라로서는 굳이 거래를 계속할 필요가 없어졌다.
부산파라다이스면세점 인수 실패에 이어 AK면세점까지 롯데에 뺏긴 호텔신라 측은 올 하반기에 있을 김포공항면세점 입찰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계획이다.
이번 AK면세점 인수를 통해 확고했던 1인자 지위를 더욱 굳히고 더 나아가 글로벌 업체로의 성장 기반을 마련했지만 그렇다고 최영수 대표가 모든 고민거리를 떨쳐버린 것은 아니다.
가장 큰 관문이었던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쟁 제한성' 심사는 통과했지만 아직 관세청의 '면세사업권 승계'와 인천공항공사의 '임대업체 변경'과 관련된 협의는 남아 있다.
이 중 호텔신라의 부산파라다이스면세점 인수 추진 불발 과정에서 이미 지켜본 것처럼, 관세청의 '면세사업권 승계'가 관건이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조심스럽게 "호텔신라 사례에서 본 것처럼 롯데면세점의 AK면세점 인수 건에서도 관세청이 면세사업권 승계를 인정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롯데면세점이 AK면세점의 공항 내 화장품, 향수 면세사업권에 욕심이 있는 만큼, 면세사업권 승계가 이뤄지지 않으면 롯데가 AK면세점을 인수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렇게 될 경우 롯데면세점의 AK면세점 인수는 물거품이 된다"고 귀띔한다.
한편 최영수 롯데면세점 대표 딸은 5월 말 결혼 예정인 가수 '티티마' 출신 진경(본명 최진경)이다.
[김소연 기자 sky6592@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57호(10.05.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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