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얄개'를 기억하십니까
[오마이뉴스 이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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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토요일 오후에 영화 보러 갈까? 아주 재미있는 영환데.""너, 고교얄개 보러가자는 거구나. 맞지?""야, 그걸 어떻게 알았지, 내가 영화 제목도 아직 말하지 않았는데...""하하 그거야, 척 하면 알지, 그걸 모르겠어, 난 벌써 보았는걸, 히히히."1970년대 중반 한창 인기를 날렸던 영화 '고교얄개'는 당시 고교생들과 청소년들에겐 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영화였다. 석래명 감독 작품으로 고교 2학년 낙제생 나두수로 이승현이 열연한 소문난 얄개는 같은 낙제생이자 단짝인 병원집 아들 용호와 함께 예배시간에 코골며 잠자기, 자명종으로 선생을 속여 수업 일찍 끝내기며 온갖 장난을 일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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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선생인 백상도로 출연한 하명중, 그의 하숙집인 구멍가게 딸 인숙이 역의 강주희 등이 출연한 코미디영화로 당시 고교생들인 지금의 50대 초 중반들에게 인기절정의 영화였었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고교얄개를 떠올리게 한 곳은 서울 강북구에 있는 북 서울 꿈의 숲 아트센터 드림갤러리였다.
공원 안에 있는 이색적인 공간인 이 갤러리에서는 지난 12월 23일부터 이달 말인 1월 31일까지 '아빠 학교 가는 길'이라는 추억어린 옛 시절 생활상 전시를 하고 있다. 이 전시관 앞에 이르면 입구 문틀 위에 바로 '고교얄개' 영화포스터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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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영화 당신도 봤어? 그땐 정말 재미있었는데.""물론이지, 그런데 지금은 더 좋은 영화를 봐도 그때만큼 재미가 없는 것 같아."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소곤소곤 나누는 이야기다. 입구 옆에는 그 시절의 남녀학생 교복을 입은 마네킹들이 서있어 금방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 이것저것 구경하노라면 세월은 어느새 수십 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역시 1960~7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코미디언 서영춘 쇼 공연포스터와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절 방안을 밝혔던 석유램프와 숯을 넣어 사용했던 다리미가 눈길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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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는 사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시절 발행되었던 아리랑이며 명랑, 사랑, 신태양, 흥미 로맨스 같은 수십 종의 잡지와 선데이 서울. 주간경향 같은 주간지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잡지와 주간지의 겉표지 모델로는 당시 여배우 트로이카로 명성을 날렸던 문희, 남정임, 윤정희의 얼굴도 볼 수 있었다.
또 제법 넓은 공간에 꾸며져 있는 교실도 옛날 모습이 재현되어 있었다. 더구나 요즘 같은 추운 겨울철에 학생들이 가져온 도시락을 난로 위에 수북하게 쌓아 놓은 모습과 교실 안 풍경이 아련한 옛날을 떠올리게 한다.
길가에는 초라한 모습의 다방도 차려져 있고 전파사와 이발소, 아주 소박한 모습의 가정 집 방안도 꾸며져 있다. 가난한 서민들이 이용하던 곳들이고 살림살이어서 여간 정겨운 풍경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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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벽면에 세워져 있는 선반에는 그 시절에 학생들이 들고 다니던 책가방들과 신발주머니, 운동화들도 옛날 모습 그대로 진열되어 있었다. 더구나 작은 잡화가게에는 볏짚으로 열 개씩 가지런하게 싸매놓은 달걀꾸러미가 예스럽고, 사각, 팔각형의 통성냥과 풍선들도 정겨운 모습이다.
담배 가게도 예스럽게 꾸며져 있기는 마찬가지, 그 시절엔 고급담배였던 샘, 은하수, 한산도와 태양, 신탄진과 아리랑도 진열되어 있었고, 노동자, 농민들이 신문지에 뚤뚤 말아 피웠던 풍년초도 한 자리를 차지하여 진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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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뭔지 알아? 아이스케키~ 아이스케키~.""맞아! 맞아! 저거 바로 그거야, 얼음과자 아이스께끼~ 바로 그거야 호호호."오십대 부부의 웃음소리를 듣고 살펴보니 구멍가게 한쪽에는 정말 그 시절에 거리에서 어깨에 메고 다니며 팔던 아이스케키 통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아이스케키 통은 그 시절에 사용하던 것인 듯 빨간 페인트로 '일중당 17번'이라고 쓴 번호표지까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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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변소치우는 똥통이잖아?""저쪽에는 연탄가게도 옛날 모습 그대인 걸"골목길 옆에는 작은 연탄가게와 재래식 화장실의 오물을 퍼내어 치워주던 똥지게와 똥통도 있었고, 그 옆에 세워져 있는 통나무 전봇대에는 '소변금지'라는 경고문과 함께 가위까지 그려져 있어 웃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구석진 골목길에는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육중한 쓰레기통이 놓여 있고 그 옆에는 부스러진 연탄재도 보인다. 바로 그 옆 담벼락에는 '삼천만의 소망이다. 통일심어 식량자급'이라 쓴 다수확 벼 품종인 통일벼 재배 독려 캠페인과 그 맞은편 벽에는 어느 국회의원이 자신의 선거구에 배포한 1년 12개월이 종이 한 장에 인쇄되어 있는 달력이 아닌 연력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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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바로 안쪽에 놓여 있는 유성기에선 그 시절의 가요와 팝송이 울려나오고 벽에 붙어 있는 간첩신고 독려 포스터와 슬픈 영화포스터, 그리고 도지사와 계엄사령관의 담화문이 암울하던 시절의 사회상을 말해주고 있었다.
전시되어 있는 모든 것들은 옛 시절 그 모습으로 꾸며져 있어서 오래전 그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으로 다가온다. 안쪽 골목길 다른 한쪽 벽에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가족계획 포스터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요즘은 제발 아이 좀 많이 낳자고 홍보하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엄마! 정말 저런 시절이 있었어?"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청소년은 가족계획 포스터를 보며 정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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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엄마가 너 낳기 이전 큰 오빠 낳을 무렵까지도 별로 낯설지 않은 홍보용 광고였거든."
엄마는 별로 새삼스럽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이번 전시회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관람하며 시대를 달리하여 서로의 이해를 높일 수 있는 훈훈하고 알찬 전시물들도 많았다.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절이었던 1960~70년대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근대생활전시회는 이 달 말까지 전시된다. 이곳에는 각종 포스터는 물론 학교와 이발소, 잡화상, 그리고 전파사와 구멍가게, 만화방 등 다양한 테마별 근대생활물품 1만여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관람료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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