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실업 대안은 청년 창업



◆음지에서 성공한 청년 창업 스토리◆
일자리가 없다. 전례 없던 경기불황 때문이다. 산업구조가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 시대로 접어든 탓이기도 하다. 주변에는 취업 자리를 알아보느라 동분서주하는 청년들이 널려 있다. 입사원서를 수십 장 냈다는 말은 이제 놀랄 만한 얘깃거리도 아니다.
하지만 이젠 생각을 바꿀 때다. 취업에 목매지 말고 창업에 나서라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크다. 용의 꼬리가 되려 애쓰지 말고 뱀의 머리가 되라는 주문이다.
중소기업청은 지난 11월 3일을 제1회 청년기업인의 날로 선포하고, 우수한 경영활동을 펼친 청년사업가들을 포상했다. 변대규 휴맥스 사장,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등 유명 벤처 CEO들은 제2의 창업 붐을 조성하려 대학가로 뛰어들었다. 매경이코노미는 음지를 양지로 바꾼 청년 CEO들을 만나 이들의 도전정신과 꿈을 들어봤다.
수도권 A대 전자공학과 졸업 예정인 김모 군(19)은 한숨부터 푹푹 쉬었다. 9월 중순부터 30곳 이상 입사원서를 냈지만 어디에서도 합격통지서는 오지 않았다. 최종합격은커녕 서류전형 통과도 쉽지 않아 답답해했다. 서울에 사는 그는 한 달 전부터 수도권 회사 취직을 포기하고 지방으로 면접을 갔다. 전남 여수, 충남 대천 등지까지 내려갔지만 최종 합격엔 실패했다.
졸업예정자들은 지난해 일자리를 못 구해 한 해 밀려내려온 선배들을, 이른바 '잉여(인력)'라고 부른다. 이 '잉여'나 아예 '장'기간' '미'취업 상태인 '장미족'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김 군은 "주변 친구들이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러다 해를 넘기는 건 아닌지 마음이 초조해진다"며 "일단 붙으면 어디든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학가에서는 '대학 5년생은 필수, 6년생은 선택'이라는 말이 돈다. 그도 그럴 것이 4년제 대학생 평균 재학기간은 6년이다. 10년 전인 99년 졸업생은 평균 5년 7개월을 학교에 머물렀는데 5개월 늘었다. 이 같은 기형적 대학문화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고용 없는 성장 현실로
한국의 고용 현실은 심각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9월)에 따르면 청년실업률(15~29세)은 7.6%.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청년실업률이 16%, 프랑스의 경우 24%다. 이 수치와 비교하면 한국의 청년실업은 그리 심각하지 않게 여겨진다. 그러나 다른 통계를 보면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
올 10월 기준 15~29세 인구 총 975만명 가운데 경제활동인구는 416만명이다. 경제활동 참가율은 99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가장 낮은 42%다. OECD 평균인 54%와 비교해 크게 떨어진다. 실업률은 낮지 않은데 고용률도 높지 않은 이 모순된 현상은 비경제활동인구 때문이다. 취직 상태도 실업 상태도 아닌, 말 그대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취업준비, 육아, 가사, 쉬었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취업준비생 60만명은 비경제활동인구다. 고시를 준비하는 학원생들도 이에 해당한다. '그냥 쉰다'는 사람도 30만명에 가깝다. 또 실업을 피해 대학원에 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실질적으로는 실업자이면서 실업률에 잡히지 않는 셈이다. 지난 10월 신규취업자가 1년 전에 비해 1만명 늘었다지만, 이는 정부가 한시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희망근로사업 영향 때문일 뿐이다.
문제는 앞으로 나아질 기미도 없다는 것. 경기 팽창이 고용으로 이어지던 기존 경제패턴이 깨졌다. 전문가들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 시대로 들어섰다고 본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겪으며 줄어든 고용은 다시 늘어나지 않았다. 이른바 고용시장의 '이력(Hysteresis) 현상'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한번 줄어든 고용은 웬만해서는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기 힘들다"며 "고용을 늘리는 원동력인 기업의 설비투자도 계속 감소 중"이라고 우려했다.
고용의 질도 떨어졌다. 종업원 500명 이상의 대기업이 생산한 '좋은 일자리'는 94년 210만개에서 2005년 120만개로 줄었다. 이 자리는 하청업체 인력이나 비정규직이 메웠다.
올해 대학 졸업자는 54만명. 그 가운데 37만명만이 취업에 성공했다. 76% 수준으로 지난해보다 0.3%포인트 줄었다. 전문대 취업률이 86%로 높았지만 일반 대학 취업률은 68%에 그쳤다. 그러나 대학 이상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가운데 비정규직 취업률이 26%로 지난해보다 7.4%포인트 늘었다. 최근 5년간 추이를 보면 정규직 취업률은 2006년 이후 매년 감소하고 비정규직은 증가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중소기업청 '1회 청년기업인의 날' 제정
이런 고용대란 속에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바로 창업에 나선 청년들이다. 지난 11월 3일 중소기업청은 이날을 '제1회 청년기업인의 날'로 선포하고, 12명의 청년 기업가들을 시상했다. 이들 청년 기업가들은 지난해 총 매출이 850억원, 올해 7월 기준 230여명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청년 CEO들의 창업 스토리를 살펴보면 '힘들지만 해볼 만한 일'이라는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다. 4년 전 28세의 나이로 사업을 시작한 김양현 하나테크 대표(32). 그는 2005년 9월 허름한 공장 한 구석을 빌려 종업원 3명과 설비 2대로 휴대전화 부품인 '키패드' 제조에 나섰다. 당시 그의 자산은 일체형 키패드 관련 기술과 2대의 생산설비뿐이었다.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일체형 키패드 관련 특허기술을 내는 데 성공했고 키패드 원자재 국산화에도 기여했다. 지난해 매출은 52억원. 2007년 21억원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김 대표는 월 300만개 이상의 휴대전화 부품을 생산한다. 그의 제품은 노키아 등 세계 최고 휴대전화업체에 들어간다. 고용을 우려하던 현실에서 60명이나 고용하는 당당한 CEO가 됐다. 김 대표는 "창업 초기만 해도 자금도, 거래처도 없이 남다른 기술만 믿고 사업에 뛰어들었다"며 "젊으니깐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을 냈다"고 밝혔다.
차도 블록 등 토목건축자재를 만드는 라스아이티에스의 유대규 대표(39)도 청년사업가다. 2003년 33세의 나이에 사업가로 나섰다. 창업 6년 만에 80억원의 자산규모를 가진 회사를 키웠다. 현재 특허 등록된 관련 기술만 41건에 달한다. 블록 분야에선 업계 1위다. 강신욱 히가리이노비젼 대표(35)는 29세인 2003년에 회사를 창업해 회사를 특수 디스플레이 분야 전문기업 반열에 올려놨다. 매출의 90% 이상을 수출해 창업 1년 만에 300만달러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창업했다 실패를 경험한 뒤 재기에 성공한 청년 CEO도 있다. 설융석 와우엠지 대표(38)다. 그는 지난 98년 27세의 나이로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2003년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다. 그러나 이후 실패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2004년 재창업에 나섰다. 현재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하는 이러닝 콘텐츠 개발과 유통 분야 1위 기업에 올랐다.
유명 벤처기업인들 기업가정신 강연
창업에 나선 청년들을 위한 정부 지원도 어느 때보다 강하다. 신용보증기금은 지난해 마련한 성장단계별 맞춤형 보증 지원 체계 '창업지원종합시스템'을 본격 가동했다. 지난 8월 대학생 우수 창업아이템 경진대회를 열었고, 전 영업본부별로 '창업스쿨'을 개회 중이다. 창업스쿨은 예비창업자와 창업 후 1년 이내 초기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창업 전문 프로그램. 수료자에게 3년 동안 최대 3억원의 신용보증 지원과 단계별 맞춤형 지원이 이뤄진다. 신용보증기금 관계자는 "청년 창업보증 지원을 상반기 960억원에서 하반기 2500억원으로 늘렸다"며 "창업 성공률을 높여 고용시장의 선순환구조를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술창업기업에 특례보증 지원을 하고 있는 기술보증기금도 맞춤형 창업성장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녹색성장, 지식기반, 이공계 챌린저, 1인 창조기업 등 4개 분야 일자리 창출이 골자다.
서울시가 20~30대 청년 창업자(CEO)를 위해 마련한 '2030 청년 창업 프로젝트'가 호평받는다. 선발된 청년들은 1인당 10㎡의 창업 공간과 대출 지원은 물론 등급에 따라 1년간 월 70만~100만원의 활동비를 무상으로 받는다. 창업에 필요한 교육과 컨설팅, 제품 개발 시 홍보 마케팅, 판로 개척 등 다양한 지원책이 마련됐다. 지난 6월 선보인 이 프로젝트를 통해 260여명이 뽑혔다. 서울시는 희망드림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2000만원까지 연리 2%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유명 벤처기업 CEO들도 제2의 창업 붐 조성을 위해 대학가로 달려갔다. 중소기업청과 벤처기업협회,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는 지난 10월 'YES리더스 기업가 정신 특강 발대식'을 개최했다. YES리더스는 'Young Entrepreneurs 리더스'의 줄임말. 중소·벤처기업 대표들이 전국 대학으로 달려가 도전정신을 고취시키고 기업현장에서 다져온 생생한 경험과 열정을 전수하겠다는 계획. 변대규 휴맥스 사장,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유순신 유앤파트너즈 대표 등 20여명이 참여한다. 지난 9월 김영세 이노디자인 사장을 시작으로 조현정 회장, 송승환 PMC프로덕션 사장 등이 전국 81개 대학에서 1만명 이상에게 특강을 실시했다. 홍석우 중소기업청장은 "70~80년대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하면 된다'는 도전정신이 2000년 들어 쇠퇴하고 있다"며 "우리 경제가 조기에 활력을 찾고 소득 2만달러 시대를 넘어 경제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선 기업가 정신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32호(09.11.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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