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뎀나무] 양화진에 잠든 헤론을 그리며

입력 2009. 11. 16. 17:48 수정 2009. 11. 1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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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 묘역에 최초로 묻힌 선교사는 존 W 헤론(John W Heron) 선교사이다. 그는 1858년 영국에서 출생하여 미국으로 이민하였으며, 테네시 주 메리빌대와 뉴욕종합대 의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 그는 모교로부터 교수 초빙을 받았지만 선교사로 가기 위해 이를 거절하였다.

그가 조선의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이수정 씨의 편지 내용이 실린 한 선교 잡지를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국 사람들이여! 조선에 선교사를 보내주시오! 조선 백성들은 문명을 모르고 어둠 속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헤론은 병들어 죽어 가는 가난한 나라에 가서 생명을 살리는 운동을 해야 한다며, 미 북장로교 선교부를 방문해 한국 의료 선교사로 지원했다. 미 북장로교회는 깜짝 놀랐다. 촉망 받는 유능한 의사가 낙후된 곳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침내 1884년 4월, 26세의 나이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파송하는 장로교파 최초 선교사로 정식 임명되었다. 그리고 일본으로 들어가 이수정씨를 만나 조선말을 배우고 풍속을 익힌 다음 1885년 6월 21일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제물포에 도착하였다.

한국에 들어온 헤론은 알렌에 이어 고종의 주치의가 되었고 광혜원의 제2대 원장이 되었다. 그후 병원 이름을 '제중원'으로 바꾸고, 특권층뿐 아니라 가난한 백성들의 병을 정성으로 돌보아 주었다.

당시 조선의 위생 환경은 매우 불결하였다. 천연두나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연례행사처럼 창궐해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수많은 목숨을 앗아 가기도 했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 질려 일부 선교사는 바로 자신의 나라로 귀국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헤론은 제중원 입원 환자들을 간호사에게 맡기고,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 진료가방을 챙겨 들고 100리 이상 떨어진 시골 지역을 다니며 전염병을 치료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많은 환자들을 돌보던 헤론은 결국 자신이 전염병에 걸려 쓰러졌다.

헤론은 1890년 7월 26일 한국에 온 지 5년 만에 이질에 걸려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영혼이 천사의 인도를 받으며 세상을 떠나는 날 입원해 있던 한국인 환자도 울고, 동료 선교사들도 울었으며, 그를 알고 있는 정부 고관들도 울고 말았다. 그는 모든 고통을 자신을 구원한 예수님께 맡기고, 조용히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천사의 안내로 하늘로 향했다. 그리고 그의 시신은 선교사로는 최초로 양화진에 묻혔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 부인의 손을 잡고, 두 딸과 한국인 환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위해 그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주님을 믿으십시오!"

왜 헤론은 의사로서 보장된 길을 버리고 선교사의 길을 선택하였는가? 왜 그는 전염병이 창궐하던 가난하고 어두운 조선 땅을 찾아왔는가? 왜 그는 전염병에 걸려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많은 환자들을 찾아가 돌보다 전염병에 걸려 죽어야만 했는가? 사랑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은 바 된 하나님의 사랑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말이 아니다. 사랑은 관념이 아니다. 사랑은 철학이 아니다. 사랑은 희생이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김은호 목사(오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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