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여행 파워블로거 이민희 "주방 허드렛일도 행운"
[JES 이상은] 책 속 자유분방한 모습과 사뭇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새하얀 조리복을 입고 모자는 단정히 눌러썼다. 상기된 표정에선 주방의 분주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죄송해요. 제가 좀 늦었죠? 뒷정리 때문에"라는 말과 함께 털썩 자리에 앉는다. 그러나 지나가는 셰프를 보더니 바로 일어나 안절부절 못한다. 남들은 뒷정리하는데 자신은 인터뷰하는 상황이 영 미안한 모양이다. 아직 일한 지 채 두 달이 안 된 '꼬미(요리 견습생)'이기 때문이다.
2007년 『민희, 치즈에 빠져 유럽을 누비다』에 이어 올 6월 『민희, 파스타에 빠져 이탈리아를 누비다』를 낸 이민희(32)씨. 그는 네티즌 사이에서 음식 여행 전문가로 통한다.
네이버 파워블로거이며 팬도 제법 된다. 프랑스 치즈농가에 들렀을 땐 직접 소젖을 짰고, 수소문해 찾아낸 이탈리아 시골 공방에선 백발 할머니가 만든 생파스타를 맛봤다. 그의 이런 생생한 음식여행기는 마니아를 만들어냈다. 치즈에 관한 지식을 인정받아 임실치즈마을 컨설턴트도 맡았다.
그런 그녀가 얼마전부터 서울 파크하얏트 호텔 양식 레스토랑 '코너스톤'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다. 그것도 돈 한 푼 안 받고서 말이다.
"주방일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고 물었더니 "닥치는 대로 다 한다"고 답한다.
"설거지부터 재료 나르기까지 시키는 대로 하죠. 물론 요리를 직접 하는 건 꿈도 못 꿔요. 말단 셰프조차 다른 곳에서 4∼5년 경력을 쌓은 분들이거든요. 제가 요리 경력 없는데도 들어올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에요."
스스로 '운이 좋다'고 고마워 하지만, 주방에서 보내는 그의 하루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하는 주방은 말 그대로 전쟁터다. 아침마다 요리 재료 통을 나르며 그는 최면을 건다.
"레몬소스가 담긴 커다란 통을 나를 때면 '이거 떨어뜨리면 나 죽어'라며 수없이 중얼거려요. 이 레몬소스 하나조차 씻고 깎고 썰고 끓이는 수많은 과정을 거쳐 완성된 건데 제가 한번 떨어뜨리면 끝장이니까요."
애초부터 주방에 발 들이는 것조차 쉽진 않았다. "현장에서 손끝으로 생생히 음식을 느껴보고 싶다"는 바람을 들은 지인이 주방 관계자를 소개해줬다. 그는 국내에서 드물게 생파스타를 만드는 곳이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코너스톤'이 마음에 들었다. 이탈리아 파스타 여행 도중 생파스타의 매력에 푹 빠진 기억이 있어서다.
처음엔 '5일간만 있겠다'는 약속을 하고 주방을 찾았다. 사실 '최대한 오래 버티자'는 심산이었다. 처음 사흘은 작가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주방에서 작가는 이방인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래선 정말 5일을 넘기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먼저 일을 찾아 나섰다. 그러자 "민희씨"란 호칭이 어느새 "야! 이민희!"로 바뀌었다 .
이씨의 손은 상처투성이다. 재료를 다듬다 칼에 벤 자국들이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아까울 정도로 행복하다" 고 말한다. 그에게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이상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선 치즈를 통해, 이탈리아에선 파스타를 통해 그들만의 삶을 느끼고 배웠다.
화려한 레스토랑의 뒤편,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생생한 주방 이야기를 쓰겠다는 게 그의 다음 계획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오래 붙어있을 작정이다.
"그 동안 눈으로 느낀 음식 이야기를 썼다면 이젠 손끝으로 느낀 음식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주방 이야기가 완성될 때까진 '꼬미'이고 싶어요." 저녁 준비 시간이 다 됐다며 서둘러 주방으로 향하면서 던진 말이다
글=이상은 기자 [coolj8@joongang.co.kr]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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