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엔딩 인터뷰①] 김인식 "재활공장장 비결? 절박한 선수가 우물 팠지"
[JES] 감독님을 뵙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옷 매무새를 다듬었다. 한없이 인자하시지만 '공인, 야구선수답지 못한 행동'에는 일침을 가하시는 분 아니던가. 반바지를 포기하고 '가장 얌전한 의상'을 골랐다.
한화의 서울 원정숙소 역삼동 삼정호텔에 도착하니 감독님이 로비에 나와계신다. "오랜만이야." 환하게 맞아주시는 감독님. 그런데 정곡을 찌르는 한 마디를 던지신다. "예전부터 궁금한게 있었어. 넌 야구를 왜 그만둔거야. 그렇게 일찍." 야구계 큰 어른께서는 인자한 웃음을 유지하시면서도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신다. "잘못했습니다. 여러 사연이 있었지만…. 죄송합니다."
감독님께 용서를 빌 수밖에 없었다. 단 한번도 소속팀 선수와 감독으로 만난 적이 없는 김인식 감독님과 나, 이상훈이다. 하지만 많은 선수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감독님은 모든 야구선수의 스승과 같은 분이다.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의 영광, 노 감독의 깊은 고민이 있었다.-감독님, 건강은 많이 좋아지셨죠?
"완전치는 않아도 많이 좋아졌어. 일단 머리 쪽에는 이상이 없다고 판명났으니까. 처음 다쳤을 때는 겁도 났지. 그래도 운동을 5년간 하니까 좋아지더라고. 이약 저약 다 먹어봤는데 역시 운동이 최고야. 계단이나 경사진 곳을 걷는 게 조금 힘들긴 해도, 움직이는 것이 부담스럽진 않아."
-정말 대단하세요. 건강 문제도 있으셨을텐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서 대단한 성과 거두셨잖아요. 야구부흥의 초석을 다지신 것 같아요. 존경합니다, 감독님.
"그게 내가 한 거야? 선수들이 잘해줬지. 관중이 늘고, 인기가 높아져서 나도 기분이 좋아."
-WBC를 준비하시면서 어려운 점이 많으셨죠?
"부담이 컸지. 결정을 내리는 것부터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힘들게 코칭스태프를 구성했는데 선수 구성은 더 어려웠어. 1회 대회에서 4강을 했으니까 더 부담이 되더라고. 11월부터 3월까지 4개월 정도 고민을 안고 살았지."
-최근에 하일성 전 사무총장이 방송에 나오셨는데 감독님에 대해 존경을 표하더라고요. 특히 결승전, 임창용의 실수를 감싸셨던 부분을 말씀하던데.
"위기의 상황, 1루가 비었고 상대가 강타자야. 상훈이도 알겠지만 두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하잖아. 볼을 던지다가 상대타자가 말려들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거르는 거고, 포수가 완전히 일어나서 고의사구를 던지게도 하지."
-그때 임창용에게 볼넷 사인을 내신 건가요?
"그랬지. 양상문 투수코치한테 확인도 했어. '창용이가 사인을 본 거지'라고 물었더니 '확인했습니다'라고 답하더라고. 그런데 공이 한복판으로 가네. 사실 이해가 잘 안됐어. 그런 상황이라면 벤치에서 '거르라'는 사인이 안나와도 공을 뺄 것 같은데. 당시 언론에는 밝히지 않은 얘긴데…. 불펜에 (좌완)류현진이 있었으니까, (좌타자)이치로를 상대하게 하려 했어. 그 다음에 임창용을 내세우려고 했지. 그런데 임창용이 굳이 이치로부터 던지겠다고 한다는 거야. 본인에게 직접 확인은 못했어. 감독으로서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임창용의 뜻을 따랐지."
-임창용의 승부욕이었을까요.
"결승전이 끝나고, 다음날 아침 창용이를 불렀어. 커피한잔 하자고. '사인을 봤냐'고 물었는데 창용이는 '못봤습니다'고 답하더라. 지금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네. 확실한 건 '포수보고 일어나서 공을 받으라'는 지시를 안했으니까. 내 잘못이라고 한 거지. 감독이 책임져야할 부분이고."
-제가 마무리 투수였다면, 벤치에서 나온 사인을 따랐을텐데요. 박빙의 순간이고 긴장했다면 사인을 못봤을 수도 있겠네요. 이치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할게요. 감독님, 김병현의 경우 WBC를 나갔다면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됐을텐데요.
"여권을 잃어버렸다잖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수가 있나'고 김병현을 궁지로 몰더라고. 고민 많이 했어. 그리고, 전체적인 팀을 생각해서 병현이를 대표팀에서 뺐지.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 여권을 잃어버릴 수는 있어. 그런데 당일 공항에서 그걸 알았다는 게 문제가 된 거잖아. 언론에서 난리가 났지. 그때 막 대표팀을 하와이에 소집했는데 밖에서 시끄러우면 분위기를 잡지 못하겠더라고. 제대로 대표팀 훈련을 시작하려면 병현이를 포기해야했어. 병현이를 생각하면 아쉽지, 미안한 마음도 있고."
-그런 우여곡절 끝에 대단한 성적을 내셨네요.
"사람의 욕심이 한이 없어. 처음 시작할 때는 '아시아예선만 통과하자'고 목표를 세웠는데 욕심이 점점 커지는 거야. 우승 못하니까 속상하더라. 당시에는 그 감정을 숨기려고 많이 노력했어. 우리 선수들이야 너무 잘해줬으니까. 괜히 이치로가 원망스럽더라고. 허허. 결승전 끝나고 숙소에서 자려는데 천장에서 이치로 얼굴이 왔다갔다 하더라."
-좋은 성과를 얻었는데, WBC 포상금이 적다는 말이 있네요.
"기대했던 것보다 적겠지. 나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 KBO는 'WBC 조직위원회가 아닌 KBO 자체에서 해준 일들'이 고려되지 않아서 힘들겠지. 나름대로 포상금을 책정했을 거고. 선수들은 또 다른 서운함이 있겠지. 선수단에 거액의 상금이 들어올 것이라는 풍문도 떠돌았으니까. 그런데 이건 '야구인들끼리 처리해야하는 문제' 아닌가 싶어. 내부에서 조용하게 해결하는 방법이 있지 않겠어? 선수 대표 몇이서 KBO와 만나서 이야기 했으면 해. 올해 야구붐이 일어났는데 '돈문제'로 시끄러운 건 보기 좋은 일이 아니잖아. 야구가 꼭 돈 때문에 하는 건 아니잖아. 올 해 분위기가 이렇게 좋은데 막판에 '돈 문제'로 흠집날까봐 걱정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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