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담의 반란 근거지 '명활산성' 뜬다
[데일리안 김종렬 기자]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경북 경주역사지구 명활산성(明活山城)이 정비사업을 통해 보문단지와 연계한 탐방코스로 개발될 전망이다.
경주시는 올해 사업비 2억원을 확보해 산성 내 사유지 7만5000여㎡를 매입키로 하고 연차적으로 정비사업을 추진, 문화재관광 인프라를 구축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27일 밝혔다.
이에 앞서 경주시는 지난 2007년 11월 경주시청 영상회의실에서 문화재 위원과 전문위원, 시 관계공무원 등 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명활산성 정비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보고회 및 자문회의를 가진바 있다.
천년수도 방어선을 재현하고 세계에 신라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추진하는 이 사업은 오는 2016년까지 사업비 400억원을 투입, 천군동 산334번지 일원에 소재한 명활산성 9.5km중 사업비 305억원을 들여 석성 4.5km를 복원 정비하고 36만5000여㎡의 사유지 매입 및 발굴사업에 95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 200년 12월 경주역사유적지구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사적 제47호 명활산성 |
경주시는 지난해까지 사업비 3억9000여만원을 들여 한국전통문화학교에 용역을 의뢰 명활산성복원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사유지 3만1000여㎡를 매입했으며 산성주변 2만5000여㎡에 수목을 제거했다.
사적 제47호로 지정된 명활산성은 경주의 동쪽 명활산 꼭대기에 쌓은 신라 산성으로 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신라 실성왕(實聖王) 4년(405)에 왜구가 명활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만들어진 성으로 추정된다.
명활산성은 원래 토성(土城)이던 것을 진흥왕(眞興王) 때를 전후한 시기에 석성(石城)으로 개축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발견된 진흥왕 12년(551)에 세운 명활산성작성비(明活山城作城碑)로 보아 석성 축조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성을 쌓는 방법에서도 다듬지 않은 돌을 사용한 신라 초의 방식을 보이고 있고 눌지왕(訥祗王) 15년(431)에는 왜구가 이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였는데, 이는 이 성이 신라의 수도인 월성을 지키는데 중요한 곳임을 말해주고 있다.
명활산성은 월성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하였던 자비왕(慈悲王) 14년(475)~소지왕(炤智王) 10년(488)까지의 13년간은 임시 궁궐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진흥왕 15년(554)에 다시 쌓았고, 진평왕(眞平王) 15년(593)에는 성을 확장했으며, 선덕여왕(善德女王) 16년(647)에 상대등 비담(毗曇)과 염종(廉宗) 등이 이곳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김유신장군이 평정한 곳이기도 하다.
경주의 서쪽에 있는 서형산성(西兄山城), 남쪽의 남산성(南山城), 북쪽의 북형산성(北兄山城)과 함께 신라의 도성을 지키기 위해 경주의 동쪽에 마련된 산성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지금은 많은 부분의 성벽이 무너져 부분적으로 옛 모습을 볼 수 있으나 토성과 석성의 흔적을 다수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명활산성은 2000년 12월 2일 남산지구(南山地區), 월성지구(月城地區), 대릉원지구(大陵苑地區), 황룡사지구(皇龍寺地區)지구와 함께 경주역사유적지구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데일리안 대구경북=김종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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