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남북 정상회담·노벨상 수상 '현대사 거목'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한국 정치사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햇볕정책과 한국인 최초의 노벨평화상은 그가 이룬 업적을 상징한다. 그리고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함으로써 부도위기에 처한 국가와 경제를 구하기도 했다.
◇햇볕정책과 노벨평화상 수상=DJ는 평생 남북통일 문제에 깊은 관심을 쏟았고, 남북간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직접 발벗고 나섰다. 특히 대통령 취임 직후 대북 포용정책인 이른바 '햇볕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탈냉전과 세계화의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남북간 대치는 조속히 중단돼야 한다는 소신에서 비롯됐다.
무엇보다 남북관계의 특성상 남북 정상이 직접 만나 서로의 솔직한 입장을 교환하고, 그 바탕 위에서 평화 로드맵을 진행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그 결과 분단 55년만인 2000년 6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가졌고, 6·15 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6·15 선언은 민족의 운명과 장래를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임을 천명하고, 전쟁재발 방지와 평화정착을 위한 남북간 이행사항을 담았다. 이에 따라 군사직통전화 개설, 상호 비방 중지, 파괴·전복행위 중지 등의 조치들이 취해졌다. 또 이산가족 상봉과 비전향장기수 석방이 이뤄졌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합의는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남북 정상간의 합의는 북·미 관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북한 서열 3위인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 등을 만났고, 이는 북·미관계 정상화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DJ는 2000년 12월 한민족 최초의 노벨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공적과 6·15 남북 공동선언 등이 주요 업적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노벨상 공작설'을 퍼뜨리기도 했다.
DJ는 국내적으로는 동서화합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지만 큰 결실을 이루지는 못했다. 수십년만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정치보복으로 비쳐지는 행위는 자제했고, 노태우, 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도 직접 사면·복권시켰다. DJ는 재임 기간 개인적으로는 비리가 없었지만, 그의 친인척 및 측근들의 비리는 임기 내내 불거져 궁지에 몰리곤 했다.
◇몸낮추기와 국민과의 대화=DJ는 당선 직후 권위주의적 지도자에 익숙한 국민들에게 친근한 대통령이라는 인상을 심기 위해 애썼다. 1998년 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가진 첫 정례보고에서 각하라는 호칭을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또 동사무소와 파출소 등 일선 행정조직 사무실에까지 걸려있는 대통령 사진도 걸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는 1년에 두차례 정도 TV를 통해 '국민과의 대화'를 했다. 이전 정권에서는 연두기자회견을 제외하고는 국민이 대통령의 생각을 직접 듣는 일이 없었다. 따라서 대통령과 국민이 만나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98년 1월 국민과의 대화 첫 프로그램에서 DJ가 선택한 주제는 정리해고의 불가피성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총체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며 노동계를 설득했다.
◇경제개혁=97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강도 높은 개혁의 채찍을 들었다. IMF 사태라는 국가 재난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당선자 시절인 98년 1월13일 5대 재벌 총수와 만나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5개 원칙에 합의한 것이 출발점이 됐다. DJ는 경제위기가 30여년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과감한 개방과 자유화를 통해 경쟁을 촉진하고, '시장의 힘'을 강화했다.
5개 은행 퇴출을 계기로 개혁추진 속도가 빨라지면서 재벌 빅딜(대규모 사업교환), 공기업 민형화 및 해외매각, 노동시장 유연화정책 등 각종 개혁조치들이 쏟아져 나왔다. 실제로 5대 재벌은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자체 구조조정 노력과 채권단의 독려, 정부의 감시 등을 통해 체질이 바뀌기 시작했다. 부채비율이 당선 당시인 97년 말 472%에서 취임 2년 뒤인 99년 말에는 198%로 낮아졌다. 계열사 수도 57개 감소했다. 우리의 외환위기 극복사례는 해외 여러 나라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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