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방지일 (1) 아직도 사역중인 '97세 청년'

장로교 분열 이래 처음으로 4개 장로교가 함께 연합예배를 드렸던 지난달 24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
방지일(97·영등포교회 원로) 목사가 부축을 받아 연단에 서자 목사와 장로 등 참석자 5000여명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국내 최고령 목회자이자 '한국교회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방 목사를 향한 후배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작은 예의였다.
"믿음이란 투항인데, 아직도 우리는 내 주관과 경험, 아이디어와 지능으로 무장하고 있어요. 우리 모두가 보혜사 성령께서 인도하심으로 무장을 완전히 해체할 때 비로소 주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장로교가 분열되기 전인 1937년에 목사안수를 받은 방 목사가 한국교회의 분열상을 두고 안타까움을 토로하자 참석자들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97세 청년 목사, 영원한 현역….' 방 목사 이름 앞에 붙는 호칭들이다. 백수(白壽)를 눈앞에 둔 그는 일반인들이 보기에 믿기 어려울 만큼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현장 목회자다.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며, 글을 쓴다. 인터넷으로 해외에 머무는 선교사, 후배 목회자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교제를 나눈다. 그에게 성경공부와 설교, 축사를 요청하는 교단 총회와 교회 목회자들도 끊이지 않는다. 방 목사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건강상태가 허락하는 대로 현장을 찾는다. 걷기가 불편할 뿐, 말하고 읽고 듣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는 게 본인과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방 목사는 79년 현직에서 은퇴한 뒤 1년 중 거의 반년은 해외에서 각종 집회에 참석, 강사로 참석하는 등 여전히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마다 그의 자택에서 열리는 '월요성경공부'는 벌써 5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미 2000여명이 그와의 성경공부를 통해 믿음의 성을 견고히 쌓았다. 방 목사는 설교와 특강, 성경공부 등을 병행하면서 저술한 책만 100권이 넘는다. 주위에서는 그를 향해 "좀 쉬면서 천천히 하시라"고 말할 때마다 방 목사가 꺼내는 유명한 말이 있다.
"저는 녹슬기보다는 닳아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본보는 이번 '역경의 열매' 주인공을 방 목사로 정했다. 한국의 개신교 역사를 온몸으로 체험한 방 목사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통해 그의 신앙과 한국교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짚어보자는 취지에서다. 어린 시절 조부모 밑에서 자라며 신앙을 접한 그는 20대 초반에 평양 장대현교회를 섬긴 데 이어 중국 선교사로 파송됐다. 공산권 치하에서 숱한 시련을 감내하며 21년간 중국인들에게 목숨을 걸고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이어 영등포교회에서 21년간 담임을 맡으며,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장과 임원 등을 역임하며 한국교회 발전에 앞장서 왔다.
본보는 방 목사와의 인터뷰를 비롯해 그의 자서전인 '나의 나됨(선교문화사·2005)'과 그의 신앙 일대기 등을 담은 각종 저서 및 논문 등을 토대로 그의 사역과 인생을 재조명했다.
"내 일생을 돌아보건대 삶이 그리 순탄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 보니 '나의 나됨은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라는 바울의 말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 누구인가
1911년 평북 선천 출생. 선천신성학교, 평양숭실대학, 평양신학교 졸업, 평양 장대현교회 전도사, 평양노회 목사안수(37), 총회파송 중국선교사(21년 사역), 영등포교회 담임(58∼79), 예장통합 총회장(72), 신일학원 이사 및 대한성서공회 이사장 역임, 국민훈장 모란장 서훈(98), 숭실인상 추양목회대상 수상(98), 국민일보 제1회 국민선교대상(96), 숭전대(현 숭실대) 명예철학박사(82), 장로회신학대 명예 신학박사(2004), 목사안수 70주년(2007), 현 중화기독교유지재단 이사장, 영등포교회 원로목사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