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할 때도 밤 안 샜는데, 영화표 때문에.."

2008. 10. 5. 17:1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성하훈 기자]

▲ 매진

오늘 영화 매진을 알리고 있는 안내 게시판

ⓒ 성하훈

연휴를 맞아 영화제에 온 관객들의 티켓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30% 현장판매 분 티켓은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으면 구하기 어려운 상황. 밤새는 것은 기본이고 아예 오후부터 대기하지 않으면 영화 한 편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일반 상영 첫날인 3일에는 프리머스의 발권이 3분 늦어지면서 프리머스에서 밤을 지샌 관객들은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상대적으로 프리머스 대기자들이 불이익을 봤기 때문이다. '뭐 그까짓 3분을 가지고…'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단 몇 초 차이로 매진된 표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상실감은 하루의 의욕을 잃게 만들 정도다.

3분이면 서너 편의 작품을 건지느냐 놓치느냐가 걸려있는 중요한 시간이다. 촌음을 다투는 매표 전쟁은 티켓 매표소 자원봉사자의 손놀림에 따라서도 좌우된다. 그래서 단 몇 초도 소중하다.

영화제가 개설한 매표 창구는 상영관과 게스트, 시네필들이 이용하는 임시매표소를 포함해 30여 개가 넘는다. 여기서 1인당 구입할 수 있는 표는 한 작품당 2장씩. 그런데 남아있는 좌석은 60~80석 정도. 인기작 한 편이 동시에 발권될 경우 한 작품의 매진 속도는 1~2분도 안 걸린다.

특히 같은 시간대 동시 발권되는 시스템에서 몇 분 아니 몇 초 차이는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만든다. 3일의 최대 화제작 <구구는 고양이다>와 <놈놈놈>은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이 매진됐다.

4일 새벽. 일반상영관 매표 창구를 돌며 밤새는 이들을 만나봤다.

그까짓 몇 분? 단 몇 초에도 관객들은 피가 마른다

▲ 남포동 매표소

4일 새벽 5시 남포동 대영극장 앞에 줄 서있는 관객들

ⓒ 성하훈

[남포동]

새벽 5시. 어둠이 가시지 않은 남포동은 을씨년스러웠다. 중구청이 설치해 놓은 아름드리 조형물이 남포동의 경치를 비추고 있을 뿐이다. 야외에 위치한 남포동 매표소는 아무래도 밤을 지새기에는 힘든 곳. 그래도 50명 남짓한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남포동 매표소는 주로 서울에서 밤기차를 타고 새벽에 도착한 사람들이 이용한다. 부산역과 가깝기에 해운대로 움직이느니 남포동이 수월한 것.

종이박스를 깔고 잠들어 있는 사람들 맨 앞으로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있어 "1번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광주에서 왔다는 그는 올해 24살 되는 정현창씨다. 그저 영화를 좋아하는 평범한 영화팬인 그는 전날 밤 10시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구하는 작품은 <렘브란트의 전설>. 해운대 롯데시네마에서 상영되지만 그쪽으로 이동할 경우 줄이 많을 것 같아 전날 밤 남포동에서 영화를 보고 바로 줄 섰다고 했다.

부산영화제 표 구하기 힘들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왔다는 그는 밤새 추워서 감기에 걸린 것 같다며 코를 훌쩍거렸다. 뒷줄에 선 관객들은 몇 시쯤부터 보이더냐고 물으니 새벽 3~4시쯤부터 보였다고 말한다.

중간쯤에 서 있던 외국인 일행에게 말을 건네봤다. 그들은 자신들을 춘천에서 온 영어강사들이라고 소개했다. 분당과 서초동에 있는 친구 등 5명과 함께 찾았고, 새벽 4시 부산역에 도착해 바로 이곳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이들이 구하는 표는 미드나잇 패션 등 4~5편. "표를 구할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으니 낙관적으로 말한다. 해운대쪽 매표소 분위기를 알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영화표를 위한 집념, 형제와 모녀는 용감했다

▲ 1등과 2등

3일 저녁 10시 다음날 영화 티켓 예매를 위해 자리잡은 관객

ⓒ 성하훈

▲ 내가 1등

한 고등학생이 맡아 놓은 1번 자리. 주인은 없고 문제집 사이에 남겨진 메모만이 있을 뿐이었다.

ⓒ 성하훈

[해운대-메가박스]

해운대 주상영관인 메가박스 앞에는 이미 전날 7시쯤부터 1번이 대기하고 있었다. 아직 그날 현장 매표도 안 끝난 시각, 앞줄에 자리 잡고 앉아있는 모습은 조금 쓸쓸해 보였다. 그런데 매표 순위 1번은 보이지 않고 자기 자리라는 표시만 있을 뿐이다. 2번에게 물어보니 자리 표시만 해 놓고 어디 간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자리 표시를 해 놓은 책은 고교 중간고사 예상 문제집. 학생임이 분명했다.

오전 6시를 조금 넘어선 시각 해운대 메가박스 앞. 1번 자리 주인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두 명이다. 친구냐고 물으니 형제라고 했다. 매표 순위 1번인 동생은 부산에 사는 고2 정영훈씨였고 형은 고3. 그러니까 둘이서 밤을 샌 거다. 역시나 형제는 용감했다. 밤새 어디 있었냐고 물으니 <미드나잇 패션>을 보고 왔다고 한다. 남들 지루하게 밤샘할 때 자리 맡아 놓고 영화 실컷 보고서 느지막하게 내려온 것이다.

그가 일찍 온 이유는 어제의 아픔 때문. 분명 전날 9시에 도착했는데, 앞에 50명 정도가 앉아있더라는 것. 그래서 결국 <구구는 고양이다>를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전날의 실수를 교훈 삼아 미리 선수를 친 것이다. 그들이 구하는 작품은 <ABC단편영화>와 <미쓰 홍당무> 등 8편. 형제가 보는 영화들이 각각이다.

그런데 2번 자리에는 어제 앉아 있던 여학생이 안 보이고 아주머니가 한 분 앉아 계셨다. 혹시나 일본에서 오신 분인가 궁금했다. 부산영화제는 일본에서 온 아주머니들의 극성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그들은 관광회사 직원들까지 동원해 인기작 표 10장을 한 번에 쓸어갔다. 그런데 2번 학생의 어머니란다. 간단한 인터뷰를 통해 상황이 정리됐다.

학생 이름은 김윤형. 두 모녀는 영화제를 보러 서울에서 내려왔고, 딸이 영화를 하겠다며 학교도 그만둬 밀어주는 중이라고 한다.

"어차피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게 해야지 우리 욕심대로 하면 되겠어요. 지가 그리 영화 좋다고 하니 하게 내버려 둬야지요."

새벽 5시쯤 춥다고 전화가 왔고, 어머니가 옷을 가지고 나와 잠시 쉬었다가 오라고 들여보낸 거였다. 이야기 중간에 앞에 앉은 1번 형제에게 한 마디 던지신다.

"우리 딸이 엄청 얄밉다고 하던데, 사람은 안 보이고 책만 갖다놓고 1번 자리 맡아 놨다고…."

앞에 앉은 두 학생은 못 들은 듯 아무 말 없이 티켓 카탈로그만 뒤적일 뿐이었다. 대열 100m 뒤에 앉은 외국인은 프레스카드를 차고 있었다. 게스트 표도 이미 대부분 매진된 상태. 그가 구하는 표는 뉴커런츠의 출품작 <6월 이야기>였다. 이름은 매튜 골름, 부산교대 원어민 강사. 영화에 대한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단다. 6시에 도착했다는 그는 여자 친구와 함께 기다리는 중. 날이 밝아오며 뒤쪽 줄이 급속히 길어지고 있었다.

영화는 한 편 밖에 못 보고 거리에서 이틀째 노숙 중

▲ 프리머스 상영관

3일 오전 6시 프리머스 상영관 앞에서 밤샌 관객들

ⓒ 성하훈

[해운대-프리머스]

프리머스 상영관은 매표소 중 노숙 환경이 가장 좋은 곳이다. 메가박스도 좋은 환경이지만 프리머스는 7층에 있어 기본적인 실온이 보장되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이곳에도 은근히 사람이 몰린다. 밤새고 있는 사람은 대략 300여명 정도.

맨 앞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서울에서 왔다는 문준영씨였다.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있으며 일행 4명과 함께 온 그는 3일 티켓 예매를 위해 2일 낮 2시에 미리 자리를 선점하려다가 앞에 20여명이 준비하고 있어 포기했다고 한다.

그가 구하려는 표는 어제 밤샘을 했음에도 놓친 <구구는 고양이다> 추가 상영분과 야외 상영작 <스카이 크롤러> 등. 야외상영작 작품도 주말이라 안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표정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시스템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원하는 표는 이미 그의 수중에 들어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해운대-롯데시네마]

마지막 센텀시티에 위치한 롯데 시네마 앞에 당도한 시간은 오전 7시 10분쯤. 이제 막 문을 연 듯, 주변 정리를 하고 있는 관리인이 입구 정리를 하고 있었다. 밤새 줄 서 있던 사람 모두 상영관 위로 올라가 있다고 전해준다.

롯네시네마는 롯데백화점 안에 있어 전날부터 입장해 대기하기는 어려운 곳. 이 때문에 관객들은 부득이 노상에서 밤을 새야 했다. 남포동과처럼 줄서기는 열악한 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7시 건물 출입문이 개방되면서 실내로 출입이 허용된 것.

롯네시네마로 200여 명이 빼곡이 자리를 채운 채 예매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맨 앞줄에 앉은 1등 관객은 두 여학생이었다. 올해 대학 1학년으로 경기도 안산에서 온 이들은 올해 처음으로 영화제에 왔다고 한다.

"영화제에 처음 왔는데, 이틀 내내 거리에서 노숙 중이에요. 영화요? 한 편 밖에 못 봤어요. 인터넷 예매도 못 해서 이렇게 밤 새고 있는 중이에요. 사실 영화제에 대해 뭣도 모르고 내려와 표 끊으려고 이리 밤새고 있어요. 그런데 어제 밤에는 많이 춥더라고요. 어제는 프리머스에서 밤 샜는데, 글쎄 예매가 3분이나 지연됐지 뭐예요. 그래서 롯데시네마로 옮긴 거예요."

질문에 또박또박 답변하는 친구를 보며 옆에 여학생이 한마디 던지자 주변에 웃음이 일었다.

"나는 공부할 때도 밤을 안 샜는데, 영화표 때문에 밤을 새야 하다니…."

그들을 밤새게 만든 영화는 <렘브란트의 심판>과 <100>, <님은 먼 곳에>였다. 영화 한 편 때문에 공부할 때도 안 하던 짓을 하는 셈이었다. 밤샘하며 기다리기에 지쳐 바닥에서 새우잠을 자는 관객들의 모습이 여럿 모였다. 매표 시간이 1시간 앞으로 다가오면서 하나둘 잠자리를 털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켤 시간이다.

▲ 게스트 매표소

영화제 손님인 게스트와 취재를 하고 있는 프레스들 조차 아침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표를 구하기 어렵다.

ⓒ 성하훈

관객, 게스트, 프레스 누구도 예외 없는 티켓 전쟁

다시 메가박스로 돌아오니 오전 8시 30분. 막 매표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길고 긴 줄은 줄어들지 않고 더 길어져만 갔다. 일찍 표 구한다고 새벽에 집을 나온 사람들이 뒷줄을 줄어들지 않게 하고 있었던 것. 긴 줄 앞에 뒤늦게 온 이들은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잇따라 티켓교환부스와 5층의 게스트 매표소도 긴 줄이 형성되기는 마찬가지. 이같은 모습은 연휴기간인 3일 내내 되풀이됐다. 관객이나 게스트나 프레스나 영화 보기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부산의 티켓 전쟁은 예매나 현매나 모두 심하다는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세계에서 가장 영화 보기 힘든 영화제, 부산을 향한 관객들의 열정은 예나 지금이나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식지 않은 모습이었다.

티켓을 구하려는 긴 줄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 성하훈

[☞ 오마이 블로그]

[☞ 오마이뉴스E 바로가기]

- Copyrights ⓒ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