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원 시간 맞춰 문닫는 약국..불편한 시민들

2008. 9. 1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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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건강] 서울 미아리에 위치한 한 약국. 아직 어두워지지 않은 초저녁이지만 약국 불이 꺼지고 셔터가 내려간다. 퇴근시간 이후 약을 구입하러 약국을 찾았다가 속속 발길을 돌리는 환자들도 눈에 띈다.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은 저마다 일찍 문을 닫은 약국에 의아해 하는 표정이다.

같은 시각 약국의 중심가로 잘 알려져 있는 종로 5가의 약국거리도 마찬가지. 대다수 약국에 불이 꺼져 있고 그나마 불이 켜져 있는 약국도 웬만한 곳은 셔터가 내려간 상태다.

의약분업 이후 환자에 대한 약사의 처방이 불가능해지면서 약국의 폐점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응급환자를 제외한 일반 경증질환의 경우 병원 진료시간이 끝나는 오후 6∼7시 이후에는 가정상비약 등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반약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고려하면 약국의 폐점시간이 시민들의 건강관리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의사가 학회 가면 평일도 약국 휴업

용인시 수지구에 사는 오문자 씨(여.65)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자주 가던 인근의 가정의학과 건물 1층에 있는 약국에서 진통제를 구입하려 했지만 평일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약국문은 잠겨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정의학과를 찾았으나 원장의 학회 일정으로 진료를 하루 쉰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오 씨는 후에 학회 일정에 맞춰 약국 영업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분통을 터뜨렸다.

오씨는 "평소에도 조금만 늦으면 약국이 문을 닫아 불편했는데 이제는 평일에도 의원이 문을 닫으면 따라서 쉬는 일도 있다"며 "아무리 약국 수입에 병원 처방 비중이 높아도 그렇지 의원이 쉰다고 약국이 따라 쉬는 건 환자들을 무시한 행동"이라고 분노했다.

노원구에 사는 임지환 씨(35)는 "1달 전에 딸이 열이 많이 났던 적이 있는데 당시에 준비된 약이 없어 약국부터 찾았다. 그런데 밤 10시가 넘었던 때라 문을 연 약국을 찾을 수 없었다"며 "때문에 동네에서 떨어져 있는 종합병원 응급실을 가야만 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옛날에는 밤 10시에 문을 연 약국도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곳을 찾기가 어렵더라"라고 했다.

◇"10곳 중 3곳은 의원 시간 맞춰 문닫아"

대한약사회의 경우 이같은 시민들의 불편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약사회는 "의약분업 이후 약국 접근설이 떨어진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약사회는 이처럼 처방에 의존하는 동네약국 중 의원 문닫는 시간에 맞춰 영업시간을 정하는 약국들이 30%에 이른다고 파악했다.

약사회 관계자는 "모든 약국이 문을 일찍 닫지는 않는다"면서도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30%의 약국들은 처방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의원이 진료를 마치는 시간에 맞춰 문을 닫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의약분업 전에는 밤 10시가 넘어서까지도 대다수 약국들이 영업을 했지만 이제는 의원이나 회사 밀집지역의 경우 퇴근 시간 유동인구가 적어져 7∼8시 정도면 문을 닫는다"며 "그래도 동네에 있는 약국은 8∼9시까지는 영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약국 영업시간이 짧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 관계자는 "의약분업 전에는 환자들이 선호하는 약국이 뚜렷했고 경쟁구도가 심했기 때문에 구역에서 폐점시간을 10시로 정해도 문을 늦게 까지 여는 약국이 있어 오히려 주위 약국에서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처방이 분산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영업시간을 늘리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영상의 문제도 있다"며 "어쩔 수 없이 약국이 소매업이다보니 문을 열어놔도 일반약 몇개 팔아야 수익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무릅쓰면서까지 문을 여는 곳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히려 약국이 문을 일찍 닫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로 볼때 당연하다는 말도 한다.

이 관계자는 "유럽의 경우 약국은 7시면 문을 닫는 것이 일반화 됐다"며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일 뿐 집에서 상비약을 구비해 놓으면 이 부분은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약사들 "경영상 어쩔 수 없는 문제"

약국 영업시간이 짧아진 데 대해 시민들의 불만이 높지만 정작 약사들은 약국 경영상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토로한다.

8년째 종로에서 약국을 경영하고 있는 박모 약사는 "옛날에는 11시나 12시까지도 약국이 문을 열었지만 이제는 7시면 문닫는 약국도 많다"며 "종로 5가의 경우도 권리금 문제 때문에 사정상 내놓지 못하는 약국이 태반"이라고 전했다.

그는 "10평 남짓의 약국조차도 도매상에서 약을 구입하는 데 쓰이는 비용이 한달에 3000∼4000만원이나 되는 데다 직원 월급, 카드 수수료, 월세, 세금 등을 제하고 나면 순 이익은 약국 매출의 10%도 안된다"며 "믿기지 않겠지만 번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유동인구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이곳 상황도 이런데 처방에 의존하는 동네약국은 더할 것"이고 말했다.

경기도 분당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의원 진료가 끝난 후에는 활명수나 밴드, 타이레놀을 몇개 파는 것이 전부"라며 "약사가 2명 이상 근무하는 곳이라면 모르지만 약사가 1명밖에 없는 곳은 평일에 병원이나 관공서 한번 가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당번약국 사실상'무용지물'

대한약사회에서는 일반적인 영업시간 이후에 약 구입이 가능하도록 휴일 당번약국과 심야 당번약국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또 전화상 당번약국 위치 및 전화번호를 안내하는 응급의료정보센터(1339)와 보건복지콜센터(129)가 운영되고 있고 인터넷 상 당번약국 홈페이지(Pharm114)를 운영 중이다.

약사회 관계자는 "국민불편을 최소화 하기 위해 참여하는 약국에 한해 자율신청을 받아 휴일·심야 약국개념으로 당번약국을 운영하고 있다"며 "강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각 시·도 지부에서 약국에 확인전화도 하고 약국 4∼5곳 중 1곳은 돌아가면서 연장근무나 휴일근무를 하도록 적극 권장·장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한 홍보는 연휴가 길어지는 명절 위주로 이뤄지고 있을 뿐 아니라 당번약국에 대한 인지도가 떨어지는 데다 특정약국을 찾아가야 한다는 불편함 때문에 기대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약사들 사이에서도 당번약국 운영에 대한 불만이 높다. 경기도에서 근무하는 한 약사는 "같은 구역에 있는 약국 5곳이 당번약국 운영을 시도해 봤는데 일요일에는 손님도 안오고 일반약의 경우 매출에서 거의 비중이 없는데다 소비자들이 큰 약국에서 싸게 사려고 하기 때문에 그만 두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약사도 "당번약국 제도를 약사회 자체적으로 실시하고는 있지만 사실상 경영에 도움이 안되는 데다 약사 한명이 근무해야 하는 곳은 휴일이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일반약 약국 외(슈퍼) 판매 확대에 무게

이에 따라 구입이 많이 이뤄지는 일반약에 대해서는 슈퍼마켓 등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미 정부도 지난 4월보건복지 분야 44개 규제개혁과제에 '일부 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포함시킨 상태다.

유통업계에서도 약국외 판매를 실시할 경우 의약품 유통보다는 마진이 적어질 가능성이 높아 약가인하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특히 편의점에서 판매할 경우 24시간 의약품 접근성이 현재보다 월등히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자혜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일반약 슈퍼판매는 10년 전부터 논의됐던 것인데 제도를 바꾸려다보니 지금까지 왔다"며 "3년전에도 이에 대해 인식조사를 했었데 안전성이 확보된 약에 한해서는 슈퍼판매를 해야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은 기본적으로 일반약 슈퍼판매를 허용하되 안전성 확보된 일반약으로 한정하고 단 소비자의 선택권을 높일 수 있도록 주의사항을 내부 설명서에 명시하기보다 겉표지에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이 전제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류장훈 기자 rj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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