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강남임마누엘교회 안수집사 유현종 소설가

2008. 6. 2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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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부는 거만하고 지식인은 교만하다고 한다. 40여년 작가생활을 하면서 소위 인기작가란 소릴 들으며 교만의 극치를 보이며 살아왔다. 그 교만에 더욱 부채질한 사건은 내 나이 스물아홉 살 때 쓴 중편소설 '유다행전'이 신진작가로 출세를 좌우하던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게 되었을 때였다.

'유다행전'은 말 그대로 가룟 유다의 일대기이다. 소설은 신본주의 입장이 아니라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썼다. 유다는 왜 예수님을 팔았을까. 현대인의 입장에서 예수를 바라보자는 것이었다. 유다는 현대인의 속성을 다 가진 악한이었다. 그 소설이 호평을 받고 문학상을 받는 바람에 무명작가에서 벗어나 인정을 받고 인기작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때 쓴 작품들이 장편 '들불' '연개소문' '대조영' 등이었다.

게다가 30대 초반이었던 그 시절 나는 MBC방송 창사기념 일일연속극 현상모집에 당선돼 드라마 작가까지 겸하게 되었다. 교만해질 수밖에 없었다. 목사님들이나 교회를 우습게 생각하게 되었다. '유다행전'을 쓰면서 나는 성경을 9독하고 수많은 관련 자료를 공부했다는 자만심으로 가득했다.

그후 20년 이상을 인기 정상을 누리는 작가생활을 했다. 물론 언젠가는 벌이 내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다행히' 그냥 놔두셨다. 로마서 2장 28절을 보면 "저희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매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리사"란 구절이 있다. 하나님은 나를 그냥 버린 게 아니라 '꺼내어 버리셨다'. 방치이고 유기(遺棄)였다.

유기나 방치는 하나님의 혹독한 형벌이었는데도 나는 그걸 알아채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은 나에게 심근경색이란 병을 주시고 죽음 앞에 세우셨다. 나는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빌고 살려만 주신다면 평생 주를 따르며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매일매일 기도했다. 하나님은 결국 날 용서하셨고 살려주셨다.

그러나 살만해지자 또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구경꾼 신자로 교회생활을 했다. 편하게 믿자는 생각에서 나온 잘못이었다. 그러던 내가 다시 하나님 앞에 바싹 엎드리게 된 것은 장요한이란 목사님을 만나고부터였다. 서울 강남 한복판인 논현동에서 교회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말도 안 된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반경 3㎞ 이내에 대통령을 탄생시킨 교회 두 군데와 1만명이 넘는 매머드급 교회 6개가 빙 둘러싸고 있는 복판에서, 그것도 70평 남짓한 지하방을 얻어 까다롭기 이를 데 없는 강남사람들을 상대로 개척교회를 하자 하니 이해가 안 됐다.

목사님은 집요하게 날 권유했고 결국 승낙했다. 이유는 40여년 작가생활을 하면서 대접만 받고 살아왔고 한번도 남을 위해 살지 않았다는 때늦은 뉘우침 때문이었다. 목사님과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교회를 세웠다. 다섯명이 앉아 시작한 교회 성도는 만 2년 만에 350여명으로 불어났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 돌릴 일이다. 처음엔 부흥이 되지 않아 목사님과 나는 잠도 못 자며 절망에 빠졌었다. 이때 띄운 승부수가 전교인 100일 작정 특별 새벽기도회였다. 목사님은 이 기도회에 생명을 걸었다. 내가 성령의 불을 받은 것은 새벽기도 기간 중이었다. 어렴풋이 잠들었던 것 같은 밤이었는데 시가 수천만원짜리 청자 항아리를 꺼내들고 먼지와 때를 닦아냈다. 그 항아리는 제일 아끼는 가보였다. 그 비싼 항아리를 닦다가 그만 실수로 내려뜨렸고 항아리는 박살이 났다. 얼마나 놀라고 아까웠던지 나는 슬픈 비명을 내질렀다.

그 순간 깨진 파편들이 불덩이로 변하며 내 몸 안으로 들어와 온몸이 불덩이로 변하는 것이었다. 환청을 들은 것은 그때였다. "아까워하지 마라." 그때 잠에서 깨었는데 비몽사몽이었다. 여전히 온몸은 불덩이였고 전신은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것이었다. 도대체 하나님은 꿈속에서 왜 그렇게 비싼 내 항아리를 깨뜨린 것일까. 무슨 의미인가. 그제야 항아리 깨지는 이야기가 사사기 7장 어디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황급히 찾아 읽었다.

하나님은 기드온을 불러 해마다 쳐들어와 약탈을 일삼는 미디안족을 쳐서 멸하란 명을 내리신다. 하나님은 추리고 추린 300의 결사대만 남기고 왼손에는 횃불을 감춘 항아리를 들게 하고 오른손에는 나팔을 든 채 전장에 나서도록 한다. 기드온의 결사대는 한밤중에 적진으로 숨어든다. 적의 대군이 잠이 들었을 때 기드온의 군대는 그 대군을 포위하고 항아리에서 횃불을 꺼내 높이 들고 나팔을 분다. 놀라 잠에서 깬 적은 사방에 횃불과 나팔소리가 가득하자 저희끼리 짓밟으며 대패를 당하고 도망치고 만다.

그 순간 나는 깨진 항아리에서 나온 횃불이 성령의 불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바싹 깨지지 않고는 성령의 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나의 항아리와 기드온의 항아리가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까워하지 말라는 환청은 바로 주님의 음성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깨지고 죽어져야 다시 세워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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