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화련] 콩을 심었더니

2008. 6. 2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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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처음 짓는 농사에 의욕이 넘쳤다. 고참 농부들이 옆에서 잘한다 잘한다, 추어주는 대로 열심히 심어 가꿨다. 특히 콩에 공을 많이 들였다. 밭에는 콩 말고도 고추, 들깨, 고구마 등 열 가지가 넘는 작물이 있었는데 모두 모종을 사거나 얻은 것들이었다. 콩은 직접 씨를 심었다. 내 손으로 씨 뿌려 싹 틔운 콩에 유난히 마음이 갔다.

한 톨의 씨앗에는 한 포기의 초록이 담긴다. 한 그루의 생명이 숨쉰다. 그 생명을 깨우려면 대지의 품에 맡겨야 한다. 다독다독 흙이불을 덮어 씨앗을 재워야 한다. 순리에 따라 빨리 깨어나고, 느지막이 눈을 뜨고….

우리 콩은 여드레를 자고 깼다. 기지개를 켜듯 흙을 밀치고 일어나 차근차근 떡잎을 펼칠 때까지 설레며 기다렸다. 모종을 구해 심으면 그런 기다림이 없다.

내가 심은 콩은 검은콩과 청대콩이었다. 검은콩은 밥밑으로 쓰고, 청대콩은 메주를 쑤려고 두 이랑씩 심었다. 어렸을 때, 콩 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곱게 다듬은 이랑에 발꿈치를 쿡 찍어 씨앗 넣을 자리를 만들곤 했다. 그 기억을 더듬어 적당한 간격으로 세 알씩 심었다. 한 자리에 두 포기씩 키우면 되지만 혹시 싹이 안 나는 게 있을지 몰라 한 알씩 더 넣었다. 심고 나서 그물로 덮었다. 그냥 두면 산비둘기와 꿩이 파먹는다고 했다.

어떤 할머니는, 새들이 눈치 못 채게 몰래 심었는데도 용케 알고 먹어버렸다고 속상해 했다. 어떻게 몰래 심었느냐고 했더니, 어둑어둑해서 새들이 숲으로 돌아갔을 때, 씨앗을 주머니에 감추고는 안 심는 척 심었대나….

산에 붙은 밭이어서 그런지 정말 비둘기들이 자주 내려왔다. 사람이 가까이 갈 때까지 종종걸음으로 밭가를 맴돌다 꾸룩꾸룩, 소리치며 날아올랐다. 그 울음소리는 크고 날카로웠다. 어쩐지 욕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긴, 콩 냄새는 달콤하게 나는데 밭을 이랑째 꼭꼭 싸매 놓았으니 약이 오르기도 했을 것이다. 꿩도 속이 편치 않은 모양이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꿔엉꿔엉, 골짜기가 떠나가라 울어대는 것으로 속풀이를 하는 듯했다. 그래도 나중에 그물을 걷었을 때, 그때까지 떡잎을 펴지 못한 콩은 새들 차지가 됐다. 그만하면 맛은 봤으니 새들의 섭섭함이 조금은 풀리지 않았을까.

콩밭을 넘보는 건 새들만 아니었다. 순지르기를 할 만큼 자라자 산토끼와 고라니가 덤벼들었다. 서너 포기를 뜯어 먹히고 나서야 알아채고, 씨앗을 덮었던 그물로 울타리를 쳤다. 예전에 고향 마을에도 산자락을 일군 밭이 있었지만 산짐승 때문에 속을 끓이는 것은 보지 못했다. 더러 들쥐가 수박을 파먹고, 가을 논에 참새가 날아들기는 했어도 고라니를 막으려고 그물을 치는 일은 없었다. 산을 함부로 깎아내고 호랑이 늑대 같은 동물을 멸종시킨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는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무거운 마음을 달래주듯 콩밭은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갔다.

이화련(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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