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간행서 길어올린 조선 하층 여인들 삶 '조선이 버린 여인들'

조선이 버린 여인들(손경희/글항아리)
조선왕조실록에 빠졌던 여성 사학자가 실록의 행간을 읽어 조선사회 하층 여성의 삶을 복원한 '조선이 버린 여인들'(글항아리)을 출간했다.
한국근대사를 전공한 저자 손경희(38·사진)씨는 16일 전화인터뷰에서 "대구 계명대에서 '한국 역사속의 여성'을 강의하면서 조선의 밑바닥 여성들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들의 구체적인 삶을 찾아나선 것이 실록읽기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노비 기녀 첩 등의 천민은 한 시대를 살았으나 문자를 몰랐던 탓에 그들의 존재감을 느낄 만한 기록이 없어요. 하층민에 대한 전문가의 연구가 부족한 것도 그런 이유죠. 아이러니하게도 권력의 기록인 왕조실록에서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었지요."
손씨는 조선전기에 해당하는 세종∼성종 연간을 살았던 33명의 하층 여성의 삶을 재구성했다. 당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성폭행사건의 피해자로 그들은 실록에 실려 있다. 판관 3명에게 동시에 성폭행 당한 사노비 무심, 백주 대낮 칼에 목을 찔려 죽은 백이, 꿈에 남자를 봤다는 이유로 주인에게 살해 당한 계집종 고읍지, 재산다툼에 치여 본처에게 맞아 죽은 첩 서가이….
손씨는 "어찌보면 가정사나 애정사에 그칠 수 있는 사건들을 왕과 대신들이 관심 있게 논했던 것은 가정을 중심으로 유교적 질서를 만들어내려 했던 조선 전기라는 시대적 특수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록에 나오는 간통사건의 4분의 1이 조선 초인 세종에 집중돼 있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그러나 왕과 신료들이 논한 하층 여성들에 관한 정보는 소략했다. 서가이의 경우도 '본처에 매맞아 죽었다'는 짧은 언급 뿐. 손씨는 상상력을 발휘해 살을 붙이고 매끈한 글 솜씨로 숨결을 불어넣었다. 무엇보다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런 노력으로 서가이의 억울한 죽음은 구체성을 띠고 되살아난다.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머릿속 비녀가 풀릴 듯 매달려 있고 머리카락은 엉겨붙어있었다. 서가이는 마지막 숨을 내쉬며 남편과 보냈던 시간들, 네 딸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녀의 시신을 붙들고 오열하던 어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주인여자에게 '왜 내 딸을 죽였냐'며 소리를 질렀다."(152쪽)
역시 학자였다. 문학성을 가미해 그들의 삶을 살려냈으나 연구와 분석이라는 무게 중심을 잃지 않았다. 여종으로 양반 첩이 된 서가이가 죽게 된 것은 본처의 질투 이전에 남편의 죽음 후 잃게 될 재산에 대한 탐욕이 본질적인 이유라고 지적한다. 서가이가 낳은 딸은 첩의 자식이었지만 당시 경국대전에 따르면 부모의 재산 중 10분의 1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조선의 형벌제도와 노비, 기생들의 남성관과 현실인식, 여성에 대한 봉쇄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당시 시대상을 짚어주는 '깊이 읽기' 8꼭지를 중간 중간 삽입해 인문학적 책 읽기의 묘미를 살렸다.
손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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