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울리고 웃기는 '노장의 힘'
[데일리안 이준목 기자]최근 막을 내린 MBC 드라마 <고맙습니다>에서는 종영을 앞두고 '어느 노인의 죽음'이 안방극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미스터 리'역의 신구, 비록 치매에 걸려 자신의 가족들도 알아보지 못하지만, 손자뻘 되는 젊은이에게 "형"이라고 부르며 천진한 웃음을 잃지 않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치매노인을 그저 '불쌍한 존재'가 아닌 따뜻한 온기를 지닌 우리의 가족이자 이웃으로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극중 미스터 리가 세상을 떠난 지난 9일 방송직후 드라마 게시판에는, 마치 실제상황을 연상시키듯 시청자들의 '애도의 물결'이 넘쳐났고, '미스터 리'가 인터넷 포털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늘날 드라마가 인위적인 눈물을 짜낼 수는 있어도 대중을 감동시키기는 어려워진 요즘, 고희를 넘긴 노배우의 '진심어린 연기'가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인 결과다.
신구는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다양한 작품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배우다. 이제는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니들이 게 맛을 알아'(CF)나 '4주 후에 뵙겠습니다.'(사랑과 전쟁) 같은 유행어들을 통해 젊은이들에게도 친숙한 이미지를 안겨주었다면, <8월의 크리스마스>나 <네 멋대로 해라>속 우리 시대 보통 아버지의 모습이나,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사고뭉치 영감 노구,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 허허실실의 베테랑 수사관, <열아홉 순정>에서 노년에도 능동적인 삶의 자세를 보여주는 '홍영감'의 캐릭터 등은 신구라는 필터를 통해 한층 입체감 있는 인물로 살아났다.
최근 신구와 마찬가지로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종횡무진활약하고 있는 '노장들의 재발견'이 활발하다. <거침없이 하이 킥>에서 '야동순재'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이순재를 비롯하여, 나문희, 강부자, 여운계, 주현, 변희봉, 백윤식 등 저마다 환갑과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노장들의 관록이 수많은 작품들을 빛내고 있다.
이들은 우리 앞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배우들이 아니다.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들 속에서 꾸준한 작품 활동을 보여 왔지만, 오히려 너무나도 친숙했던 탓에 상대적으로 그 진가를 느끼지 못했던 경우가 많다. 주조연의 구분이나 출연 분량에 좌우되지 않고 자신이 등장하는 순간마다 화면을 장악하는 노배우들의 내공은 결코 젊은 배우들이 따라올 수 없는 관록을 보여준다.
최근 중견배우들은 흔히 기존의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중견배우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정형화된 형식을 탈피하여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고 있다. 백윤식이 <지구를 지켜라>의 외계인이나 <타짜>의 도박 고수 역할을 통하여 주목받았고, 변희봉은 <괴물>에서 '괴물'에서 맞서서 가족을 지키려는 소시민 가장의 모습으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신구나 이순재처럼 현역 중에서 가장 선배 격이라고 할 만한 노배우들이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끊임없이 여러 작품 속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소화하며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 투혼을 보여주는 모습은 그 자체로 훌륭한 귀감이 된다. <고맙습니다>의 치매노인 '미스터 리'나, 자식들 몰래 야동을 보려다가 들켜서 쩔쩔매는 <거침없이 하이킥> '야동순재'의 모습은 드라마와 영화 속 판에 박힌 노인의 이미지를 탈피하여, 다양한 사회적 아이덴티티를 가진 우리시대 노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단발적인 스타성이나 외모에만 기대어 '대본만 읽을 줄 알면' 주연을 꿰차는 설익은 배우들이 넘쳐나는 요즘, 진정 농익은 연기로 우리를 울리고 웃기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노장들의 활약이야말로, 관록의 진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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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문화미디어/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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