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세계,닫힌 세상,불안한 인간..영화 '바벨'과 '천국의 나날들'

2007. 2. 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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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연예]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이 보기에 너무 절박하거나 너무 고단한 삶이라 영화인 줄 알면서도 불편할 때가 있다. 나와 전혀 다른 삶, 혹은 극한에 몰린 타인의 삶에 대한 연민일 수도 있고 안일한 자기에 대한 반성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이런 영화들을 보고 나면 삶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은 진지해지고, 세상의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간 듯 마음이 차분해진다.

브래드 피트가 생애 최고의 연기를 했다고 평가받은 '바벨'과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각종 유럽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 등을 8번 수상한 '천국이 나날들'이 그런 영화다.

연결된 세계, 이어지는 이야기

사실 '바벨'에는 브래트 피트의 출연분이 많지 않다. 의상은 단벌이고, 특유의 섹시미나 근육을 자랑하지 않는다. 대사도 적다. 깊게 패인 주름과 절박한 표정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피트는 어느 영화에서보다 깊이 있는 연기력을 보였다.

'바벨'의 줄거리는 마치 콜라병 하나가 꼬이고 꼬여 세상에 회오리를 일으키는 영화 '부시맨' 같다. 청각장애 여고생을 딸로 둔 일본인 아버지는 모로코에 사냥을 갔다가 안내원 핫산의 친절에 보답하기 위해 총 한 자루를 선물한다. 총은 염소를 키우는 이웃에게 팔리고, 철없는 아이들이 쏜 총알은 미국인 여성에게 박힌다. 여자의 남편은 아내를 구하기 위해 고립된 모로코 작은 마을에서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이 부부의 아이들을 돌보는 멕시코인 보모는 아들의 결혼식에 가려하지만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함께 국경을 넘게 된다.

분절적인 듯 보이는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되는 형식은 새롭지 않다. 미국,일본,모로코,멕시코 등 지리적으로 뚝뚝 떨어져있는 네 곳의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영화는 흘러간다. 동일 시점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시간의 편차를 두고 이야기들이 얽혀져 있다.

닫힌 세상, 고립된 인간

영화에는 영어, 일본어, 아랍어, 스페인어 등 6개국어가 사용됐고 피부색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 여러 나라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설정은 제목 '바벨', 영화의 주제 의식과 연관이 있다.

"태초에 인간의 언어가 하나였다. 인간이 하늘에 도전하여 탑을 쌓아올리자 신이 분노하여 인간의 언어를 혼잡케 하고,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어버리시고 그 사이에 혼돈과 단절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의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다."(성서 창세기 11장 중)

결국 '바벨'은 교만한 인간이 하나님의 권위에 맞서 쌓아올린 탑이자, 그 벌로 혼돈과 단절에 빠지게 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자체다. 영화는 바벨 속 인간들의 소외감과 단절감을 포착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모로코의 한 마을에 고립된 미국인 부부, 말이 통하지 않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중동인을 범죄자 대하듯 꺼려하며 적대 감정을 갖는 미국인들, 엄마의 자살로 정신적 혼란을 겪는 치에코, 미국 국경지대에서 아이들의 납치범으로 오해받아 쫓기는 보모. 이들은 하나로 연결된 듯한 세계에 살고 있지만 각자의 상황 속에 갇혀 있고, 그 단절 속에서 치떨리는 혼돈과 외로움을 겪고 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치에코에게 보이는 세상, 코 앞에 존재하지만 저만치 단절돼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사실 모두가 겪는 단절감이다. 영화는 모로코 타자린 마을의 한 가족이 절박한 부부에게 보여주는 작지만 큰 위로를 통해, 혼돈과 단절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얘기한다. 또 자국민의 생명이 경각에 달렸음에도 테러 운운하며 타국과 정치적 논쟁을 벌이는 미국을 통해 무엇이 혼돈과 단절을 조장하는가를 꼬집는다.

지옥 같은 '천국의 나날들'

'천국의 나날들(Pleasant Days)'은 역설적인 제목이다. '바벨'보다 더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사람들의 삶은 지리멸렬하고 심란하다.

형량이 반으로 줄어 조기 출감한 피터를 따라 헝가리의 한 도시 빈민가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동네에는 조직을 거느리고 있는 야누스가 있다. 그에게는 아내와 아들, 가족이 중요하지만 정부 마야에 대한 욕심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그녀가 하수인의 아이를 출산했어도, 또다른 하수인 피터와 가까이 지내는 것 같아도 그녀를 버릴 수 없다. 마야는 야누스의 경제적 도움 아래 살지만 자유분방한 삶도 포기할 수 없다. 아이를 낳아 돈을 받고 판 그녀는 그 후에도 문란한 생활을 계속 한다.

피터의 누나는 돈 벌러 독일에 간 남편의 공백, 아기처럼 키우던 동생의 성장으로 인해 생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아이를 산다. 마야가 마음을 바꿔 아기를 돌려달라고 하지만, 창녀 같은 마야보다는 자신이 좋은 엄마라고 생각한다. 피터는 마야의 아이가 조카로 둔갑한 것도 알고, 마야가 야누스의 정부이자 친구의 애인인 것도 알지만 그녀에게로 향하는 욕심을 멈출 수 없다. 누구 하나 예외랄 것 없이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으로 가득차 있다. 피터는 자신을 둘러싼 얽히고 설킨 인간 관계 속에서 극도의 혼란과 두려움을 느끼고, 그것은 해서는 안 될 범죄로 이어진다.

헝가리의 곪은 속내 '날 것'으로 드러내

우울할 정도로 지리멸렬한 하류층 사람들의 삶은 급격하게 외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헝가리 경제의 감춰진 뒷면이다. 최근 동유럽 국가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헝가리는 서구화 과정에서 인플레이션과 빈부격차의 심화, 낮은 임금을 받는 도시 빈민의 증가를 겪고 있다. '천국의 나날들'은 성장의 희생양이 된 도시 하층민으로 태어난 젊은이들의 비극적 삶을 영상에 담아냈다.

영화에는 섹스와 범죄, 사랑과 증오가 넘쳐난다. 도시 빈민들의 절망적인 삶은 '날 것'으로 앵글에 담겨진다. 여과없이 보여지는 남녀의 성기와 벗은 몸, 거친 섹스, 생생한 출산 장면은 '날 것'의 느낌을 강화시킨다.

'천국의 나날들'은 주인공들의 불안한 심리를 대사가 아니라 장면으로 보여준다. 스태디캠이 잡아낸 역동적인 화면은 흔들리는 청춘들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22일 나란히 개봉

2000년 '데이 애프터 데이즈'로 주목 받은 배우 출신의 신인감독 코냐 먼드루샤는 2002년 선보인 '천국의 나날들'로 유럽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파괴적인 젊음을 온 몸으로 표현한 마야 역의 오르소냐 토스는 2002년 헝가리 필름 주간에서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토스는 먼드루샤 감독과 함께 작업한 '성녀 요한나'로 2005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한 배우다. 2002년 만들어진 영화지만 뒤늦게 오는 22일 국내 개봉된다.

마찬가지로 22일 개봉하는 '바벨'은 2006년 칸영화제 감독상, 2007년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아카데미에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작곡상, 여우조연상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특히 청각장애인 치에코 역을 맡은 키쿠치 린코, 멕시코인 보모를 연기한 아드리아나 바라자가 여우조연상 후보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보모와 함께 멕시코에 가는 데비 역의 엘르 페닝은 헐리우드 '무서운' 아역배우 다코타 패닝의 여동생이다. '바벨'로 언니의 뒤를 이어 아역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다. 사진='바벨'은 스폰지,'천국의 나날들' ㈜코랄픽처스 제공.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기자 dunasta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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