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종화 (5) 연탄품질 실험하다 가스중독 실신

기도문의 효력으로 사고가 급격히 줄어들자 1984년 겨울에 수송과장에서 관리차장으로 승진,품질관리실장을 맡았다. 당시 연탄은 겨울철 난방에 으뜸 에너지원이었다. 실장을 맡은 뒤 가장 먼저 연탄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품질관리실에 전용 기도실을 설치했다. 영적 지혜를 얻기 위해서였다.
연탄의 품질은 무급탄에서 최고 1급탄까지 모두 8단계로 구분된다. 무급탄은 불을 붙여도 타지 않는 탄을 말한다. 1급탄은 불이 잘 붙어 냄새도 나지 않으며 열효율도 가장 높은 탄이다. 나는 최고 품질의 연탄을 만들기 위해 품질관리실에서 아예 숙식을 하면서 연구에 매달렸다. 불과 1개월의 연구 끝에 고질탄(1∼2급탄)만을 생산할 수 있다고 자신감 있게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이 보고서가 제출된 지 하루 만인 1984년 4월2일,대형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무급탄을 1급탄으로 둔갑시켜 무려 4만∼5만장의 불량 연탄을 시중에 유통시켰다는 이른바 '저질탄 사건'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는 동원연탄 공장에서 생산되는 전체 연탄 중 10%에 해당하는 분량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 KBS MBC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등 국내 유력 방송과 신문의 톱기사로 보도됐다. 방송과 신문은 연일 속보경쟁을 벌였으며 우리 공장에는 연탄을 찍어내는 과정을 분석키 위해 방송국 카메라가 며칠 동안 설치돼 있었다.
연탄공장은 일시에 쑥밭이 되고 말았다. 공장 가동은 중단됐으며 그때까지 생산된 연탄만 소비자에게 배달됐다. 소비자들은 불매운동을 벌였고 항의전화가 빗발쳐 회사의 업무가 마비됐다.
결국 검찰의 수사가 이뤄져 품질관리를 맡은 직원 5명이 구속됐다. 검찰수사 결과 이들은 강원도 모 광업소에서 생산된 무급탄을 1급탄으로 둔갑시켜주고 정기적으로 뇌물을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 경영진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인지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 상황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공장 근처 약국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수면제를 구입했다. 그렇게 해서 40알을 모았다. 그런 뒤 직원들의 발길이 뜸한 사무실에서 수면제를 복용하기로 했다. 직원들이 퇴근했다. 나는 주위를 잘 살핀 후 빈 사무실에 들어갔다.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마지막 남길 말을 생각하다가 그만 슬쩍 잠이 들고 말았다. 비몽사몽 중에 어디선가 음성이 들려왔다. 그 음성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멀리서,가까이에서 동시에 들려오는 듯했다.
"염려하지 말라. 너는 내 것이다."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곧장 품질관리실의 기도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성경을 펼쳤다. 손바닥에는 흥건히 땀이 흐르고 있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하나님은 이 말씀으로 내 자살 의도에 쐐기를 박아주셨다. 그 순간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면서 의욕이 샘솟듯 솟구쳤다. 다음날부터 사무실에서 고품질 연탄을 만들어내기 위한 실험에 매달렸다. 수많은 밤을 하얗게 지새우면서 계속 실험을 해나갔다. 그럴 때 소비자들로부터 냄새가 심하게 난다는 항의가 들어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난로에 실험탄을 피워놓고 냄새를 계속 체크하다가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연탄가스에 중독된 것이다. 누군가가 내 얼굴을 때리면서 몸을 마구 흔들어댔다. 경비주임이었다. 그는 동치미 국물을 연방 입에 떠넣어줬다. 겨우 의식을 차려 눈을 떠보니 회사 임원진이 모두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눈을 뜨자 임원진은 "이 실장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대학졸업자를 품질관리실에 채용해 근본적으로 연탄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
당시 연탄공장의 직원들의 학력 수준은 겨우 중졸 정도였다. 회사에서 내 뜻을 받아들여 대졸사원을 모집했다. 국내 연탄공장에서는 처음으로 대졸 직원을 채용하게 된 것이다.
이런 조치에 의해 연탄시장 점유율은 인수 당시 5%에서 45%로 급성장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성경 말씀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렇게 성취됐다.
정리=남병곤 편집위원 namb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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