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덕천리유물 '신라건국 밝혀질까' 관심

2006. 10. 2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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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경부고속철도 경주통과 구간 완공을 앞두고 또다시 내남면 덕천리 구간에서 신라 건국시기인 사로국(斯盧國) 시대의 유적이 대량 확인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철도시설공단 요청에 따라 2004년 6월부터 3만5천여㎡에 달하는 덕천리 유적 발굴에 나선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은 25일 현장에서 정징원·이청규 문화재위원과 김성구 국립경주박물관장, 이희준 경북대 교수, 김권구 계명대 교수 등이 참가한 가운데 지도위원회를 열고, 발굴유구 및 출토유물의 성격 등에 대한 설명과 향후 유적의 처리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박승규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 책임조사원(연구실장)은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29기와 원삼국시대 목관묘와 목곽묘 등 235기, 삼국시대 이후 도로유구 및 구상유구 등 36기 등 모두 300여기의 유구가 확인됐다"면서 "또 청동기시대 무문토기와 원삼국시대 오리모양토기 등 유물 2천347점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박 책임조사원은 또 "덕천리 유적이 원삼국시대 대규모 분묘군임이 확인됨으로써 이 유적이 초기신라 사로국의 모체가 되는 새로운 집단으로 파악된다"며 "이를 통해 1∼3세기 초기 신라의 형성과정과 문화상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수의오리모양토기와 마형대구 호형대구는 피장자의 신분을 과시하는 위세품으로 이를 통해 덕천리 유적의 정치적 지위를 파악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경주대 이근직 교수(신라사)는 "덕천리 유적 발굴성과를 존중한다면, 이들 유적을 남긴 주인공은 돌산 고허촌 혹은 사량부 세력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면서 "다만 이 덕천리 유적 일대가 돌산 고허촌의 중심지였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신라 초기 사로 6촌에서 촌장들이 박혁거세를 앞세워 건국한 것은 기원전 57년. 신라 6촌 및 촌장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이름이 기록돼 있고, 이 가운데 이번에 유적이 발견된 곳은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촌장 소벌도리)으로 알려진 곳이다. 6촌은 이외에도 알천 양산촌과 취산 진지촌, 무산 대수촌, 금산 가리촌, 명활산 고야촌이다.

이들 6촌도 나중에는 부(部)로 명칭이 바뀌고, 사로국이 나아가 '진한 6부(辰韓六部)'가 된다. 박혁거세 옹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고허촌장은 양산 기슭에 올라 나정에서 말이 하늘로 오르고, 그곳에서 알에서 깨어난 아이가 바로 혁거세라는 기록도 있다.

따라서 신라 건국에서 돌산 고허촌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곳이다.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 영남일보 경주=임준식기자 jun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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