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 재개발 열매' 누가 챙겼나 원주민 재정착률 8.8%의 '그늘'

2006. 10. 18. 14:5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김연기 기자]

▲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불리는 서울 관악구 신림7동 산 101번지 난곡. 추석 연휴가 막 끝난 뒤인 지난 10일 이곳을 찾았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딱 어울릴 만큼 난곡은 몰라보게 변했다. 왼쪽은 프리랜스 사진가 박미향씨가 1995년 촬영한 난곡 전경.
ⓒ2006 박미향·오마이뉴스 김연기

<서울의 달>을 아시는지요? 1994년 드라마 속 주인공 홍식(한석규)과 춘섭(최민식)을 기억하시나요? 그네들을 비롯한 달동네 사람들의 이야기가 팍팍한 우리 일상을 꼭 닮아 이 드라마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허나 달동네가 이젠 사라졌습니다. '대한민국 대표 달동네'로 꼽혀온 난곡도 그 자취를 슬그머니 감췄습니다. 대신 그곳엔 첨단 아파트숲이 자리 잡았습니다. 사람들은 난곡의 변신을 두고 뽕밭이 푸른 바다로 변했다고 합니다. 더러는 달동네에 뜬 황금달로 비유하기도 하고요.하지만 재개발 이후에도 여전히 '달동네' 난곡은 남아 있습니다. 아직 그곳에 머물러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천지개벽하듯 휘황찬란하게 변한 난곡은 그들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들 위로 비추는 달은 황금달일까요, 아니면 여전히 '서울의 달'일까요.

난곡 어떤 곳?

난곡은 서울 관악구 신림 7동을 중심으로 3, 10, 13동에 걸쳐 있다. 난곡은 햇볕이 잘 들어 난초가 무성한 데서 비롯된 고유 지명이다. 1967년 정부의 도심 판자촌 철거 정책 이후 대방동, 용산, 서울역, 청계천 등지의 판자촌 주민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70년대에는 농촌에서 유입된 인구가 다시 한번 들어와 거주민이 급격하게 늘었다. 산비탈의 가파른 골목을 따라 단칸방마다 7~8명이 한데 모여 살았다. 야학을 하는 대학생들이 찾아왔고 수많은 사회운동가들이 이곳에서 빈민운동을 했다.

1973년 재개발 구역으로 처음 지정된 뒤 1982년 구역지정 해제, 1995년 재지정 등 절차를 거친 뒤 지난 2000년 6월 주택공사가 사업시행자로 지정되면서 재개발에 착수했다.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불리는 서울 관악구 신림7동 산 101번지 난곡. 추석 연휴가 막 끝난 뒤인 지난 10일 이곳을 찾았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달동네' 난곡은 온데간데 없고 이미 그곳은 쾌적한 '아파트숲'으로 탈바꿈했다. 아파트 곳곳에는 '입주민을 환영합니다'는 플래카드가 나부꼈고 아파트 입구 주변에는 화단 마무리 공사로 분주했다.

한때 도시 철거민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2600여 가구 1만3000여 명이 거주했던 난곡은 이처럼 몰라보게 달라졌다. 대한주택공사가 지은 '휴먼시아' 3322세대와 대우건설의 '푸르지오' 499세대가 오는 27일까지 입주를 완료한다. 북쪽을 제외한 3면이 관악산, 삼성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꼭 거대한 숲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테니스장과 인라인스케이트장, 체육관, 피트니스센터 등 첨단 편의시설도 갖췄다. 2008년에는 지하철 신대방역과 연결되는 최신 경전철이 들어서 '옥의 티'로 꼽혀 온 교통난도 해소된다고 한다.

주공에서도 한껏 홍보에 열을 올렸다. 입주기간 내내 주공은 "기존 아파트와 달리 파출소, 동사무소, 공원 등이 들어서 미니 신도시를 연상시킬 만큼 기반시설이 풍부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주거여건이 좋아지면서 아파트값도 껑충 뛰었다.

천지개벽하듯 변한 난곡, 프리미엄만 1억원

▲ 난곡 아파트는 단지 내 테니스장과 인라인스케이트장, 체육관, 피트니스센터 등 첨단 편의시설을 갖췄다. 주변 경관도 좋아 프리미엄만 1억원이 넘는다.
ⓒ2006 오마이뉴스 김연기

평당 가격이 1000만원을 넘어 24평형이 2억5000만원, 34평형은 4억원, 44평형은 6억원 안팎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한마디로 버려진 달동네가 서울 서남권을 대표하는 아파트 단지로 우뚝 서게 된 셈이다.

인근 제일공인중개사무소 김선명 대표는 "신림동 1514번지 일대 16만평이 3차 뉴타운으로 지정돼 있어 앞으로 개발이 끝나면 난곡 일대는 다시 한번 변신하게 된다"며 "서울 서남권에서 으뜸가는 쾌적한 신흥 주거단지로 급부상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여름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제한 등 규제정책과 계절적 비수기 요인도 천지개벽하듯 변한 난곡 앞에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 매수세가 꾸준이 유입되면서 프리미엄만 1억원이 넘었다.

산비탈을 따라 가파른 골목길에 줄줄이 늘어선 단칸방들이 쾌적한 주거 환경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은 분명 반길 일이다. 청소년 쉼터 '난곡 사랑방'의 이상섭 간사는 "문제는 그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갔느냐는 점"이라고 말했다. 실제 입주가 시작된 지 한달 남짓 난곡의 주변에서 만난 이들의 얼굴에선 그 변신이 드리운 그늘이 짙기만 했다.

"난곡 재개발의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갔는가"

▲ 난곡에서 살다 재개발로 비탈길 끝자락 지하셋방으로 살림을 옮긴 김재순(79) 할머니는 "40년 넘게 이곳에서 살았지만 내 방 한 칸 주어지지 않았다"며 "예전에 살던 곳이 저렇게 휘황찬란하게 변한 모습을 보면 가슴이 더 쓰리다"고 말했다.
ⓒ2006 오마이뉴스 김연기

우선 지금 난곡에 새로 입주하는 이들은 대부분 이곳에 살던 이들이 아니다. <오마이뉴스>가 주공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사업시행인가(재개발 지구 지정) 당시 권리자(가옥주) 2498세대 가운데 실제 난곡 거주자는 전체의 14.7%인 435세대에 불과했다.

김선명 제일공인중개사 대표는 그 이유에 대해 "재개발 지구 지정 전 투기꾼들이 몰려들면서 실제 거주자들은 오랫동안 살아온 터전을 잃고 인근 지역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435세대 가운데 절반가량인 220세대만이 이번 재개발 아파트 재입주 대상이다. 나머지는 억대가 넘는 분양금을 마련하지 못해 입주를 하지 못하고 이주비를 챙겨 '어딘가'로 옮겨갔다. 재개발 지구 지정 당시 가옥주 대비 재정착률은 8.8%(2498세대 중 220세대)에 불과하다. 결국 나머지는 이곳에 살지 않았던 이들의 몫으로 돌아간 셈이다.

이에 대해 주공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한태언 도시정비처 도시정비사업3팀장은 "아직 아파트 입주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만큼 정확한 재정착률을 알 수는 없다"며 "오는 27일 입주가 완전히 끝나봐야 재정착률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거주자가 아닌 가옥주 가운데 입주를 할 경우 재정착률은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얘기다.

주공 "입주 완료돼야 정확한 재정착률 파악"

▲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는 이제 사라졌다. 하지만 40년 전 정부의 철거민 정책에 힘없이 떠밀려 왔던 세입자들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개발의 그늘 아래 놓여 있다. 난곡 아파트 아래로 여전히 판잣집들이 자리하고 있다.
ⓒ2006 오마이뉴스 김연기

하지만 인근 부동산 업자들의 얘기는 다르다.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재개발 지구 지정 이전에 이미 손바뀜이 일어나 상당수 원주민이 이곳을 떠났다"며 "실거주자가 아닌 가옥주 대부분은 원주민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입주권이 원천적으로 배제된 세입자들의 사정은 이보다 더 열악하다. 주공에 따르면 사업시행인가 당시 세입자는 1501세대였다. 당시 가옥주 가운데 435세대만이 실제 거주자였던 것을 감안하면 재개발 착수 당시 난곡에 살던 이들은 대부분 세입자였던 셈이다.

재개발 공사에 들어가면서 세입자 1501세대 가운데 666세대는 주공이 마련한 순환형이주단지(임대아파트)에 입주했다. 그러나 임대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한 세입자 835세대는 수십년 동안 이곳에서 둥지를 틀었던 원주민이라 하더라도 쫓기듯 난곡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멀리 가지 못했다. 재개발 혜택을 받지 못한 '진짜' 난곡 사람들인 세입자들은 대부분 여전히 이곳 주변에서 살고 있다.

이상섭 '난곡 사랑방' 간사는 "뽕 밭에서 푸른 바다로 변했다는 이곳에는 아직도 쪽방이나 지하셋방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예전 난곡 주민이 300가구를 넘는다"고 말했다.

난곡에서 살다 재개발로 비탈길 끝자락 지하셋방으로 살림을 옮긴 김재순(79) 할머니도 그 중 한명이다. 김 할머니는 "40년 넘게 이곳에서 살았지만 내 방 한 칸 주어지지 않았다"며 "예전에 살던 곳이 저렇게 휘황찬란하게 변한 모습을 보면 가슴이 더 쓰리다"고 말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는 이제 사라졌다. 하지만 40년 전 정부의 철거민 정책에 힘없이 떠밀려 왔던 세입자들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개발의 그늘 아래 놓여 있다. 상전벽해란 말이 실감나듯 파란 하늘 위로 쭉쭉 뻗은 난곡 아파트는 그 높이만큼이나 그늘도 짙게 드리운다. 그리고 그 그늘엔 아직도 제 살 곳을 찾지 못해 떠도는 '진짜' 난곡 사람들의 설움이 있다.

/김연기 기자

- ⓒ 2006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