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영 직계후손 영순 태씨(太氏) "누가 감히 발해를 넘봐"

입력 2006. 10. 3. 10:30 수정 2006. 10. 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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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직계후손인 영순 태씨(太氏)들이 개천절을 하루 앞둔 2일 오후, 경산시 남천면 송백리 사당에서 60년만에 추계향사를 올렸다. 영순 태씨가 이날 특별히 추계향사를 올린 까닭은 조상들이 세운 발해국을 중국이 멋대로 폄훼·조작하는 망동을 서슴지 않는 것을 도저히 그대로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이후 400여년 집성촌을 이루고 이곳에서 살아온 영순태씨는 원래 매년 춘분에 전국의 태씨종친회원들이 모인 가운데, 춘계향사를 지내왔다. 그러나 올해는 마을 종중 어른 20명이 모여, 조촐하지만 뜻깊은 추계 향사를 올렸다.

귀면와(鬼面瓦)와 연꽃무늬 기와 등 발해의 건축양식을 간직한 사당에서 이들은 한때 고구려의 고토(故土)를 대부분 차지하고 북방을 호령했던 선조들을 기렸다. 대대로 내려오는 고구려식 홀기(笏記·관혼상제의 형식과 순서를 적은 글)에 따라 엄숙하고 진지하게 향사를 지냈다.

송백리는 경산 남천면에서 자인·용성 방향으로 10리쯤 가다가 송백·신방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2㎞가량 가야한다. 경산의 진산이자, 남천 발원지인 선의산이 바로 마을 쪽에 있다.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농촌마을로 소나무가 많아서 예전엔 송천(松川)으로 불렸다.

마을엔 현재 약 20가구, 35명 정도의 영순태씨 후손들이 살고 있다.

국내 발해학박사 1호인 한규철 교수(경성대 사학과)는 "발해 시조 대조영의 후손임을 증명할 수 있는 가보(家譜)를 가진 태씨들이 중국에는 없다. 한국에 유일하게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같은 사실은 발해유적지에서 나온 우리의 고유한 건축·생활 양식과 더불어, 발해의 구성원이 고구려를 계승한 한민족이라는 명백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영순 태씨 경산종중회장인 재욱씨는 "지난해부터 후손들에게 종중의 뿌리와 발해 역사를 알리는 노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며 "발해국 왕족의 후손이 이곳에 버젓이 살고 있는데 어찌 감히 중국이 발해를 자기 역사로 둔갑시킨단 말이냐"고 분노를 터뜨렸다.

향사에 처음 참석했다는 태경곤씨(37·국정홍보처 분석2팀)는 "감회가 깊다. 조상의 역사인 발해사에 대해 더 배울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영순 태씨 추모재 중수 추진위원장인 태성호씨는 "망국의 회한을 품고 살아야 했던 조상을 대신해 언젠가 할아버지가 나라를 처음 세웠던 동모산에 올라가 절하고 술을 한잔 올리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영남일보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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