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학이 못다 새긴 불상이 모셔진 성불사
[오마이뉴스 전갑남 기자] 인적이 드문 호젓한 산사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천안시 인근에 있는 성불사도 그런 사찰이 아닌가 싶다. 지난 30일 배짱이 맞는 친구 셋이서 유서 깊은 태조산 성불사를 찾았다.
성불사는 천안에도 있다
▲ 녹음이 터널을 이룬 성불사 입구 |
ⓒ2006 전갑남 |
성불사는 태조산 북서쪽 기슭 가파른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신록의 녹음이 우거진 숲에 뻐꾸기 소리만 간간히 들린다. 조용한 산사에 접어들며 우리 일행은 정말 좋은 곳에 잘 왔다며 한마디씩 한다.
▲ 태조산 범종루이다. |
ⓒ2006 전갑남 |
"절 속 같다는 말이 다름이 아니네!"
"그래서 속세를 떠나 마음을 추스른다고 하잖아."
"이런 데서 세상일 잊고 푹 쉬었으면 좋겠어."
"우리가 여유를 갖지 못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성불사라는 이름만으로도 가곡 '성불사의 밤'이 연상된다. 우리가 찾은 곳이 노래의 무대인 성불사는 아니지만, 분위기만큼은 가곡 속의 성불사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일행이 <성불사의 밤>을 흥얼거린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뎅그렁 울릴 제면 더 울릴까 맘 졸이고끊일 젠 또 들릴까 소리나기 기다려져새도록 풍경 소리 데리고 잠 못 이뤄 하노라- 노산 이은상의 <성불사의 밤>
은은한 풍경소리에 잠 못 이루는 나그네는 무슨 근심이 그리 많았을까? 너무도 복잡한 세상이다. 가끔은 모든 시름을 잊고 멀리 떠나 쉬고 싶을 때가 있다. 아마 나그네도 그런 마음에서 성불사를 찾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털어낸다고 하여 쉽게 벗어날 수 있는 번뇌인가? 녹녹치 않은 세상사를 달랠 수 없어 밤새 뒤척였을 나그네의 마음을 읽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다.
성불사에서 만난 야생화 단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다보니 벌써 성불사이다. 절 입구에 있는 야생화 단지가 우리 일행을 반긴다. 일부러 가꿔놓은 것이지만 산 속에서 만난 야생화를 보니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 성불사에서 만난 야생화. 왼쪽위부터 금낭화, 작약, 백작약, 조개나물, 비비추, 무늬비비추, 무늬둥굴래, 지리대사초, 물레나물, 옥잠화, 종지나물, 용담 |
ⓒ2006 전갑남 |
나는 야생화에 관심이 많다. 흔하고 하찮은 것 같지만 질긴 생명력에 소박한 모습이 좋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아도 소탈한 미소를 짓는 것 같아 유심히 들여다본다. 야생화는 그 이름을 알고 독특한 색깔과 향기에 마음을 두면 친근해지고, 그 멋에 반하게 되는 것 같다.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아도 때를 알아서 꽃을 피우고 살아있음을 몸으로 말하는 들꽃이 아닌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삭막한 공간에 적은 양의 흙이라도 있으면 어김없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모처럼만에 여러 종류의 친근한 야생화를 보게 되어 너무 반갑다. 봄에 피는 꽃은 대부분 져서 아름다운 꽃 모양을 놓친 게 못내 아쉽다. 나중 피어날 꽃모양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기 그지없다. 금낭화와 작약 같은 예쁜 꽃을 볼 수 있는 것도 행운이다.
나는 하나하나 이름을 익히기 위해 사진에 담았다. 수십 종을 둘러보니 처음 대하는 야생화가 많다. 꽃 이름과 특징을 설명해주는 팻말이 있어 야생화를 아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 수령 800년의 성불사 느티나무.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
ⓒ2006 전갑남 |
가파른 길에 오르자 일주문을 대신하는 듯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눈에 띈다. 수령이 800년이나 된 나무가 엄청나게 큰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성불사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하면서 수호신 역할을 하였을 것 같다.
유서 깊은 성불사는 다른 게 있다
벼랑에 앉아 있는 자그마한 대웅전으로 다가갔다. 대웅전의 처마 끝에 달린 풍경소리가 오늘따라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빠금히 열려있는 법당 문 사이로 예불을 하는 불자의 모습이 눈에 띈다. 대웅전에 불상이 안치되어 있지 않고, 대신 뒷면 창으로 석불상이 보였다.
▲ 성불사 대웅전. |
ⓒ2006 전갑남 |
▲ 성불사 산신각. |
ⓒ2006 전갑남 |
대웅전의 모습이 여느 사찰과는 달라 성불사를 안내하는 간판을 자세히 읽어보았다.
성불사는 고려 초기 도선국사에 의해 세워진 사찰이라고 알려졌다. 태조 왕건(王建)은 왕위에 오른 후 도선국사에게 전국에 사찰을 짓게 하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이곳에 와보니 백학 세 마리가 날아와 천연 암벽에 부리로 불상을 쪼아 새기다가 완성을 하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결국 미완성 석불이 남겨졌다는 것이다.
이런 유래로 처음에는 '성불사'(成不寺)라 하였다 한다. 그 후 여러 차례 이름을 고쳐 지으면서 지금의 성불사(成佛寺)라 부르게 되었다. 창 너머 완성되지 않은 불입상(佛立像)을 모시고 있는 게 보통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었다.
▲ 바위에 새겨진 성불사 불입상이다. |
ⓒ2006 전갑남 |
▲ 천안 성불사 마애석가삼존16나한상. |
ⓒ2006 전갑남 |
나는 갈길 바쁘다는 일행들의 채근에도 불구하고 대웅전 뒤편으로 다가갔다. 대웅전 뒤편 사각형 바위 전면에는 불입상이, 우측면에는 석가삼존과 16나한상이 각각 부조로 새겨져 있었다.
나한상을 바위 벽면에 새겨놓은 경우는 매우 희귀하다. 현재 마멸이 심하여 형체가 분명하지 않으나 바위에 새겨놓은 우리나라 유일의 마애나한상이라는 점에서 보존가치가 높다고 한다.
▲ 성불사 좌불상이다. |
ⓒ2006 전갑남 |
대웅전 오른쪽으로는 좌불상이 모셔져 있다. 정교하게 새겨진 불상과 수백 년 전의 전설 속의 불입상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불입상은 비록 딱딱한 느낌을 주지만 어렴풋이 들어난 부처상에 더 정감이 가는 것은 왜일까?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고, 꾸밈없는 조각기법이 더 좋아서 일게다.
약수터에서 나온 약수를 한 잔 들이켰다. 갈증과 함께 마음에 있는 시름까지도 깨끗이 씻어내는 것 같다. 신록으로 터널을 이룬 산길을 내려오는데,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작지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성불사를 빠져나오며 일행에게 한마디 하였다.
"오늘은 맑은 날씨만큼이나 마음이 참 평화롭네. 부처님의 자비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 다음에는 태조산 산행을 겸해서 오면 어떨까?"
/전갑남 기자
덧붙이는 글
교 통 편
* 자가용 : 경부고속도로 → 천안 IC → 천호저수지→태조산* 대중교통 : 천안 시내에서 태조산까지 102번 시내버스 30분 간격으로 운행(20분소요)* 각원사 여행과 함께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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