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독서 좀 그만 하시죠"
[데일리안 김영욱 기자]
◇ 김영욱 기자. ⓒ 데일리안 |
노무현 대통령이 24일 또 이른바 '독서 인사'를 단행했다. 노 대통령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저자가 정부 고위직에 기용되는 것은 이제 낯선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일각에선 노 대통령의 독서가 일으키는 파장이 너무 크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이날 임명된 동북아시대위원회 비서관에 임명된 배기찬씨는 최근 노 대통령이 재외공관장들에게 읽어보라고 한 권씩 선물한 '코리아, 디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의 저자다. 기자도 청와대에 출입했던 지난해 겨울 이 책을 청와대로부터 선물 받아 읽었다.
노 대통령은 이 책을 읽고 두 번이나 배씨를 청와대로 물러 독대를 나눌 만큼 감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배씨는 참여정부 초 청와대 국정과제 행정관으로 일하다가 최근 국회의장 정책비서관을 지낸 386 세대다.
앞서 21일 콜롬비아 대사로 임명된 송기도 전북대 교수의 한 권의 책도 노 대통령의 눈에 들었다. 송 대사의 저서 '콜럼버스에서 룰라까지'는 노 대통령이 지난 2004년 남미 순방을 앞두고 '정독'한 책이다. 송 교수의 이 책은 대사 발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안마 대사로 나가있는 이주흠 전 외교통상부 아태심의관의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은 사상초유의 2004년 대통령 탄핵 시절 노 대통령의 '필독서' 이었는데 노 대통령은 탁핵 직후 있지도 않은 리더십비서관을 청와대에 새로 만들어 그를 기용했다. 노 대통령은 상당기간 이 책을 극찬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참여정부 초대 외교부 장관인 윤영관 서울대 교수의 '21세기 한국의 정치경제모델' 저서는 노 대통령이 이 정권의 초기 블루프린트를 그리는데 혁혁한 공을 했다. 노 대통령은 이 저서에 대해 공사석에서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곧바로 장관 발탁에 영향을 미쳤다.
노 대통령은 오영교 행자부 장관의 '변화를 두려워하면 일등은 없다', 윤성식 정부혁신위원장의 '정부개혁의 비전과 전략' 등도 꼼꼼히 읽었고 이는 고스란히 국정운영에 변수로 작용했다.
그동안 노 대통령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저자가 정부 고위직에 기용되는 선에서 그치지 않았다.
많은 공무원들이 대통령이 읽었다는 책을 덩달아 사보는 바람에 이런 책들은 갑자기 많이 팔리기도 했고, 어떤 정부 부서는 노 대통령의 '필독서'를 단체로 구입해 1박2일 독서 워크숍을 가지는 법석을 떨기도 했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노 대통령이 어떤 책을 읽고 깊이 감동받아 책의 저자를 별안간 정부에 기용하는 것과 국가 정책을 갑자기 수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들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지식에는 흐름이 있고 맥락이 있는데 체계적인 지식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어떤 책을 읽고 지나치게 감명 받는 것은 경우에 따라 별로 옳지 않다는 것이다.
비판론자들은 노 대통령이 벌인 '연정론' '대통령 사퇴론' 등 어지러운 정치게임도 독특한 독서 습관 탓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25일로 대통령 취임 3주년을 맞이한 노 대통령에게 그렇다고 "이제 책 좀 읽지 마시라"는 조언도 할 수 없는 노릇이고./ 김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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