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아 권사..파키스탄 지진구호 가다] 사랑의 만나 짓는 '밥퍼 할머니'

1960∼70년대의 은막 스타 고은아(61·예능교회) 권사가 '밥퍼 할머니'로 변신했다. 파키스탄 지진피해 이재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 비시안 텐트촌 무료 급식소에서 고 권사는 이재민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퍼주는 '예쁜 할머니'로 불리고 있다.
지난 20일 새벽 4시. 고 권사는 칼바람을 피하기 위해 두꺼운 모자를 눌러쓰고 급식소로 향했다. 로티(빵) 반죽과 쌀을 씻고 대형 솥에 밥을 얹을 때쯤 코란을 읽는 기도소리가 텐트촌에 울려퍼졌다. 500명을 먹일 수 있는 대형 솥 6개에서 구수한 밥 냄새가 날 때쯤 날이 밝아왔다.
오전 7시쯤 텐트 문이 걷히며 수백명의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급식소 앞은 어느새 깡통을 들고 두 줄로 늘어선 아이들로 가득 찼다. "천천히 먹어라. 이 정도면 됐지?" 대형 주걱으로 깡통에 밥을 채워주며 고 권사는 아이들에게 아침인사를 건넸다.
"너는 신발 어떻게 했어? 발 안 시려워?" 밥을 퍼주던 고 권사는 주걱을 내려놓고 아이의 꽁꽁 얼어붙은 발을 만졌다. 그제야 아이들의 발을 보니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맨발이거나 샌들만 신은 아이들이 상당수였다. 고 권사는 따뜻한 밥통을 품에 안은 채 돌아가는 맨발의 아이들 뒷모습을 한참 지켜봤다.
고 권사는 지난 19∼21일 기독교 구호단체 기아대책 간사들과 이랜드복지재단 정영일 사무국장,수원 보배로운교회학교 학생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3일간 텐트에서 생활하며 새벽밥을 짓고 이재민들에게 방한복과 전기장판을 전달했다.
비시안 텐트촌은 지난해 10월 강진 발생 이후 세워졌다. 현재 500여개의 텐트 안에는 7명 이상의 가족이 강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살고 있다. 무료 급식소는 오랫동안 서울역 등지에서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급식사역을 전개해온 김범곤(57·예수사랑선교회) 목사가 한기총과 기아대책의 후원으로 로티 기계,대형 솥 등을 갖추고 세웠다. 전기·가스시설이 없던 이곳에 한국인들의 사랑이 이어지자 파키스탄 정부가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
오전 급식을 마친 고 권사는 오후부터 텐트를 돌며 이재민들을 위로했다. 다섯 딸과 아들,손자 등 8명과 살고 있는 나르잔(65) 할머니는 지진으로 큰사위를 잃었다. 또 아들은 다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다. 네살 된 손자는 오랜 텐트생활로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다. 나르잔 할머니는 고 권사의 손을 꼭 잡으며 "며칠 전 남편이 먼저 죽었다"며 "너무 지치고 힘들지만 이렇게 우리를 생각해주는 이들이 있어 힘이 난다"고 울먹였다.
아들과 단 둘이 사는 리비군대게(66) 할머니는 고 권사에게 지진 때 다리를 다쳤다며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리비군대게 할머니는 집이 무너져 이틀 동안 갇혔다가 구출됐다. 고 권사는 준비해간 방한복을 할머니에게 입혀주며 빠른 쾌유를 빌었다.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며 올해 구호현장 봉사활동을 서원했다는 고 권사는 "앞으로는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겠다"며 "무엇보다도 먼저 '맨발의 예수'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누인 예수'들이 너무 많은 이곳 파키스탄을 도와야 한다"고 호소했다. 오는 5월까지 무료 급식을 지원하는 기아대책은 현재 이재민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전기장판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비시안=글·사진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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