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든 속 빈 강정 한번 보실래요?

2006. 1. 1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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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윤희경 기자] 며칠 전 뻥튀기 아저씨가 "뻥, 뻥이요" 하며 강냉이, 튀밥, 누룽지를 튀겨내고 돌아간 자리에 고소한 고향 냄새가 온 동네를 맴돌고 있습니다.

어느새 설밑이 가까워졌나 봅니다. 동네 아줌마들이 주물러내는 찹쌀가루 반죽, 조청을 고아내는 추억의 냄새, 강정을 기름에 튀겨 고명(참깨, 튀밥 등)을 발라내는 바쁜 손놀림에 그만 코끝이 '킁킁' 저려옵니다.

▲ 고명을 묻히기 전, 강정 그대로의 모습
ⓒ2006 윤희경

강정을 만들려면 잔손이 여간 가는 게 아닙니다. 강정 만들기가 시작되면 동네 아줌마들의 몸가짐이 사뭇 진지해집니다. 허툰 행동과 말을 함부로 하다보면 강정이 제대로 안된다고 예부터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자세로 찹쌀을 말갛게 씻어 일주일 정도 냉수에 담가, 건지고, 말리고, 체로 쳐, 반죽을 주물러냅니다. 반죽을 펄펄 끓는 물에 뜯어 넣고 찐 다음, 방망이로 조심스레 두들겨 꽈리가 일어날 때까지 쳐댑니다. 꽈리가 잘 부풀게 하려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손끝에 힘을 모으고 호흡조절을 잘해야 한다는데…. 그 정성과 노고를 어찌 다 말로 하랴 싶습니다.

▲ 강정을 만드는 동네 아줌마들
ⓒ2006 윤희경

강정 만드는 구경을 여러 번 했으나 볼 적마다 또 새로운 즐거움이 솟아오르곤 합니다. 오늘은 큰 박씨네 강정 만드는 날입니다. 사실 나 같은 사람이 강정 만드는 자리에 가봐야 걸리적 거릴 뿐 별 도움이 안 되고, 귀찮은 존재이지만 동네 아줌마들이 버무려내는 고향냄새가 좋아 염치불고하고 옆자리에 앉아 냄새도 맡고 사진도 찍어 봅니다.

▲ 조청을 묻혀내는 아름다운 손
ⓒ2006 윤희경

강정에 조청을 발라내는 아낙네들의 손이 오늘따라 유난스레 아름답게 보입니다. 강정 위로 어른거리는 저 손놀림은 여름내 밭뙈기 옆에서 감자를 캐고 배추를 다듬고 풀을 뽑아내느라 꺼칠하게만 보였던 그 손이 아닙니다. 거북등처럼 터졌던 손등과 새카맣게 때가 끼어 볼품사납던 손톱 끝이 이 순간만은 위대하게만 보입니다.

▲ 고소한 깨강정
ⓒ2006 윤희경

조청 발라 고명을 무쳐내는 손바닥엔 세상을 살아가는 따스한 정과 사랑이 물씬 배어납니다. 땀나는 손보다 얄팍한 머리를 잘 굴려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누구에게나 떳떳하게 보일 수 있는 아줌마들의 손이 오늘따라 더욱 커 보입니다.

▲ 담백한 튀밥 강정
ⓒ2006 윤희경

아줌마들의 많은 정성과 손때가 묻어나 속을 비워낸 강정, 속은 비었으되 고소하고, 깊고 은은한 맛이 입안가득 고여 옵니다.

가슴과 울력으로 빚어낸 강정, 씹을 때마다 아삭거리는 소리가 입안을 맴돕니다. 소리가 하도 여리게 입 속을 맴돌다 보니 먹기가 미안할 정도입니다. 강정 하나를 들고 엿가락처럼 가운델 '딱' 잘라봅니다. 텅 빈 속마다 하얀 꽃물이 가득합니다. 요즘 아침마다 대하는 얼음 꽃모습 그대로입니다.

▲ 검정 깨강정
ⓒ2006 윤희경

강정속 얼음 꽃 순수가 이리 반가울 수 없습니다. '텅 빈 속 시린 꽃물', 이제야 동네 아줌마들이 강정을 만드느라 흘려내는 땀방울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갖습니다. 제사상에 올려 한 해의 풍년과 건강을 축원해내자면 강정만큼의 순수는 갖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려 봅니다.

▲ 속빈 강정
ⓒ2006 윤희경

동네 여인들이 만들어낸 속 빈 강정을 보며 다시 한 번 내 옷매무새를 다듬어 봅니다. 참깨 강정으로 겉옷을 갈아입든, 검은 깨강정으로 몸을 치장하든, 강정 속 하얀 순수 앞에 허무맹랑한 '속 빈 강정'은 되지 말자고.

/윤희경 기자

덧붙이는 글다음 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에도 함께 합니다.기자소개 : 윤희경 기자는 북한강 상류에서 솔바우농원을 경영하며 글을 쓰는 농부입니다. 올 4월에 에세이집 '북한강 이야기'를 펴낸 바 있습니다. 카페 주소는 cafe.daum.net/bookhankang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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