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넘치면 꽃이 많이 핀데"

2006. 1. 1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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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현 기자]

▲ 사랑초의 청순한 모습
ⓒ2006 김현

한 겨울에도 고운 아이의 눈망울처럼 예쁘게 피는 꽃이 있다. 꽃만큼이나 이름도 예쁜 '사랑초'다.

지난 11월 중순쯤 아내는 처음 보는 식물을 가져와 화분에 심어 베란다에 놓았다. 무슨 꽃이냐고 물으니 사랑초라 한다. 그때 아내는 화분에 물을 주면서 "이 꽃이 부부 사이에 사랑이 넘치면 꽃이 많이 피고, 사랑이 없으면 안 핀데"하였다. 그땐 이름이 참 예쁘다 생각하면서도 아내의 말을 싱겁게 들었다.

처음 가져올 땐 꽃망울이 달려 있지 않아 꽃을 보지 못했었다. 꽃을 피울 것 같지 않아 무심히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눈을 떠 베란다를 바라보다 난 깜짝 놀랐다. 곱고 작은 아이 눈망울 같은 꽃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얘들아, 저기 베란다 봐봐. 사랑초 꽃이 피었다. 빨리 일어나봐. 당신도 어서 보구."

난 아이들을 깨우고 아내를 부르며 꽃이 피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들은 억지로 눈을 뜨더니 꽃을 보곤 "어, 정말이네" "와! 이쁘게 생겼다" 감탄을 하며 가까이서 본다며 쪼르르 베란다로 달려갔다. 아내는 "이제 봤어?" 하며 어제부터 꽃이 피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피기 시작한 꽃은 해가 바뀌고 나서도 왕성하게 필 줄 몰랐다. 하나의 줄기가 지면 다른 줄기에서 꽃이 피어 놀랐다. 하나의 줄기(꽃자루)엔 6~8개의 꽃잎이 올라와 피는데 한꺼번에 피지 않고 세 개 내지 네 개가 꽃망울을 터트렸다.

▲ 나비가 앉아 있는 것 같은 잎
ⓒ2006 김현

이 사랑초는 우리 사람과 비슷한 습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람이 휴식을 취하는 시간인 밤엔 사랑초의 꽃과 잎도 오므라들었다. 그러나 아침볕을 온 몸에 받아들이면서 꽃도 잎도 활짝 얼굴을 펴고 마음껏 호흡을 하는 것 같았다.

사랑초의 아름다움은 꽃만이 아니다. 작고 앙증맞기까지 한 꽃이 그만의 향취를 드러내고 있다면, 잎은 또 잎대로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오므린 잎의 모습을 보면 한 마리 자줏빛 나비가 올망졸망 모여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다. 반대로 잎을 편 모습은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개짓하는 호랑나비의 모습과 닮았다.

아내는 자주 화초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며 뭐라고 중얼거릴 때가 있다. 말을 걸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유난히 사랑초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아내는 꽃을 사오거나 얻어올 때 꽃이 피지 않은 것은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꽃을 피우는 식물이 예쁘기도 하지만 여자 아니 엄마의 마음을 잘 나타낸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2006 김현

얼마 전 폭설이 내렸을 때도 우리 집 사랑초는 은은한 자태를 뽐내며 세상살이엔 관심이 없다는 듯이 꽃을 피웠다. 그때 아내는 나를 바라보며 "우리 사랑이 넘치나 봐" 하며 소녀처럼 맑게 웃었다.

한 번은 추운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것을 보고 딸아이가 "엄마, 왜 저 꽃은 겨울에도 피워?" 하고 묻자 아내는 "사랑초는 사랑이 넘치면 지지 않고 꽃을 피운데. 엄마 아빠 그리고 우리들이 많이 많이 사랑하니까 저렇게 잎도 무성하고 꽃도 계속 피는 거야"하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아이는 "나도 엄마 사랑해"하며 서로 안고 뒹굴곤 했다.

실제로 저 사랑초란 꽃이 집안에 사랑이 넘치면 무성하게 피고, 사랑이 없으면 피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매일 아침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꽃을 바라보면서 가족 간의 사랑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어쩌다 부부간의 다툼이 있어 냉랭한 기운이 돌 때면 사랑초가 지는 건 아닌지 하고 노파심이 들 때도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사랑초를 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밤낮으로 피었다 지는 저 사랑초가 우리 가족의 사랑을 생각하게 하고 지켜주고 키우는 것은 아닌지 싶다.

/김현 기자

덧붙이는 글사랑초 꽃말이 <당신을 버리지 않음>이랍니다. 집 안에 가져다 놓고 키우면 겨울 내내 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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