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시가 뭐야?"

2006. 1. 1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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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종찬 기자] 말해 줘,

거기 있는 당신들,도대체 시가 뭐야?시를 조금도 품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혹시 있어?-5쪽, 마크 스트랜드 '위대한 시인 돌아오다' 몇 토막

시란 놈은 파고 들면 파고 들수록 물음표뿐이다

▲ 재미시인 임혜신의 <오늘의 미국 현대시>
ⓒ2006 바보새

도대체 시란 무엇일까? <녹색평론> 발행인이자 문학평론가 김종철(59)은 "시인은 도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시는 곧 도(道)가 아니겠는가. 도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국어사전을 펴면 도는 '1.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2. 종교상으로 근본이 되는 뜻 또는 깊이 깨달은 경지'라고 나와 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란 과연 무엇일까? 종교의 뿌리가 되는 깊은 뜻은 어떤 것일까? 깊이 깨달은 경지는 또 무엇을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사실, 도리나 종교의 뿌리가 되는 깊은 뜻이나 깊이 깨달은 경지나 이 모두 삶의 보석처럼 빛나는 진리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진리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사람살이 속에만 그 진리란 게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주 삼라만상 모든 것에 진리란 게 숨어 있는 것일까. 내가 여행길에서 우연찮게 만난 어느 노스님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도이자 진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묘한 웃음을 바람처럼 남긴 채 어둑한 산길로 허위적 허위적 올라갔다.

참으로 어렵다. 도이자 진리인 시란 놈은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물음표뿐이다. 그래서일까? 미국의 초현실주의 시인 마크 스트랜드는 "도대체 시가 뭐야?"라며 스스로 묻는다. 그리고 "시를 품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 혹시 있어?"라며 선승처럼 다시 되묻는다. 그래. 그야말로 분명 시가 무엇인지 도가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아는 시인이자 도인임에 틀림없다.

"나의 미국 시 읽기는 생의 노랫소리를 듣는 일"

"이 책에 실린 스물다섯 명의 미국 시인들도 모두 향기와 빛이 다른 마술사들입니다... 이들 시인들을 통 털어 미국 시인이라 부르지만 각각 팔레스타인계, 독일계, 유태인, 캐나다인, 흑인, 백인, 여성 시인, 젊은 시인, 원로 시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책머리에' 몇 토막

20여 년 동안 미국 플로리다에서 살고 있는 재미 시인 임혜신씨가 미국 현대시인 25명의 시와 시세계를 꼼꼼하게 풀어낸 시평집 <임혜신이 읽어주는 오늘의 미국 현대시>(바보새)를 펴냈다. 이 책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 알렌 긴즈버그를 비롯해 베스트셀러 시인 빌리 콜린즈, 동양정신을 시로 드러낸 로버트 하스 등 수많은 시인들의 시세계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다.

빌리 콜린즈, 제임스 메릴, 로버트 블라이, 마크 스트랜드, 샤론 올즈, 제임스 테잇, 차일스 브꼬브스키, 토리 덴트, 토이 데리코테, 알렌 긴즈버그, 마아가렛 앳우드, 로버트 해스, 갤웨이 킨넬, 스탠리 쿠니쯔, 데이비드 레만, 필립 르바인, 나오미 녜, 로버트 핀스키, 실비아 플라스, 밥 홀만, 차알스 시믹, 토니 토스트, 카렌 포크만, 폴 짐머, 메리 올리버가 그 시인들.

시인 임혜신은 책머리에서 "이 책에 실린 스물네 편의 글은 한국의 월간 <현대시>에 실었던 글이며, 다른 한 편은 미국에서 나오는 한민족문학지 <해외문학>에 실었던 글"이라고 말한다. 이어 "내가 읽어내고자 했던 것은 서로 다른 역사와 생활환경에서 오는 경향적 다름이라든지 이국정취라든지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라고 되뇐다.

임혜신은 "나의 미국 시 읽기는 생의 노랫소리를 듣는 일"이었다고 귀띔한다. 즉, 그의 미국 시 읽기는 "척박하고도 풍요하며 답답한 듯 광활한 이 세상을 나와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는 내 이웃들의 삶의 맛을 읽어내는 일"이었으며, "소박한 마음으로 그들의 노래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노래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생명의 생생한 리듬들이 만져지곤 했다"는 것.

소유 대가 지불의 끝없는 악순환 속에 살아가는 미국 사람들

나무들로 둘러싸인 축사 안에검게 빛나는 발굽을 가까이 맞대고 서 있는 햄프셔 암양들은갚아야 했다. 양털로, 자궁으로,먹음으로써, 그리고 양치기 개에 대한 두려움으로.동물들은 모두 갚아야 했다. 말은 하루 종일 갚았다,돌처럼 무거운 배들을 끌었고 땅은 그들이 끌어올린 것을 다시 끌어내렸다.돼지들? 그들은 칼이 목으로 들어올 때 꽥꽥 소리치는 것과이어서 흘러내리는 피로갚았다. 피, 그 뜨겁고 개인적인 것으로, 그리고도 남은 부채는 내장들이 갚았다."이렇게 사는 게 나야."라고 돼지들은 말 할 줄 모른다.여자들은 머리를 숙여서 갚았고, 그리고남자들은내 아버지처럼 술을 마셔서 갚았다.악마는 소리쳤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갚아라!" 나는나의 빚을 다른 식으로 갚았다. 이들처럼농장의 방식으로 갚을 수 없었으므로, 오늘 이 시를 쓴다.-48~9쪽, '동물들이 치룬 댓가' 모두

이 시는 시인이자 번역가인 로버트 블라이가 칠순의 나이에 펴낸 명상시집 <아침의 시>에 실려 있는 시다. 언뜻 읽으면 참으로 재미있는 시다. 하지만 속내를 꼼꼼히 되짚어보면 섬뜩할 정도로 가슴 쓰린 시다. 아니, 이 시는 무언가 얻으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나라, 자본주의의 황제국인 미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픈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시는 아주 고급의 연금술입니다"

재미 시인 임혜신은 누구인가?

▲시인 임혜신
바보새
"혹자는 말하더군요. '시는 병이며 시인은 패자다'라고. 그러나 혹시 병적이거나 패배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가 아니고 인생인 것이겠지요. 시는 인생의 병과 패배 속에서 자생적으로 태어난 마술이며 사랑이며 자비이며 그래서 또한 유희인 것이구요." -'책머리에' 몇 토막

시인 임혜신은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1995년 <워싱톤 문학>, 1997년〈미주 한국일보>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환각의 숲>(2001)이 있으며, 지금〈미주문인협회〉회원과 Global Network of Poets〈빈터〉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해외문학>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지금 미국 플로리다에서 살고 있는 시인은 "시는 아주 고급의 연금술"이며, "납에서 금을, 개천에서 용을, 늪에서 연꽃을 키워낼 뿐 아니라, 금을 납이 되게 하여 그 깊이와 무게를 배우게 하고 개천으로 하여 거대한 용을 품는 법을 알게 하고 한 송이 연꽃으로 하여 검게 썩은 연못의 평화를 깨치게 하는 쌍방통행의 자유자재한 마술"이라고 믿고 있다. / 이종찬 기자

시인 임혜신은 이 시 읽기에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 모든 것에는 지당한 대가가 지불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어 소유와 욕망의 불균형 속에 살아가는 미국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융자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되뇐다. 또한 "그것을 갚는데 15년에서 20년이 걸린다"라며, 미국 사람들은 소유와 대가 지불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고 못 박는다.

글쓴이는 '만일 삶이 이 시인의 말대로 부채상환의 작업"이라면 "이 시야말로 이 모든 부채로부터의 자유로워지는 단 하나의 길을 알려주고 있다"라고 곱씹는다. 즉, "이 시인이 동양 정신에 몰입한 것을 감안하며 해석한다면 그것은 전생일 수도 있겠고 그 어떤 업보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장의 편에 서서 심장의 삶을 노래하는 시인

나는 원해, 나는 원해,나는 원해, 나는 원해라고 대부분의심장들은 말하지만 나의 심장은 좀 불온해,한때 의심했던 쌍둥이 심장 같은 것도 아니고내 심장은 나는 원해, 나는 원하지 않아, 나는원해, 그러다가 잠시 멈추기도 하지.그리고는 내게 귀 기울이라 해,-176쪽, '불온한 심장을 지니고는 살 수 없는 여자' 몇 토막

이 시를 쓴 마아가렛 앳우드는 캐나다에서 태어나 미국과 영국, 이태리, 프랑스, 독일 등에서 2~3년씩 산 것을 빼고 나면 캐나다에서만 살아온 캐나다의 시인이자 소설가다. 하지만 마아가렛 앳우드는 미국의 로스엔젤레스 타임상과 캐나다의 트릴리움상, 영국의 부커상을 받을 만큼 아메리카 대륙이 낸 국제적인 시인이며 작가이다.

위 시는 마아가렛 앳우드가 1976년부터 1986년까지 10년 동안 낸 시집에서 가려 뽑은 시들을 묶은 두 번째 시선집에 실려 있는 시다. 이 시는 심장의 이중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즉, "심장은 신선한 피를 공급한다는 물질적이며 기계적인 일차적 기능 면에서, 또 감정을 탄생시키고 받아들이고 씻어내는 재생의 장소"라는 것이다.

시인 임혜신은 마아가렛 앳우드의 시편들에는 "심장을 통해 심정을 토로하는 시"가 참 많지만 스스로 "심장이 되어 심장의 편에서 심장의 삶을 노래한 시는 쉽게 만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어 "이 시는 심장을 하나의 독자적인 존재로 형상화"하여, 심장이 그저 "오장육부 중 하나가 아니라 한 생명의 무게를 온전히, 절실하게 떠맡고 있는 독립된 존재"라고 곱씹는다.

글쓴이는 "'원해, 원하지 않아'를 반복하는 심장의 이원구조는 생태적으로 건강한 일종의 균형 견제 제도 일 뿐"이라고 간추린다. 그리고 "'원해, 원하지 않아'를 반복하는 이 심장의 작업은 결국 합을 위한 정이며 반인 것"이라고 못 박는다. 왜냐하면 마아가렛 앳우드는 그 누구보다도 정반합의 뜻을 잘 아는 시인이므로.

서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실비아 플라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고요한 시간나는 산파의 추출기를 돌리고 있었다,내게도 꿀은 있다자그마치 여섯 병이나 있다.여섯이나 되는 고양이의 눈이 포도주를 넣어두는 지하실에 있다.창문도 하나 없는 집이 깊은 어둠 속에서 우리는 겨울을 난다.전에 살던 사람들이 남기고 간 썩은 잼들공허한 광채를 담은 병들......그 누구의 것이라도 좋을 술병들과 함께이런 방은 처음이다.차마 숨쉴 수조차 없는 방그 안에 박쥐처럼 웅크린 한 덩이 어둠,빛은 없고호롱불과 그 불빛 아래-292~3쪽, '겨울나기' 몇 토막

20세기 미국의 대표적 여성 시인이었던 실비아 플라스는 서른이라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동요적인 리듬에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시 '아빠'로 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 시인은 왜 꽃다운 나이에 이 세상을 헌신짝 내던지듯이 버리고 말았을까. 죽기에 앞서 문단에 회오리바람을 불러일으킨 시집 <아리엘>이란 제목과 시를 쓴 날짜, 41개의 차례까지 정리해놓고 한 점 먼지로 사라져버린 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여덟 살 때 미국의 유명 문학지 <보스톤 트래블러>에 시가 실릴 정도로 타고난 시인이었다. 스미스 대학을 장학생으로 다니던 실비아 플라스는 여러 잡지에 글을 실었고, 수많은 상까지 휩쓸었으나 그 무렵에 첫 자살을 시도한다. 그 뒤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영국의 풀브라이트로 유학을 떠난다.

실비아 플라스는 그곳에서 뒤에 영국의 계관시인이 되는 테드 휴스와 결혼한다. 그때 실비아 플라스는 남편과의 만남을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를 만났어. 그의 목소리는 천둥과 같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혼생활 동안 남편은 그의 보조를 받으며 뛰어난 시인이 되어가지만 그는 가정을 돌보는 일에만 매달린다.

물론 틈틈이 시를 써서 신문과 방송 잡지에 발표했고, 첫 시집도 묶어냈다. 하지만 행복했던 결혼생활은 6년 만에 끝이 난다.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던 것이다. 그로부터 6개월 뒤 실비이 플라스는 가스 밸브를 열어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죽기 앞까지 그는 세 살 난 딸과 갓난 아들을 키우면서 주로 새벽 시간에 글을 썼다고 한다.

<오늘의 미국 현대시>는 20여 년 동안 미국에서 살고 있는 재미 시인 임혜신이 20세기와 21세기에 걸친 미국 현대시의 속내를 차분하게 더듬은 미국 현대시 해설집이다. 글쓴이는 이 책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25명의 시인을 가려 뽑은 뒤 영문시 한 편과 그 시를 우리말로 옮긴 시를 싣고, 그 시에 대한 꼼꼼한 해설과 시인의 삶을 하나 둘 파헤친다.

이 책의 특징은 이미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시인들도 더러 있으나 대부분의 시인들이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들이라는 점이다. 또한 한 편의 대표 시와 그 시인의 삶을 통해 인종문제와 반전, 현대문명 속에 날로 상실되어가는 인간성 회복은 물론 시인 개개인의 사랑과 욕망, 행복의 척도까지 가늠하고 있다.

/이종찬 기자

덧붙이는 글※이 기사는 <시민의 신문>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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