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길] 한서 남궁억 선생의 홍천 모곡리를 찾아서

불볕 더위와 맞서 여름에서 가을까지 꽃을 피워내고 밑둥을 잘라내도 다시 태어나는 생명력은 강인하고 아름답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시커멓게 달려드는 진딧물을 이겨내고 한 그루에 수천 송이의 꽃을 피워내는 힘은 새 날이 곧 온다는 것을 예고하는 '무궁화의 혁명'이다.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2리에 있는 한서(瀚西) 남궁억 선생의 '무궁화 동산'과 '한서교회'(옛 모곡교회)를 찾아가는 길은 이곳에서 22년 동안 '믿음의 행전'을 펼쳐온 한 신앙인을 만나는 여정이었다. 경춘국도를 따라 청평에 이르러서 신청평대교를 건넜다. 다시 설악면을 통해 홍천 방면으로 가다 널리재를 넘으면 왼편으로 무궁화 동산과 한서교회가 나타난다.
굽이굽이 펼쳐진 널리재를 넘으며 한서 선생이 지은 찬송가 371장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을 떠올렸다.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 찬송이다. 그러나 당시는 일제 강점기로 이 땅은 피폐해질 때로 피폐해져 있었다. 이때 그는 한시라도 빨리 나라를 되찾아 우리의 아이들이 맑고 밝은 모습으로 '삼천리 금수강산 광복의 나라'에서 살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에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 9:37∼38)는 말씀에 따라 하나님이 이땅에 주신 희망을 노래한 것이다.
한서교회 진입로에 들어서자 오른편엔 한서교회,왼편엔 한서 남궁억 기념관,중앙엔 복원 예배당이 세워져 있었다. 교회 앞엔 80여 종의 무궁화가 2000그루 가량 심어진 '무궁화 동산'이 조성돼 있다. 한서 선생이 일제에 맞서 무궁화 묘목 30만그루를 심어 전국에 퍼뜨리기 위해 만든 무궁화 묘목장이다.
한서 남궁억 기념관에는 무궁화 십자가당 사건 취조 장면 재현,보리울 모곡학교 모형,남궁억 선생의 붓글씨와 저서,독립신문 영인본,황성신문 영인본 등이 전시돼 있으며 그가 작사한 노래 중 10여곡을 청취할 수 있는 코너가 마련돼 있다.
한서 선생은 고종의 어전 통역관이었으며 궁내부 토목국장,독립협회 수석총무,황성신문사 초대사장 등을 지낸 지도자였다. 그는 1910년 종교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5년 후 평신도로서 목회자를 대신해 설교할 수 있는 '본처 전도사'의 직분을 받았다. 이후 국운이 기울자 민중이 독립 사상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1918년 고향인 홍천군 서면 모곡리 일명 '보리울'로 낙향해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을 펼쳤다. 가장 먼저 5200평의 터를 마련해 모곡교회와 모곡학교를 세워 신앙교육을 했고 무궁화 묘포장을 만들어 전국으로 묘목을 보급했다.
한서교회 뒤쪽에 있는 한서초교의 정문을 끼고 왼편으로 돌면 한서 선생의 무덤이 있고 그 뒤로 300여개의 나무 돌계단을 올라가면 그가 매일 새벽기도를 드렸던 유리봉 정상이다. 기도하는 한서 선생의 기념동상이 세워진 그곳에 서니 "나는 독립을 보지 못하나 너희는 반드시 볼 것이니 이것이 하나님의 계시다" "나는 독립을 위하여 일했지만 너희는 독립 후의 일을 준비하라"는 그의 육성이 들리는 듯했다.
또 1931년 연희전문대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홍천에서 300리 길을 걸어서 졸업식장에 도착해 그가 남긴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내가 널리재를 넘어 학교까지 눈길을 오는 동안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왔고 없을 때는 내 스스로 길을 뚫어 여기까지 왔듯이 여러분처럼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교육을 받지 못한 농촌의 농민들에게 달려가 그들의 길이 되어야 합니다."
그는 1933년 11월 십자가당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다 1935년 병보석으로 석방돼 모곡리에서 1939년 4월5일 77세 때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한편 사방이 산과 강으로 에워 싸인 모곡리. 이곳은 황무한 땅에서 민족을 위한 희망의 노래를 부른 한 민족지도자의 신앙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지금은 보이는 것이 없어 답답할지라도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을 바라볼 수 있는 긍정의 힘이 생기는 곳이기도 하다.
홍천=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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