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 패스'와 '크로스'의 잔치에 매료되다

2005. 11. 1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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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심재철 기자]

▲ 12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스웨덴의 친선경기에서 박지성 선수가 상대 골대앞으로 골을 몰아가자 수비수들이 거칠게 막아서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우리 축구대표팀이 개인기에 의존한 공격 축구보다는 조직력을 극대화시키며 신명나는 공격 축구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다듬고 있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비록 12일 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스웨덴 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2:2로 비기는데 그쳤지만 미드필더와 공격수의 유기적 움직임을 이끌어내며 줄곧 경기를 주도하여 보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전반전 전진패스 18개, 후반전 크로스 13개

흔히 축구를 '기록'과는 거리가 먼 스포츠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전진 패스 18, 크로스 13'의 수치만 놓고 봐도 스웨덴 수비수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태극 전사들의 공격력이 좋아졌다는 증거다. 옆줄이나 끝줄 밖으로 어이 없게 나가버린 것들을 빼고도 저 정도 결과가 나왔다면 분명 한국 축구대표팀의 실력은 진보하고 있는 것이다.

전반전 '전진 패스의 잔치'를 이끈 주인공은 역시 박지성이었다.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라는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그였기에 이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겠지만 날개공격수가 아닌 미드필더로 70분을 뛴 박지성의 그 능력은 따라올 선수가 없어 보였다.

더구나 그를 상대한 스웨덴 미드필더의 면면을 보면 무릎을 치치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스웨덴의 떠오르는 별 히센이 왼쪽을 주로 맡았고, 노련한 스벤손-린데로트-알렉산드르손이 나란히 맞섰다. 물론, K-리그가 빚어낸 토종 미드필더 이호가 박지성을 크게 도와주었지만 그들이 상대한 스벤손이나 린데로트는 아무리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선수들이라 해도 함부로 상대했다가는 큰 코 다치는 상대임에는 틀림 없다.

박지성은 경기가 시작되고 30분이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절묘하게도 자신의 등번호와 똑같은 일곱 개의 '공격적 전진 패스'를 전반전 끝무렵 15분 사이에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 결과, 우리는 공격의 속도를 박진감 넘치게 끌어올렸고, 스웨덴 미드필더들은 움츠러드는 바람에 우리 미드필더들에게 중원을 빼앗기고 말았다. 스코어와는 상관 없이 '평가전' 자체의 승부처는 여기였다. 스웨덴의 라거벡 감독은 이곳이 아무리 먼 나라였고 프레드릭 융베리(아스널 FC)와 크리스티안 빌헬름손(RSC 안더레흐트),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유벤투스 FC), 헨릭 라르손(FC 바르셀로나) 등 핵심 멤버들이 빠진 상태였지만 전체적으로 밀린 경기를 펼친 것에 대해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 이영표 선수가 특유의 발놀림으로 상대 수비수를 제치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물오른 태극전사들은 후반전에 날카로운 크로스를 앞세워 질적으로 다른 공격 축구를 선보였다. 그 중심에 울버햄튼(잉글랜드 챔피언십리그)의 오른쪽 날개공격수로 가치를 높여가고 있는 설기현이 있었다. 벨기에 주필러리그 RSC 안더레흐트를 거쳐 축구 종가로 들어가 훌륭한 경험을 쌓고 있는 설기현은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비록 스웨덴과의 경기가 끝나고 다시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신세지만 유연한 볼 키핑력이나 2:1 패스를 기본으로 삼은 부분 전술, 그리고 낮고 빠르게 휘어가는 크로스까지 두 아이(인웅이, 여진이) 아빠가 되어 한층 성숙해진 모습 그대로를 모두 보여주었다. 70분, 박주영 대신 김두현이 들어오면서 박지성에게 오른쪽을 내주고 반대편으로 건너온 설기현은 후반전에만 여섯 개의 수준 높은 크로스 실력을 뽐냈다.

그런데 여기서 아드보카트의 작지만 행복한(?) 고민이 생겼다. 다름 아닌 세계적인 왼쪽 수비수 이영표의 활용 가치와 겹치는 부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설기현이 날카로운 크로스를 뽐내며 왼쪽을 헤집고 다니면서 그 뒤를 받치는 이영표에게 여유가 생겨, 가운데 쪽 움직임을 통해 짜릿한 슈팅까지 터뜨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영표의 실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향성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토트넘 홋스퍼 FC의 마틴 욜 감독처럼 부지런한 다비즈를 파트너로 붙여주는 것이 좋은지(포백 시스템의 경우), 이 경기 전반전처럼 박주영과 짝을 맺어주는 것이 좋은지(쓰리백 시스템의 앞에서 왼쪽 미드필더로 뛸 경우), 아니면 설기현과 짝을 이뤄 측면 연결의 템포 조절 역할을 맡기는 것이 좋은지 이제부터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은 이영표 혼자에게만 시선을 두면 오히려 스스로 궁지에 몰릴 우려가 있기 때문에 경기 내내 넓은 시야를 자랑하며 공격 방향을 시원스럽게 바꿔준 설기현처럼 폭넓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동작 하나하나에 박수를 쳐 주고 싶을 정도로 훌륭하지만 이영표도 결국 11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전반전 박주영은 이영표 덕분에 측면 움직임의 부담을 덜고 맘껏 휘젓고 다녔다. 적잖은 부담이 있었겠지만 덩치 큰 스웨덴 수비수들과 높은 공 다툼을 힘차게 벌이기도 했다. 또, 박주영이 측면이고 가운데고 할 것 없이 수비수 하나 이상을 끌고 움직였기에 이영표에게도 공간이 많이 생겼던 점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오지 않을까? 16일 열리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와의 평가전에서 어떤 수를 들고 나올지 더욱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2실점, 아쉬움 뒤에 남는 것은

▲ 박주영 선수가 상대 수비수와 공중볼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김동진-김영철-최진철'이 버틴 쓰리백은 스웨덴의 공격수들에게 두 골을 내줬다. 세계적인 팀에게 내준 것이기 때문에 아까울 것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소중하게 넣은, 앞서가는 골 이후 '1분', '7분'만에 각각 동점을 이룬 것은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할 장면이다.

엘만데르에게 내준 첫 번째 실점은 가운데 수비수 김영철이 상대 골잡이들의 2:1 패스 줄기를 알아차리지 못한 점도 아쉬웠지만 오른쪽 옆줄 가까이에서 우리 미드필더들끼리 엉켜 넘어진 장면이 역습을 내준 화근이었다.

두 번째 실점도 역습 상황에서 내준 뼈아픈 것이었다. 미드필더 이호가 안정환에게 전진 패스를 넣어 주었는데 그 공이 다시 뒤로 나오는 과정에서 미스 패스를 저질러 곧바로 스웨덴의 왼쪽 공격으로 이어진 것. 문지기 이운재와 수비수 사이로 빠르게 통과한 공을 스웨덴 교체 멤버 로센베리가 반대편에서 달려들며 오른발로 차 넣었다. 이 역시 크로스된 공에 시선을 두기보다는 수비수가 자신의 뒤로 돌아들어오는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에 주목했어야 옳다.

수비수들에게 90분 내내 집중력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 모범적인 모델이 55분에 드러났다. 로센베리에서 알렉산드르손으로 이어지는 이 역습 상황 역시 우리 수비수들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모자랐지만 측면으로 공이 움직일 때 따라 붙었던 우리 수비가 시간을 최대한 지연하면서 나머지 선수들에게 커버 플레이를 이끌어냈다. 이에 스웨덴 선수들은 공을 돌리기만 하다가 성공 확률 낮은 느린 크로스를 문지기 이운재에게 차 주고 돌아서야 했다. 그만큼 문제는 결정적 장면에서 지능적인 수비를 펼칠 수 있으냐 하는 점과 조금 늦더라도 최선을 다해 커버플레이에 가담하는 자세다.

전반전에 실점을 포함하여 상대 공격수들에게 유효 슈팅을 두 개 내줬고, 후반전에는 실점을 포함하여 유효 슈팅을 세 개 내줬다.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역습 상황에서 득점 성공률이 높은 유럽팀을 상대로 할 경우에는 수비 시스템 자체에 대한 고민도 앞서야 할 것이다.

한층 자신감 넘치는 움직임을 보이며 공-수 양면에 활력소가 되고 있는 조원희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과연 조원희의 역량을 가장 효율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시스템은 포백(오른쪽 수비수)인지, 아니면 쓰리백(앞쪽에서 뛰는 오른쪽 미드필더)인지도 반대편 이영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따져봐야 한다.

이제 나흘 뒤 골잡이 마테야 케즈만을 앞세운 세르비아-몬테네그로와 만나게 될 우리 대표팀은 또 한 번 흥미로운 시험대에 서게 된다. 세르비아-몬테네그로는 월드컵 유럽 예선 7그룹에서 거함 스페인을 플레이오프로 떨어뜨리며 6승 4무(16득점 1실점)의 놀라운 성적을 기록한 본선 진출국이다. 특히, 지난 9월 스페인과의 원정 경기에서 1:1로 비길 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지닌 팀이다.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을용과 이동국, 이천수 등을 어떻게 활용할지 더욱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심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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