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랍초 명맥잇는 '벽안의 한국인'..독일서 귀화한 빈도림씨 부부

2005. 11. 7. 18:4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밀랍초를 만드는 푸른 눈의 이방인. 50대 독일인이 한국이 좋아 한국인이 된 후 전남 담양의 산골에 정착해 더도 덜도 없이 '딱 전라도사람'으로 살고 있다.

지난 1월 귀화한 빈도림(52·독일명 디르크 휜들링)씨와 한국인 부인 이영희(47)씨가 주인공. 빈씨 부부는 담양∼곡성간 지방도 60호선에서 산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는 외딴 골짜기에 아담한 2층 양옥집을 지어 사람들이 썰물처럼 도시로 빠져나간 산골을 지키고 있다.

부부는 요즘 오색 단풍과 감이 주렁주렁 달린 한국 산속의 가을을 만끽하고 있다. 아침·저녁 다른 산책길에서 날마다 자태를 달리하며 아름다움을 뽐내는 잡초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야생동물을 바라보며 살아있는 생태를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빈씨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30여년 전. 1974년 서울대 유학 후 독일에서 한국학을 연구,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84년 다시 한국으로 건너와 대구의 한 대학에서 독문학을 가르치고 주한 독일대사관에서 통역관으로 일했다. 대사관 직원 시절 부인 이씨를 만나 결혼했다.

 부부는 서울에 살면서 담양의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자연 경관에 반해 이 곳에 살기로 결심했다. 1995년 매입한 400평의 땅에 집을 지어 처음에는 주말별장처럼 활용하다 2002년 아예 이사했다. "주변이 산으로만 둘러싸인 오지이지만 광주에서 40여분 거리에 불과합니다. 소음도 전혀 없어 산속 생활이 너무 좋습니다."

부부는 여유있는 주변 환경과 달리 하루 하루를 바쁘게 산다. 하루 2차례 산책을 거르지 않고 있으며 번역 일과 밀랍초 제작 때문이다. 빈씨는 한봉을 기르는 주민들이 꿀을 짜낸 뒤 벌집을 그냥 버리는 것을 보고 밀랍초를 떠올렸다. 벌집을 가열한 뒤 죽은 벌이나 애벌레 등 불순물을 제거하고 갖가지 모양의 틀에 담아 노란 초를 만드는 것을 봤던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를 구했지만 부족해 독일로 건너가 기술을 배워 돌아왔다. 한국에는 신라시대부터 전해내려오던 밀랍초 명맥이 파라핀으로 만든 양초가 들어오면서 끊겼으며 제작 과정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

현재 빈씨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밀랍초를 만들고 있다. 요즘의 초는 어둠을 밝히는 기능 보다 예식 때나 집안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장식용으로 쓰이기 때문에 주로 고급스럽게 제작한다. 따라서 천연재료만 사용할뿐 인공 색상을 전혀 첨가하지 않는다. 인터넷 등을 통해 주문 제작하고 있다.

대나무로 유명한 담양군은 이 밀랍초가 또하나의 지역 명물이 될것으로 보고 홈페이지에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황금색,은은한 꿀향이 매력적'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부부는 요즘 집 뒷편에 70여평 남짓한 밀람초 공방을 짓고 있다.

담양=이상일기자 silee062@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