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어화 꽃 지는 소리 담았어요"..'신기생뎐' 낸 소설가 이현수씨

"2년에 걸쳐 소설을 계간 문예지에 연재하는 동안,주변에서 혹시 기생의 딸이 아니냐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어요. 천부당만부당 한 말이었지만 오히려 그걸 칭찬으로 받아들였어요."
기생을 두고 '말을 알아듣는 꽃(解語花)'이라 했던가. 사라져가는 기방 문화와 해어화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연작 장편 '신기생뎐'(문학동네)를 낸 소설가 이현수(46)씨는 많이 수척해 보였다. 올 2월,모친상을 당했지만 연재 소설을 펑크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상중(喪中) 집필을 감행하다 혼절까지 했으니 작가에게는 더욱 잊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딸에게 어머니는 세상사의 온갖 풍상을 고주알 미주알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데 '턱'하니 숨을 놓으시는 순간,세상 사람들이 다 밉더군요. 그래서 이 소설에 더 매달렸던 것 같아요."
전북 군산의 기방 '부용각'을 무대로 한 7편의 연작은 소멸의 길로 접어든 일패 기생(노래와 춤에 능하고,귀족을 접대하던 일류 기생)의 풍류와 전통,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꾸려간다. 연작마다 주인공이 있지만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중심 인물은 '부엌어멈'인 고령의 타박네와 소리 기생인 환갑 즈음의 오마담이다. "빨랑 젖싸개 벗어라,이. 젖통 큰 기 무신 자랑이라고 가슴을 내미나,내밀길. 한복을 입으마 수굿하게 등을 구부려야 맵시가 난다고 그만큼 일렀거늘." 기방의 법도를 가르치는 부용각의 제일 어른 타박네는 못 생긴 얼굴 때문에 평생을 부엌데기로 살아왔지만 음식 솜씨는 누구도 견줄 수 없는 경지다. 부용각의 으뜸 기생인 오마담은 정이 많아 이 남자 저 남자에게 휘둘리지만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는 박기사에게만은 더럽혀진 자신의 몸을 허락하는 않는 기방의 높은 격조를 보여주는 인물로 그려진다.
"감나무 가로수에 붉은 홍시가 열리는 가을이면 제 고향 충북 영동에서는 고구려의 왕산악,신라의 우륵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악성인 난계 박연을 기리는 난계국악축제가 열리죠. 10여년 전,그 축제에서 울려퍼지는 창(唱)과 대금소리를 들으면서 언젠가 기생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을 했어요."
옛 기방의 정서와 현대적 입담을 교직한 그의 구어체 문장을 따라읽다보면 저절로 신명이 나고 어깨가 들썩거린다. 때로는 육자배기인 듯,때로는 자진모리인 듯,일찌기 소설 춘향전에도 없는 대사들이 무진 무진하다. 마지막 연작 '부용각'의 한 대목. "'파' 음으로 떨어지는 꽃은 높은 가지에 핀 꽃이고 '레' 음으로 떨어지는 꽃은 낮은 가지에 핀 꽃이다. 봄꽃이나 가을꽃보다 여름꽃 지는 소리가 잘 들리고 아침이나 낮보다 해질녘에 잘 들린다. 바람이 눅고 습도가 높은 날 운이 좋으면 뒤란에서 계면조 음계로 떨어지는 꽃들을 만나기도 한다. 능소화처럼 크고 무게가 있는데다가 일시에 떨어지는 꽃이라야 '라도레미솔' 슬픈 계면조의 소리가 난다. 가지에서 금방 떨어진 꽃,바람을 타고 날아와 비단 운혜의 코에 걸렸다가 미끄러진다."
소설을 쓰는 내내,꿈속에 기생들이 출몰했을 정도로 이씨는 지난 한 철을 맨발 벗은 기생들과 함께 지냈다. 그래서 책을 펼치면 여름날 땡볕을 받으며 더욱 붉게 물드는 능소화의 꽃물이 스며나온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생 담론에는 오류가 많아요. 기생은 미인일 거라는 통념이 그것인데,조선조에서 진짜 미인은 구중궁궐에 살았고 저잣거리에는 미인이 될똥말똥한 여인들이 살았죠. 기생이 될 수 있는 천민은 유전학적으로나 신분상으로 미인일 가능성이 아주 적어요. 하지만 옛 기생들은 지엄한 조선의 유교 전통속에서도 충분히 자유로웠지요. 그런 의미에서 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사랑에 포획되지 않으려는 근대의 신여성이나 현대여성은 기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죠. 기방 문화에 깃든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펼쳐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에 묘사된 기생의 정의는? 오마담의 소리 선생이었던 팔순의 교방 선생이 무심코 내뱉은 말에 그 답이 있다. "찹쌀전 위에 꽃잎을 한 장씩 꾹꾹 찍듯 기생들은 자기 가슴을 펜촉같이 날카로운 것으로 꾹꾹 찍어야 할 때가 많아. 그래서 기생들의 가슴에서는 피가 흐르지 않아. 동글동글 맺혀 있을 뿐이지. 제 스스로 낸 제 가슴의 핏물을 내려다보고 사는 게 기생이야." 문득 부용각에 스미듯 월담하여 어디 꽃 지는 소리,한번 듣고 싶다.
정철훈 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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