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총은 장수왕이 아니라 광개토대왕 무덤"..새로운 학설 제기돼
[쿠키 문화] ○…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에 있는 장군총. 지금까지 장수왕의 무덤으로 알려져온 이 무덤이 광개토대왕의 무덤이라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기존에는 인근의 태왕릉이 광개토왕릉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백승옥 함안박물관 학예사는 "태왕릉은 광개토왕의 아버지인 고국양왕의 무덤이며,장군총이 광개토왕의 무덤"이라는 새로운 주장을 내놓는다. 지금까지 장군총은 광개토왕의 아들인 장수왕의 무덤으로 알려져왔다.
백 학예사의 주장은 4·5일 충남 계룡산 동학산장에서 열리는 한국고대사학회 주최의 '지안지역 고구려 왕릉의 제문제'란 세미나에서 '고구려왕릉의 피장자문제-문헌자료'라는 글을 통해 정식 발표된다.
그에 따르면 광개토왕릉비는 고구려인들이 414년 세운 신도비(神道碑),즉 왕과 고관의 무덤 앞이나 그 길목에 세워 고인의 업적을 추모하는 비석이다. 그 근거는 중국 고래의 신도비 건립에 대한 엄한 규범을 총집대성한 명나라 때의 '문장변체서설''문체명변서설' 등 옛 사료들이다. 이 사료들에 따르면 신도비는 신도(神道,능의 입구에서 능에 이르는 길)를 따라 묘의 동남쪽에 세우는데 광개토왕릉비가 장군총의 신도를 기준으로 정확히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군총이 광개토왕릉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면 당시 고구려인들이 신도비를 세우는 규범을 충분히 알고 있었는가. 백 학예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인 372년에 태학이 설립돼 본격적인 한학교육이 이뤄졌고,여기에 한학의 기초인 '예기' 등의 오경이 포함됐으므로 고구려인들의 신도비에 대한 상식은 이미 충분했다"는 것이다. 그는 "장군총의 동남쪽으로 약 2㎞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광개토왕릉비는 한학을 바탕으로 철저한 계획에 의해 세워졌으며,따라서 광개토왕이 묻힌 곳은 장군총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그는 '청동방울과 비석에 기록된 '호태왕(好太王)'이라는 문구를 근거로 태왕릉이 광개토왕릉'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반박하고 있다. 그 이유로 △호태왕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고구려왕들에게 일반적으로 붙이는 명칭이라는 점 △청동방울이 만들어진 서기 391년은 고국양왕이 죽고 광개토왕이 즉위한 시기로 왕위에 오른 해에 무덤에 넣을 방울을 만들 수는 없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호태왕'이라고 적힌 유물이 출토됐다고 태왕릉을 광개토왕의 능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고,외려 신도비의 위치로 보건대 장군총이 다름아닌 광개토왕릉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건수기자 kswoo333@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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