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고우영 화백 별세
[일간스포츠 장상용 기자]고우영 화백의 작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신문 연재를 통해 <수호지> <삼국지> <서유기> 등과 같은 중국 고전 시리즈를 연재했고, <대야망>처럼 소년 잡지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고 단행본으로 엮었다. <80일간의 세계 일주>처럼 아예 단행본으로 낸 작품도 있다. /장상용 기자<enisei@ilgan.co.kr>1972년 연재 "임꺽정"등만화위상높여2002년 대장암 발병 힘겨운 투병 끝에 타계한국 만화계의 큰 별이 졌다.
"국민 만화가" 고우영 화백이 25일 낮 12시 34분 경기도 고양시 일산병원에서 향년 67세로 타계했다.
2002년 대장암 발병을 계기로 암투병에 들어간 고 화백은 낙관적 인생관과 강한 의지로 병마와 싸우며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어 왔다. 그러나 암이 간(2003년)과 폐(2004년 가을)로 전이되며 하루하루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는 한국 만화의 부흥을 몰고 온 선봉장이다. 1972년 1월 1일 일간스포츠(IS)에 <임꺽정>을 연재하면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수호지> <일지매> <삼국지> <서유기> 등 고전만화를 잇달아 발표하며 한국 만화의 위상을 높였다. 70년대와 80년대를 관통한 그의 고전 만화는 암울한 시대를 지나던 독자들에게 지적 갈증을 풀어준 비타민이었다.
25일 저녁 그의 빈소가 마련된 일산병원 장례식장(11호실)에는 그를 추모하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 MC 황인용, 영화배우 이범수, 동료 만화가 박기정, 김원빈, 신문수, 허영만, 이두호, 이진주 씨 등 조문객 수백 명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빈소를 찾은 만화가 허영만 씨는 "3주 전과 지난주에 선배님을 만나 뵈었다. 이렇게 무심하게 가시다니 안타깝다. 나이에 비해 빨리 가신 감이 있지만, 큰 족적을 남기셨다. 일은 충분히 해놓고 가셨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골프, 약주 많이 드시고 계십시오라 말하고 싶다"고 심경을 밝혔다.
고 화백은 1991년 <통감투> 연재를 끝으로 일간스포츠를 떠난 후 무려 14년 만인 올해 2월 "영원한 친정" 일간스포츠로 돌아와 <십팔사략>을 연재하던 중이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인희 씨와 3남 1녀(장녀 성옥, 장남 성우, 성언, 성일 씨)가 있다.
1개월 전 부터 상태 악화○…가족들에 따르면 고 화백은 1주일 전부터 위급한 상황이 됐다. 의식은 사람을 조금 알아볼 정도밖에 안 됐다. 아주 상태가 악화된 것은 한 달 전. 너무 아파서 구체적인 유언은 남기지 않았고,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유언을 했다.
고통 참으며 미국거주딸 기다려○…그는 미국에 거주하는 딸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통을 참아가며 진통제 사용을 억제했다. 결국 지난 24일 저녁 장녀가 부친의 침상을 찾았고, 장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25일 낮 12시 34분 숨을 거두었다.
짱구 박사 형의 유작인 이 작품을 이어받아 고 화백은 1960년대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이 작품 외에는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었다. 어린이 코믹 만화로 기획한 이 작품은 네모난 머리에 순진무구한 얼굴을 한 짱구 박사가 아들 짱짱이와 함께하는 모험담을 그렸다.
임꺽정(1972) 고 화백의 첫 출세작. <임꺽정> <수호지> <일지매>로 이어지는 "고우영표 도둑 삼부작"의 첫 스타트를 끊은 작품이기도 하다. 기존 선배들의 화풍을 이어받으면서 줄거리를 비교적 정통으로 씹어냈다. 임꺽정, 서림, 남치근 등 실존 인물에다 윤원형의 조카 윤원빈, 미모의 기생 춘심이라는 가상 인물을 보태 가슴 저미는 이야기로 꾸몄다. 고우영은 벽초 홍명희의 소설과 달리 세도가의 양반이자 칼잡이 윤원빈을 임꺽정의 라이벌로 등장시켰다.
수호지(1973, 2000) <수호지>는 자유롭게 상상력을 동원해 마치 장난하듯 고전을 재해석했다. 연재 첫 작품 <임꺽정>으로부터 파격적인 변화였다. 그는 이 때부터 정통이란 단어를 쓰레기통에 버린 듯했다. 2000년에는 새로운 <수호지>를 선보이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수호지라, 재미난 이야기의 노가리를 뿌려 나가겠거니와, 먼저 사두(蛇頭)를 달아, 당시의 시대 배경부터 밝혀두고 가야 쓰것다"는 첫 문장부터 아주 도발적이다. 그림에다가는 실제로 뱀 대가리를 그리는 용기를 부렸는데 여기에 독자들은 맛이 확 들어버렸다. 이 작품을 통해 떡장수 무대 캐릭터가 우리 사회에서 큰 인기를 끈다.
해동일룡(1974) 일간스포츠 세 번째 연재작. 이성계를 주인공으로 삼아 사극에 도전했으나, 작가 스스로 스토리를 풀어나가지 못하는 모순에 빠짐. 풍자와 해학을 무기로 삼는 그에게 주제 자체가 너무나 재미없었다. 그가 인정하는 실패작.일지매(1975) 조선시대 도둑 일지매의 활약을 그렸다. 고 화백은 상상을 보태 일지매 캐릭터를 여자처럼 곱상하게 창조해낸다. 일지매를 사모하는 월희와의 "러브"가 좀더 스토리의 중심축이 된다.
중국 고전으로 밥 먹고 산다는 주변의 비아냥거림을 일축하기 위해 독창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낸 결과다. 일지매는 청나라 황제를 암살하기 위해 눈보라를 헤치며 국경으로 향하고 월희는 그를 따라간다. 초입에 무수한 정자들이 난자로 돌진하는 장면을 과감하게 그렸다가 심의의 집중 포화를 맞았을 정도로 처음부터 에로틱한 요소가 유난히 눈에 띄는 화제작.삼국지(1978) 소년잡지 <새소년>에 연재된 작품. 신문 연재를 하면서 동시에 소년잡지 연재까지 할 정도로 필력이 살아나는 시점에서 제작됐다. 일본으로 건너가 "전설의 파이터" 최배달을 직접 취재했다. 최배달이 무시무시한 세계 각국의 파이터들과 대결을 벌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방학기 씨의 <바람의 파이터> 탄생에 영향을 주었다.
고 화백의 재능과 원숙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 안정되게 연재를 하면서 그는 대작에 손을 댄다. 바로 <삼국지>다. 무려 3년에 걸쳐 연재되며 "고우영"을 국내 최고의 작가 대열에 올려 놓았다. 유비를 쫀쫀하고 쪼다 같은 사나이로, 조조를 난세의 지략가로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삼국지>를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십팔사략(1993) 고 화백이 동아출판사의 지원을 받고 직접 중국을 여행하며 10권 분량의 단행본으로 제작했다. 중국 건국 신화서부터 송나라 시대까지의 역사를 담았다. 그의 엄청난 지적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일간스포츠에서 연재하는 분량은 단행본으로 나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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