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세광 사건 당시 숨진 장봉화씨 유족] ″국가는 아무 보상도 안했다″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 당시 경호원이 발사한 총탄에 의해 숨진 것으로 확인된 장봉화(당시 16세?성동여자실업고 2년)씨의 유족이 사건 이후 지금까지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장씨의 큰 언니 봉희(52)씨는 21일 “성금의 일부는 받았으나 피격사건 이후 지금까지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받은 보상은 아무 것도 없다”고 밝혔다.
장씨는 “사건 당시 경황도 없었고 법률적인 지식도 없어 보상문제는 생각도 안했다”며 “하지만 보상을 받는다고 해서 부모나 형제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금도 보상을 청구할 필요성은 못 느낀다”고 말했다.
사건 당시 봉화양은 성동여실고 합창단원 자격으로 광복절 행사에서 경축노래를 부르기 위해 참석했다가 대통령 경호원이 쏜 총탄에 맞아 숨진 것으로 20일 공개된 외교부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당시 수사본부는 장양의 사망경위에 대해선 일절 발표하지 않았으며 검찰에 송치한 기록에도 장양 살해피의자로 문세광이 기록돼 있었다.
장씨는 “국가유공자나 민주화투사도 아니었고 전쟁으로 가족도 잃는 마당에 우리가 겪은 일은 그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며 “아마 당시 총을 쏜 경호원도 우발적인 사고로 많이 괴로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또 “나도 그때 너무 놀랐고 슬펐다”며“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린 동생도 보냈으니 개인적으로 너무 큰 고통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사건기록이 공개된 데 대해 “어차피 육영수 여사가 중심인 문제로 우리와는 별 연관이 없다”며 “정치적인 것과 무관한 개인의 문제로 단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그러면서도 “오늘 아침 TV에서 보도를 접하면서 ‘우리 봉화가 살아있었다면 지금 몇살일까’하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장씨는 결혼해 의정부의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최근 휴직했다.
그는 다른 여동생과 남동생 1명도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고 전했다.
김민호기자 alethei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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