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혼,고구려는 지금 ⑵] 군량미 창고터 확인해준 탄화미

입력 2005. 1. 11. 05:15 수정 2005. 1. 11.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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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8월17일 임진강에 접한 경기도 연천 무등리 2보루의 깎아지른 절벽토층에서 불에 탄 쌀과 조로 이뤄진 탄화곡물이 대량 발견됐다.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조사단은 이 지역 200m에 걸쳐 분포된 탄화곡물이 수백가마는 될 것으로 판단하고 전문기관에 탄소연대 측정을 의뢰했다.

탄화미에 대한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미국 BETA연구소의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결과,각각 AD 530〜690년,AD 660〜895년이라는 자료를 내놓았다.

탄화미 연대가 5세기〜7세기 중후반으로 고구려가 이곳을 장악하고 있던 시기와 겹쳐 고구려 군량미 창고임이 분명했다.

무등리2보루의 탄화곡물은 남한지역에서는 최초로 발견된 고구려군 식생활 자료로 고구려인의 주식이 쌀과 조 등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황해도 안악고분의 벽화도 부엌에서 시루로 밥을 짓는 광경이 묘사돼 있어 고구려 귀족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쌀밥을 주식으로 삼았다고 여겨진다.

무등리2보루의 탄화미를 분석한 허문회 서울대 명예교수(식물육종학)는 “쌀은 대부분 미 캘리포니아 지역이 원산지인 자포니카 계통으로 싹이 발아된 쌀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고구려군이 장기간의 보관과 운반을 위해 현미로 도정한 쌀을 상당량의 백미와 섞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현미는 벼껍질만 벗긴 것으로 소화에 문제가 있고,백미는 잘 다듬기는 했으나 영양분이 파괴되는데다 보관상 문제가 있기 때문에 두가지를 섞은 것으로 허 교수는 분석했다.

이는 당시로서는 고급 곡물인 쌀을 최전방 군사들에게까지 먹였을 정도로 고구려가 부강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고구려군은 쌀을 어디에서 운송해왔을까. 허교수는 “고구려 대제국의 땅인 요동반도 요하유역에 대평야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그 곡창지대에서 쌀을 대량으로 수확해 임진강을 건너 이곳에 비축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탄화곡물과 함께 발굴된 고구려 토기편이나 소토덩어리 등으로 미루어 무등리2보루는 신라와 백제를 견제하는 천혜의 요새였음을 알 수 있다.

본사 취재단이 낙엽과 흙으로 덮인 이곳 토성을 파보니 검게 탄 탄환미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쌀밥으로 배를 채운 고구려군의 웅장한 기개가 전해지는 느낌이랄까.이광형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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