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은 횃불 들고, 정태춘은 꽹과리를..
[오마이뉴스 박상규 기자] ▲ 시인 고은이 "2004 대추리 평화축전 - 들이 운다"에서 횃불을 들고 미군기지로 행진하고 있다. ⓒ2004 박상규 ▲ 가수 정태춘은 꽹과리를 치며 고향땅을 행진했다. ⓒ2004 박상규 평야가 시뻘건 불길로 타올랐다. 한 해 동안 농민의 피땀을 먹고 자란 짚은 흰 연기를 하늘로 뿜어대며 타들어갔다. 시린 초겨울 하늘엔 "FUCKING USA! YANKEE GO HOME"이라 적힌 거대한 연이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시인 고은은 펜이 아닌 횃불을 치켜들었다. 가수 정태춘은 통기타 대신 꽹과리를 들었다. 정태춘의 꽹과리 장단에 맞춰 횃불 든 고은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평택 미군기지 K-6로 향했다. 이들의 뒤를 수십 년 동안 가꾼 문전옥답을 미군에게 넘겨 줄 처지에 놓인 평택의 늙은 농부 300여명이 따랐다.
늙은 농부들은 쉰 목소리로 "이 땅이 뉘 땅인데 나가라는 거여!", "우린 못 나가! 너희들이나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절규하듯 외쳤다. 평택에서 열린 "2004 대추리 평화축전 - 들이 운다"는 시인들의 시낭송으로 시작돼 늙은 농부의 절규로 끝이 났다.
▲ 이날 행사장에는 수십 개의 만장이 걸렸다. ⓒ2004 박상규 "평화의 힘으로 무력을 무기력하게!""2004 대추리 평화축전 - 들이 운다"가 18일(토)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까지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평야에서 열렸다. 대추리 평야는 정부의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라 용산 주한미군과 미 2사단이 들어설 예정지다.
행사무대는 추수를 끝내고 남은 짚으로 만들어졌다. 주변에 설치된 수십여 개의 만장도 눈길을 끌었다.
이날 평화 축전에는 시인 고은, 문학평론가 임헌영, 가수 정태춘・박은옥, 문정현 신부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평택시 농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300여명과 함께 "평화의 힘으로 무력을 무기력하게", "미군기지 평택 확장이전 반대"를 한 목소리로 외쳤다.
김지태(45) "미군기지 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이하 팽성대책위)"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총칼이 선량한 시민들을 이긴 적이 없다"며 "이름 없는 작은 분들의 힘을 모아 평택을 미군기지가 아닌 농민의 평화로운 땅으로 지켜나가겠다"고 밝혔다.
문정현 신부는 무릎 통증으로 인해 다리를 절룩거리며 무대에 올랐다. 문 신부는 "매향리도 이겼고, 부안의 핵폐기장도 무산 됐다"며 "이제 대추리의 눈물과 한을 국민들이 알게됐으니 미군기지가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후 가수 김현성씨와 손병휘씨의 공연이 있었고, 서울예대 무용과 2학년인 김동현씨는 "들녘에서 신생을 꿈꾸다"라는 주제의 춤 공연을 펼쳤다. 이경석・김준영씨 등은 민족무예 "무예24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 농민들은 추수를 끝낸 논에 거대한 불을 놓았다. ⓒ2004 박상규 ▲ 이날 행사에는 300여명의 농민들과 문인들이 참여했다. ⓒ2004 박상규 문인들, 시・소설 낭송으로 아픔의 현장 보듬다이어 문학평론가 임헌영과 시인 고은, 홍일선 등의 작가들이 소속된 <한국문학평화포럼>은 "상생・평화・공존을 위한 문학축적 2004 - 제5회 대추리 문학축전"을 열었다.
행사에 참여한 문인들은 바람 부는 대추리 들판에 서서 시와 소설을 낭송했다. 임헌영 한국문학평화포험 부회장은 평택의 땅과 농민이 울고 있다"며 "추위 속에서도 꿋꿋이 싸워 평화의 땅 평택을 지키자"고 말했다.
▲ 평택에서 태어난 박후기 시인은 땅을 파고 들어가 시를 낭송했다. ⓒ2004 박상규 고은 시인은 "평택은 평야를 뜻하면서도 평화와 평등을 뜻한다"며 "평화와 평등은 만들어진 풍경이 아니라 노력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여 참석자들로부터 환호성을 받았다.
또한 평택이 고향인 박후기 시인과 문동만・유정이 시인은 대추리 논을 파고 들어가 시를 낭송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이날 평화축전의 마지막은 가수 정태춘・박은옥이 장식했다. 이들은 "평택의 너른 들에 바친다"며 <저 들에 불을 놓아>와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를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정태춘씨는 "대추리와 더불어 미군기지가 들어선다는 도두리는 내 고향"이라며 "이런 때 고향 들판에 서서 노래를 부르게 돼 마음이 착찹하다"고 말했다.
"2004 대추리 평화축전-들이 운다"는 대추리 평야에서 짚을 태우는 불놀이 행사와 미군기지 K-6까지 횃불행진을 벌이는 것으로 끝났다.
김덕일 팽성대책위 정책실장은 "올해 평화축전은 문인들이 자발적으로 행사를 열어주고 작년에 비해 참석한 사람도 많았다"며 "내년에는 일이 잘 마무리 돼 성대한 "승리잔치마당"을 열고 싶다"고 말했다.
▲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가수 정태춘, 박은옥 ⓒ2004 박상규 "평택 주민들은 우리 모두의 십자가를 졌다" [인터뷰] 불편한 몸 이끌고 참석한 문정현 신부 ▲ ⓒ박상규 이날 ‘2004 대추리 평화축전’에는 문정현 신부가 참석했다. 문정현 신부는 다리를 저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행사장을 끝까지 지켰다. 아래는 문정현 신부와의 짧은 인터뷰.<font color = navy>- 오늘 평화축전의 의미는 무엇인가.“평화를 통해 생명을 지키자는 것이다. 그리고 평택 팽성읍 주민들의 생존권 투쟁이기도 하다. 힘없는 주민들을 정부가 지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쫓아내려 하니 이런 모순된 세상이 어디 있는가. 국가의 보호 없이 스스로 자신의 생존을 지켜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font color = navy>- 앞으로 평택 팽성읍 주민들의 투쟁에 참여할 것인가. “당연하다. 힘닿는 데 까지 참여해 이곳 주민들과 함께 할 것이다.”<font color = navy>- 평택 팽성읍 주민들의 싸움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멀리 볼 것도 없다. 매향리와 부안의 싸움을 떠올려 보라. 힘없는 주민들이 똘똘 뭉쳐 끝내 승리하지 않았는가. 이젠 평택 팽성읍의 차례다. 앞으로 이곳에 힘에 모일 것이다. 이젠 평택에서 승리할 차례가 올 것이다.”<font color = navy>- 팽성읍 주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한반도의 아픔이 이곳 평택에 모두 모였다. 이곳 주민들은 우리 모두의 십자가를 들고 있다. 지금까지는 외로웠지만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십자가를 함께 들 것이다. 힘겹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꿋꿋하게 나아가길 바란다.” /박상규 기자- ⓒ 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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