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대변인? 돈만 밝히는 경제인?

[오마이뉴스 박수원 기자] ▲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2004 오마이뉴스 권우성 유럽 순방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 옆에는 국제상업회의소(ICC) 회장으로 선출된 대한상공회의소 박용성(64) 회장이 서 있었다. 재계에서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는 박용성 회장은 지난 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상업회의소(ICC) 이사회에서 제45대 회장에 피선됐다.
국제상업회의소(ICC)는 세계최대의 민간국제경제기구로 "경제계의 유엔"으로 불릴 만큼 권위 있는 단체다. 박용성 회장은 부회장 2년 임기 뒤 자동으로 회장을 맡도록 한 정관에 따라 내년 2월부터 시작되는 2년 임기 회장에 선임됐다.
회장에 선임된 이후 박 회장은 기자들과 간담회를 통해 "ICC 개혁에 힘쓰면서 세계무역기구(WTO) 등에서 우리나라의 입장을 많이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취임 일성을 밝혔다. 미국과 유럽에서 독점하다시피한 ICC회장에 한국의 대표적인 재계 인사가 선출된 일은 환영하고 기뻐해야 할 일이다. 국제올림픽 위원회(IOC)위원에다 ICC회장 감투까지 썼으니 박 회장 개인 입장에서도 상당히 영광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다.
재계에서 박용성 회장은 소신있고, 추진력이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10년 구조조정을 통해 "물장사" 하던 두산그룹을 중공업 중심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올들어서는 숙원 사업이었던 대우종기 인수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대우종기 인수가 마무리되면 두산은 단숨에 재계 10위 안에 진입하게 된다.
박용성 회장을 보는 상반된 시각 그러나 박용성 회장을 보는 시각이 꼭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박용성 회장을 향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그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박용성 회장은 정말 적절할 때에 우리(재계)를 대변하는 이야기를 한다. 누가 그분만큼 말할 수 있겠느냐. 요즘처럼 재계가 마치 반개혁세력인 것처럼 공격당하고 있는 때, 공정거래법 등에 대해 제대로 할말을 하는 이는 박 회장밖에 없다.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아서 후련할 때도 있다."출자총액제한제도 등 재계 입장에서는 민감한 공정거래법 통과를 앞두고 재계 관계자가 이같이 말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박용성 회장은 파리에서도 재계 대변인 노릇을 톡톡히 했다. 논란이 되는 공정거래법 개정과 4대 입법에 대해서 정치권에 일갈했다.
"요즘같이 어려울 때 기업을 도와주는 법을 만들어야 하는 데 오히려 기업을 옥죄는 법을 만들고 있다. 정치권이 우선 반성해야 한다. 우리 경제나 기업의 경쟁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4대 입법을 가지고 세월을 보내고 있다."박용성 회장의 말은 자칫 잘못하면 경제를 위해서는 다른 것은 필요없다는 "경제만능론" 처럼 들린다. 박용성 회장은 파리 기자간담회에서 "경쟁처럼 좋은 것이 없는 만큼 의료와 교육분야에서 영리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교육 시장의 폭발적인 증가와 의료 공공성의 훼손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는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 영리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박 회장의 주장은 토론이 필요한 주제다. 교육과 의료를 경제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용성 회장의 이 발언은 의료와 교육을 개방하는 내용을 담은 경제특구법을 겨냥한 측면이 없지 않다. 경제특구법은 국회에서 통과되긴 했지만, 여전히 각론적인 부분에서는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찌꺼기를 버릴 수 있는 하수구가 필요한데..." "백두대간? 풍수지리하는 사람이나 따지는 것" 시민단체-노동계와 관계 좋지 않아 박용성 회장은 두산그룹의 로열 패밀리로 국제적으로 더 유명한 재계 인사다. 2000년 5월부터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승승장구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에다 2002년 국제상업회의소 이사회에서 부회장으로 피선된 이후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노동계에 할 말을 모두 다한다고 해서 "미스터 쓴소리"로 통한다. 2002년 대한상의 송년회 행사에서 밝힌 소신은 널리 회자되고 있다.
"백두대간? 풍수지리하는 사람이나 따지는 거지. 우리는 스키장 시설을 늘려야 한다. 동남아에서 30만명이 일본보다 싼 한국으로 스키타러 오는데, 1인당 100달러만 써도 어딥니까."이같은 발언으로 박용성 회장은 시민사회단체와 관계가 좋지 못하다. 지난 2003년 1월 두산중공업의 배달호씨 분신 사건 이후에는 노동계로부터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 사퇴를 요구받기도 했다. "박용성 회장의 하수구 발언은 두산그룹, 나아가 박 회장의 사업스타일을 단적으로 반영해 주고 있다."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토론회에 참석해 박용성 회장에 대해 혹평했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 11월 4일 "우리 기업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서울대 초청특강에서 나왔다.
박 회장은 이날 "어느 사회든 찌꺼기를 버릴 수 있는 하구수가 필요한데 모두 막고 참으라고만 하니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 엉망이 되고 나라 경제도 엉망이 됐다"며 "이상한 법이 시행된 뒤 모텔산업과 지방경제가 다 무너졌다"고 성매매 특별법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성산업의 폐해는 차치하고, "돈이 되면 어떤 것을 해도 상관 없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는 대목이다. 박용성 회장 발언에는 단란주점과 안마시술소가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있고, 그 규모가 연간 무려 24조원에 달하는 망국적 성산업에 대한 인식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법을 주도한 조배숙 열린우리당 의원은 "박 회장이 주요 경제단체를 이끌만한 경영철학을 갖추고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고 강도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뿐 아니다. 두산의 한국중공업과 고려산업개발 인수는 헐값매각과 불공정매각으로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고, 검찰 고발까지 당했다. 두산중공업의 노사관계 역시 불안정하다. 이런 지적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박용성 회장이 국내에서 긍정적인 평가만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는 파리 기자간담회에서 지도층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가진 자들도, 우측에 있는 자들도 반성해야 한다. 사회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다해야 존경받는 것이다."기회만 있으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부르짖던 박용성 회장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존경받는 세계의 재계 지도자로 인정받는 것은 전적으로 박용성 회장의 선택에 달려있다./박수원 기자- ⓒ 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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