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통해 더 깊은 향기를 내는 "백합"

2004. 6. 22.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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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민수 기자] ⓒ2004 김민수 봄이 끝나고 여름이 오면 나리꽃 종류들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백합이라는 이름은 중국식 이름이고 본래 우리 나라에서는 나리꽃이라고 불렀답니다. 나리꽃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꽃들 또한 많으니 그런데도 "백합"하면 떠올리는 그 꽃을 소개합니다.

백합을 볼 때마다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있습니다. 80년대 초 강원도 횡성의 어느 깊은 산 속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밤이 되자 별들이 초롱한 것은 물론이요. 풀벌레들의 노랫소리며,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와 풀내음이 온 천지를 감싸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 가운데 유난히 백합의 향기는 감미로웠습니다. 아침이면 그 향기로운 백합의 아름다운 자태를 꼭 보리라 다짐을 하고 꽃향기에 취해 일어난 새벽 백합 옆에는 가시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하늘거리는 바람을 타고 백합이 흔들리며 가시나무의 가시에 그 어여쁜 꽃잎이 찔려 상했습니다.

"하필이면 백합 옆에 가시나무를 심었을까?"그러나 이내 꽃을 심은 이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 궁금증이 풀어졌습니다. 가시에 찔리면서 더 깊은 향기를 내기에 일부러 백합 주변에 가시나무를 심은 것이었습니다. "고난의 승화 혹은 고난의 향기가 이렇게 진할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고난을 오히려 깊은 향기로 승화시킨 백합이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또 고난이 삶의 친구와도 같은 것이라고 여기게 됐습니다.

ⓒ2004 김민수 "백합"은 성서에 자주 등장할 뿐만 아니라 찬송시에도 백합을 주제로 한 것들이 많습니다. 부활의 상징은 흰색인데, 부활절이 되면 백합으로 강단을 장식합니다. 예수는 먹고사는 문제에만 너무 집착을 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입을 것을 근심하느냐? 들에 핀 백합을 보아라. 수고도 하지 아니하고, 길쌈도 하지 않아도 솔로몬이 입은 옷보다도 고귀하지 아니하냐?"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자발적인 가난, 청빈한 삶을 추구하는 삶이야말로 구도자의 삶일 것입니다. 그런 삶을 추구하며 살아갈 때에 죽음이라는 망령을 죽이는 부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물신주의가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경제논리에 따라 이익이 생긴다면 어떤 일이라도 불사할 각오로 살아가니 맘몬의 노예가 되어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망각하고 살아갑니다. 마치 나침반을 잃은 배가 항해를 하는 듯 위태위태합니다.

ⓒ2004 김민수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가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셨지만 단 하나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뱀의 꼬임에 넘어가 금단의 열매 선악과를 따먹게 됩니다. 진노하신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합니다.

이 이야기에 누군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될 때 하와가 흘린 눈물이 땅 위에 떨어져 백합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그러니 백합은 어쩌면 에덴동산으로의 복귀를 소망하는 염원을 담은 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 인간과 인간의 책임적인 관계, 신과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분열이 시작됩니다. 이 모든 것들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우리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던 이웃들이 바로 우리의 이웃임을 깨달아가는 과정들이 있어여 할 것입니다.

ⓒ2004 김민수 백합은 원예종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원예종이라는 것들도 원래는 야생화였다는 생각을 왜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여기저기 나리꽃들의 소식이 들려오기에, 이른 봄부터 산책길에서 보았던 나리꽃의 근황도 확인할 겸 오랜만에 걷지 않던 길을 산책했습니다. 새순만 보고 참나리꽃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곳에서 만난 것은 하얗게 핀 산백합이었습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그 곳에서 더욱 화사한 모습으로 피어있는 백합을 보니 우리 사람들이 자연에게 얼마나 몹쓸 짓을 많이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자연의 미가 있는데 억지로 인공의 미를 가미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예쁜 들꽃을 보면 "야, 저 꽃 조화처럼 예쁘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들리기도 합니다. 진짜가 가짜에게 밀려난 느낌입니다.

ⓒ2004 김민수 진짜와 가짜의 구별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현실은 가짜들이 진짜인 것처럼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도 나도 진짜로 살기보다는 가짜로 살려고 합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 코드가 있다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다가 "겸손"이란 단어를 떠올려 봅니다.

백합은 늘 살포시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향기로움과 순백의 아름다움을 품은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거기에 더해 겸손함까지 담고 있는 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마음으로 그들을 보니 여름이 깊어가면서 시들어 가는 꽃이 안타깝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꽃이 피듯이 때가 되면 지는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2004 김민수 백합의 꽃말은 "순결, 결백"입니다.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 검은색이라면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 흰색이니, 어두운 죽음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소망을 주는 꽃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 봅니다.

이 땅을 위해서 순결한 자신의 목숨을 바친 이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애써서 이 땅을 지켜왔는데 지금 이 순간 이 나라는 전쟁에 뛰어들어 돈을 벌겠다고 합니다. 자본의 속성이 아무리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시키는 것이라고 해도 전쟁을 통해서 국익을 챙기겠다는 발상까지 나오다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외세의 침략과 동족간의 불화로 인해 전쟁의 아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뼈아프게 느꼈으면서도 이젠 전쟁주범의 용병이 되어 우리에게 어떤 피해도 준 적이 없는 이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겠다고 합니다. 평화, 재건이라는 탈을 쓰고 말입니다.

ⓒ2004 김민수 너의 깊은 향기를 닮고 싶다고 하면서도나에게 닥쳐오는 고난을 피하려고만 했다너의 몸이 찢기울 때더 깊은 향이 난다는 것으로 인해 너의 고난을 기뻐했다당연하다고 했다그러나 이젠 아니다이젠 너의 아픔으로 인해 토해내는네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던 향기를 기뻐하지 않겠다차라리나에게 닥쳐오는 고난을 음미하며내 안에 얼마나 깊은 향기가 있는지아니면온갖 냄새나는 악취만 남았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보겠다<자작시-백합> /김민수 기자 (gangdoll@empal.com)<hr noshade color=#FF9900>덧붙이는 글<내게로 다가온 꽃들>은 총 100회를 목표로 시작했으며, 이 기사를 통해 나오는 원고료와 관련 수익금은 전액 불우어린이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기사까지의 기금] 102만원기금 중 93만원은 백혈병으로 투병하고 있는 김보미(남제주군 사계리) 학생에게 5월 18일 전달되었습니다. 김보미 학생은 현재 3차 수술을 마치고 퇴원해서 통원치료를 하고 있으며(6월 14일 현재) 완치의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기자소개 : 김민수 기자는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책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리지 않는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www.freechal.com/gangdoll을 방문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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