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을 걸어 "겨우살이" 따러 갔습니다

[오마이뉴스 신한균 기자]오늘은 산행을 조금 멀리 떠날 예정입니다.
낙엽이 떨어지면 겨울이 되고, 겨울이 되면 자기 세상이 되었다고, 그것도 다른 나무의 높은 가지에 뿌리 박고, 추운 겨울을 즐기는 "겨우살이", 바로 이 겨우살이 따러 가는 날입니다.
겨우살이를 옛날에는 곡기생이라고 불렀으며 강원도에서는 눈속에 피는 꽂이란 뜻에서 설화라고 부르기도 하며 경상도에서는 더부살이라 하기도 합니다.
▲ 겨우살이 ⓒ2004 신한균 아침 일찍 아내는 내 도시락을 챙기면서, 일요일은 확실히 찾아오는 생과부의 날이라며 나를 원망이라도 하듯이 살큼 흘겨보았습니다.
이제 겨우 네 살 된 아들, 일곱살 된 셋째딸 때문에 아내는 이 추운 겨울에는 산에 오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아는 나는 “그러면 같이 갈까요?”라고 선수를 쳤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투정 아닌 투정을 못 본 척하며 집을 나섰습니다.
이 추운 겨울이 끝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 아내와 애들을 모두 데리고 야산에 올라 봄나물을 뜯으며, 애들에게 산 사랑을 가르칠 생각입니다.
▲ 탱크 ⓒ2004 신한균 이번 산행에는 "산도둑놈"이자 "산신령"이란 별명을 가진 솔뫼씨와 또 다른 산도둑놈 한 사람. 그리고 날쌘 "탱크", 그리고 필자 등 네 명이 같이 산을 탈 예정입니다.
필자가 산도둑놈이라 부르는 이유는 솔뫼씨가 산신령 허가 없이 산에서 자란 귀한 약재를 따서 세상으로 내려보내, 자칭해서 산도둑놈이라 칭하기 때문입니다.
이중에서 산을 누구보다 잘 타는 자는 탱크입니다. 그러나 탱크는 사람이 아니라, 또 다른 산도둑놈을 아비로 둔 8살짜리 진돗개입니다. 산 입구에서 솔뫼씨보다 더 빨리 산을 오르는 탱크를 선발대 삼아 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탱크는 전생에 산도둑놈이었나 봅니다. 도저히 우리 인간들이 탱크를 따를 수 없습니다. 탱크는 산에 오면 날아다닙니다. 그러나 탱크는 앞서가다가도 자기의 아빠인 제2의 산도둑놈을 기다렸다가, 아빠를 확인하고 다시 산행을 계속합니다.
제2의 산도둑놈, 이 사람은 유달리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탱크가 태어나자 탱크와 산행을 시작했고, 현재 탱크가 8살, 또 산신령 솔뫼씨와 만나 약초꾼이 된 것은 2년 전이며, 자기보다 나이가 여섯살 적은 솔뫼씨가 약초에 있어서는 자기의 스승이라고 합니다.
▲ 제2의 산도둑, 청암씨와 탱크 ⓒ2004 신한균 이 사람은 푸른 바위를 뜻하는 "청암"이라는 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호를 스님에게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솔뫼씨와 같은 경남 양산 영축산이 고향이며 5대째 대를 이어 영축산 아랫마을에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이 분의 할머니의 할머니는 통도사 아랫마을에서 주막을 하셨고 어머니는 20년 전까지 옛 통도사 정문 앞에서 산채요리 전문식당을 하셨습니다.
산도둑놈 답지 않게 음악에 아주 조예가 깊습니다. 한 때 음악학원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잠시나마 주먹을 믿고, 소위 "조직"의 일원이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만, 필자가 보기에는 산을 닮아 정 많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필자가 이 사람에게 과거사를 묻기라도 하면 “과거를 묻지 말라”는 사나이입니다. 솔뫼씨와 같은 산도둑 약초꾼이나 선글라스 낀 모습, 큰 키, 그리고 바위 위에서 한번씩 부르는 노래솜씨는 산의 정경과 어울려 한편의 영화 같은 분위기을 자아내는 산사나이입니다.
산을 조금 오르다 아카시아 군락을 만났습니다. 예리한 산사나이 솔뫼씨의 발걸음이 갑자기 빨라졌습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것은 장수버섯이었습니다. 구멍 버섯과에 속하는 불로초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으며, 먹으면 장수한다 하여 장수버섯이라 부릅니다. 또 버섯의 색깔이 여러 해 동안 보존된다하여 만년버섯으로 불리는 버섯입니다.
▲ 장수버섯 ⓒ2004 신한균 귀화식물인 아카시아 그루터기에 사는 버섯이나 약재의 황제 상황버섯보다는 못하지만 항암 효과와 여러 약효를 가지고 있다고 솔뫼씨는 말합니다.
산을 한참 오르다보니, 오늘의 산행의 주인공인 겨우살이는, 구경도 못했으나, 어느덧 산 정상 가까이 도달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눈이 그대로 쌓여 발에 밟히기 시작했습니다.
20분 정도 걸어 이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도달하였습니다.
▲ 눈꽃이 활짝 핀 정상에서 솔뫼씨 ⓒ2004 신한균 어느 산이나 그렇듯이 정상에는 억새풀과 키 작은 나무군락이 있습니다. 억새풀과 어울려 키 작은 나뭇가지에 핀 눈꽃은 정말 하얗게 빛나면서 산 정상을 설백의 나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눈이 얼은 정상의 평원길을 걸을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났습니다. 눈이 그대로 얼었기 때문입니다.
눈길을 걸어 겨우살이를 찾아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탱크는 이 설경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낀 듯 깡총깡총 뛰다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산밑으로 질주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제2의 산도둑 청암씨는 말없이 탱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정상을 넘어 10여 분이 지나자 탱크는 꼬리를 흔들며 우리들 곁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청암씨 말로는 탱크는 산에서 산행을 할 때면 요지 요지마다 오줌을 조금씩 싼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오줌냄새를 맡고 왔던 길을 정확히 되찾아 온다고 합니다.
정상따라 한참을 걸었을까? 솔뫼씨가 이제부터는 계곡따라 산을 내려가야 겨우살이를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겨우살이는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조금이라도 오염된 곳에는 없다고 합니다.
▲ 딱다구리집을 발견하고 ⓒ2004 신한균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가 탱크가 코를 킹킹거렸습니다. 그러자 솔뫼씨 못지 않게 발빠른 탱크 아빠 청암씨가 탱크 있는 곳으로 뛰어갔습니다. 거기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산신령 솔뫼씨의 예리한 눈은 나무 둥지를 가리켰습니다.
▲ 밑에서 본 겨우살이 ⓒ2004 신한균 그것은 천년기념물인 딱다구리 집이었습니다. 탱크가 딱다구리 냄새을 맡고 여기를 찾아낸 것 같습니다. 나무둥지에 둥글게 파인 그 것은 귀한 딱다구리가 바로 이 산에 산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필자의 또다른 생각으로는 딱다구리가 벌레만 잡아먹고간 구멍일수도 있다는 의심도 갔습니다. 왜냐하면 딱다구리 집이 높지않고 뱀을 피하기 위해 딱다구리의 지혜인 집밑에 송진도 없기 때문입니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가 기암 절벽을 만났습니다. 두 산도둑과 탱크는 절벽을 잘도 타고 넘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솔뫼씨가 손을 들어 한곳을 가리켰습니다. 그것은 바로 높은 나무 가지에 걸린 겨우살이였습니다. 마치, 멀리 보이는 앙상한 가지 위에 얹혀 있는 새집 같았습니다. 그러나 새집은 마른 나뭇가지인데 이 겨우살이는 파란 새싹으로 둥지를 털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둥지가 아니라 마치 둥근 어항 속의 수초처럼 파란순이 하늘 속 나뭇가지에 살포시 얹혀 있었습니다.
오늘 산행의 주인공인 겨우살이는 옛 선조들이 초자연적인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온 식물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사람들은 겨우살이를 귀신을 쫓고 장생불사 능력이 있는 신선한 식물로 여겼습니다. 특히 유럽 사람들에게는 이것은 불사신의 상징이었으며 하늘이 내린 영초라고 신성시하는 식물이었습니다.
▲ 겨우살이의 군락지 ⓒ2004 신한균 겨우살이는 나무 줄기 위에 사는 착생식물로서 숙주에 해당되나 자체가 엽록소를 갖고 있어 스스로 탄소 동화작용을 하여 영양분을 만들 수 있으며 숙주식물한테서는 물만 빼앗을 뿐 전혀 다른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 겨우살이의 열매 ⓒ2004 신한균 흥미있는 것은 겨우살이는 새들을 통해서 번식한다고 합니다. 여름철에는 다른 식물의 그늘에 가려 햇볕을 받지 못하므로 자라지 않고 있다가 가을이 되어 나뭇잎이 떨어지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겨울에 새들이 먹이를 구하기 어려울 때 구슬처럼 생긴 겨우살이 열매는 새들에게 좋은 먹이가 됩니다.
이 열매에는 끈적끈적한 점액이 많이 들어있는데 새들은 이 점액과 씨앗을 먹고 나서 부리에 붙은 끈적이는 점액을 없애기 위해 나무껍질에 비빕니다. 이때 끈끈한 점액에 묻어 있던 씨앗이 나무 껍질에 달라붙어 있다가 싹을 틔우게 되는 것입니다.
겨우살이의 약효는 강력한 항암 식품으로 유럽에서는 암치료제로 사용되며 혈압을 낮추고 신경통, 이뇨작용, 안식작용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독성이 없는 것이 바로 겨우살이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
솔뫼씨는 겨우살이를 따기 위해 마치 다람쥐가 나무에 오르듯 나무에 올랐습니다. 겨우살이가 군락을 형성한다는 솔뫼씨의 말처럼 높은 나뭇가지에 여러 곳 분산되어 있었습니다. 겨우살이 군락이 있는 이 계곡에는 다슬기가 많이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얼음을 깨고 다슬기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찾지 못하고 겨울잠 자는 식용개구리를 만났습니다.
▲ 계곡에서 만난 겨울 잠자던 개구리 ⓒ2004 신한균 잠을 자다가 일어나서인지 아주 동작이 느렸습니다만 사진만 찍고 물 속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이 개구리를 돌려보내면서 필자의 어린 시절 개구리 뒷다리 구워 먹던 옛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정말 먹을 게 적었습니다. 그러나, 먹을 게 많은 지금, 자연이 베푸는 혜택을 적당히 수확하는 그 자체는 자연의 섭리이나 너무 지나치면 자연을 해칩니다.
오늘 필자는 비록 다른 나무에 기생하면서도 자기가 사는 그 나무에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고 그 나무가 겨울잠을 잘 때 열심히 살다가 꽃피는 봄이 오면 행여나 자기가 살고있는 나무에 해가 될까 가만히 있다가 가을 지나 추운 겨울이 오면 열심히 사는 겨우살이를 만났습니다.
이 겨우살이는 현재 힘든 우리들에게 비록 춥고 어려워 살기 힘들어도 살길, 즉 희망을 가진다면 이 추운 겨울에도 굳건히 견딜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느끼게 했습니다./신한균 기자 (shindo7@naver.com)<hr noshade color=#FF9900>덧붙이는 글*이 글은 지난 12월 말 산을 다녀와 쓴 글입니다. 식생 보호를 위해 산 이름은 밝히지 않는 것을 양해바랍니다.
*저는 도자기에 묻어 있는 일본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우리 옛그릇 이름 되찾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학자가 왜곡한 우리 도자사를 바로잡을 뿐 아니라, 미학자들이 왜곡한 도자기의 본질을 사기장인 제가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며 책을 쓰고 있습니다.
기자소개 : 신한균 기자는 도예가 신정희의 장남입니다. 현재 경남 양산 통도사 부근에서 작도 활동과 <잃어버린 사발을 찾아서>란 책을 집필 중입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씩 산에 올라 산사랑 이야기를 전해 드리고 있습니다.- ⓒ 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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