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가족>..가족의 해체와 모바일 가족

2003. 9. 11.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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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람난 가족"의 바람난 가족들(?) 요즘 바람난 가족들이 무척 많습니다. 질투는 나의 힘에서 문성근은 아주 떳떳하게 정부를 두고 결혼생활을 합니다. "그래도 되냐"는 부하직원의 질문에 "바람도 못피고, 집에서도 못하는 것보다는, 바람 피면서 집에도 잘하는 게 백 번 낫다"고 큰 소리를 칩니다. 바람 피는 현장을 목격한 장인 앞에서도, "인생은 한 번 뿐"이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최근 개봉한 "바람난 가족"은 한 두 사람이 바람 피는 게 아니라, 아예 모든 사람이 바람을 핍니다. 남편은 세련된 여자친구가 있고, 시어머니는 남편이 시한부임에도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으며, 급기야 며느리는 고등학생과 바람이 나서 임신까지 하게 됩니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서, 그 틀 안에서 오순도순 사는 평화란 이제 먼 나라 이야기가 된 모양입니다.

"바람난 가족"은 "가족"이란 신화에 대한 해체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어떠한 "다움"에 대해서도 비판의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다움"이란 말은, 일부분만의 사실을 극대화해 때로는 이미지가 현실을 압도해버릴 때가 많습니다. 남자다움, 여자다움, 학생다움, 교사다움 등의 말을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한때 "영국신사"라는 말이 유행했다가, 그들이 식민지에서 행한 약탈행위가 알려지면서, 이 단어가 슬그머니 사라져 버린 것도 한 번 생각해보죠.TV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에서 제가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남자주인공 김래원의 캐릭터였습니다. 거짓말을 밥먹듯 일삼고, 양쪽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질질 짜고, 매달리는 모습은 "남자다움"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모습이었습니다. "다움"이 무너지면, 세상이 끝장날 것처럼 흥분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김래원의 모습에서 저는 아주 후련함을 느꼈습니다. 때로 "다움"은 "도덕성"이란 외피를 쓰고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다움"에서 벗어나는 인물은 심한 매도를 당하기 싶죠. 앙드레 김에 대해 다짜고짜 불쾌감을 드러내는 남성들이 많지 않던가요."바람난 가족"에서도 의사의 모습에서 이러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렌지족 같은 모양새에다가, 아주 상스러운 말투를 쓰는 이 사람이 의사라니요. 그런데, 오렌지족 같은 외모에 상스러운 말을 쓰면 의사가 안된다는 법이 어디 있었던가요. 문소리 또한 전통적인 어머니의 상에 비춰보면 파격적입니다. 다 큰 아이와 속옷차림으로 안고자고, 함께 목욕을 하니까요. 이런 모습은 어머니와 아들이라기보다는 흡사 친구같다는 생각까지 드는군요."바람난 가족"은 "가족"이란 구조도 "다움"의 틀에 갇혀, 개인의 욕망과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개인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란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개인의 이익과 가정의 이익이 충돌한다는 말은 무척 낯선 말입니다. 그러나 "바람난 가족"은 "그렇다"고 말합니다. 김지운 감독이 몇 년 전 보여준 "조용한 가족"이나 올해 크게 흥행한 영화 "장화 홍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결혼하는 우리나라 커플들중 3분의 1이 이혼을 하고, 한 커플당 가지는 아이수가 1명이 채 안되는 현실에서 "가족"은 이미 무너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지난해, "결혼은 미친 짓이다"란 영화가 흥행을 한 것도 우연은 아닌 거죠. 최근 "다모폐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다모"에서도 근친간의 사랑이 등장해 논란이 되고 있지만, "사랑하는데 뭘"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고 하더군요.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종종 배반을 당합니다. 굳이 이방원이나 단종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권력을 둘러싸고, 형제간에, 부자간에 피를 나눈 일은 부지기수로 많으며, 중국 명나라때는 여황제가 왕권강화를 위해 자신의 수많은 자식들을 모두 처형해버린 일도 있습니다. 가까운 예로 현대판 "왕자의 난"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함에도, 우리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여전히 건재함을 알고 있습니다.

"바람난 가족"에서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란 말은 철저하게 배신을 당합니다. 주부인 문소리와 바람핀 고등학생 봉태규는 문소리에게 "밖에서 그 새끼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문소리의 남편을 찾아간 봉태규의 아버지는 "그 놈이 진짜 나쁜 놈일지도 모른다"고 태연하게 말합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입양아 아들에게 정성을 쏟는 문소리에게 누가 "계모"라고 의심의 눈길을 보낼 수 있겠습니까.지난해,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어떻게 마음이 변할 수 있니"라고 남자주인공이 울부짖었지만, "바람난 가족"은 "몸도 변한다"고 한 발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절대적인 것이 모두 사라지고 난 지금, 결국 남는 것은 "현재의 나"밖에는 남지 않겠지요. 임상수 감독은 모든 것은 변하고, 불확실하니,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를 즐겨라고 말합니다.

잠도 안자고 등산가는 문소리에게 아이가 "안자고 가도 돼"라고 걱정하는 투의 질문을 던지자 "죽고 나면 푹 자니까 안자도 돼"라고 말하는 것이나, 문소리가 고등학생 애인인 봉태규와 영화 카사블랑카를 인용해 "내일은 너무 먼 미래"라는 대사를 읖조리는 것도 현재에 대한 집착을 나타낸 것이죠.감독이 6.25 학살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도, 현재의 부모세대들에게 가장 큰 족쇄로 남아있는 것이, 이 사건이기 때문이겠죠. 주 변호사가 죄인처럼 살아가는 좌익 가족들에게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과거나 미래는 신경쓰지 말고 현재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일까요.그러나 감독 역시 이렇게 화끈하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나 봅니다. 남자주인공인 주 변호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찰에게 뇌물을 쓰고 위기를 모면하고, 정부와 사귀는 현실주의자이지만,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할아버지의 자취를 찾아가는 모습을 통해 "가족"에 대한 집착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아이(미래)에게 아버지의 아버지(과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보면 가족이란, 미래와 과거를 잇는 끈으로 볼 수도 있겠군요.아마, 감독은 과거의 "정형화된 가족" 대신에 "모바일 가족"을 말하는 듯 합니다. 핏줄이나, 장소에 연연하지 않고, 개인의 감정과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결합하고, 해체할 수 있는 가족 말입니다. 고등학생 봉태규가 어머니를 따라 프랑스로 가거나, 문소리의 시어머니가 재혼을 해서 미국으로 가는 것처럼, "바람난 가족"의 주인공들은 공간에서 자유로움을 보여줍니다.

문소리나 남편인 주 변호사가 아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굳이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눈여겨 보셨나요. "아들"이라는 보편적인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내 아들, 남 아들, 누구의 아들을 가르는 벽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지요.남편인 주변호사는 입양아 아들을 인정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부인이 바람피고 임신한 아이까지, 자신의 아들로 생각한다며 키우겠다고 말합니다. 핏줄이란 틀도 벗어던지겠다는 것이죠. "모바일 가족이라…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김대홍 기자 (bugulbugul@hanmail.net)<hr noshade color=#FF9900>덧붙이는 글임상수 감독은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눈물(2000), 바람난 가족(2003) 등을 통해 끊임없이 "가족"이란 틀에 대해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또한 위 세 편의 영화뿐만 아니라, 영원한 제국(1995), 인디안 썸머(2001) 등의 각본을 만들었을 정도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솜씨를 갖고 있습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청룡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고 토론토 국제영화제, 하와이 국제영화제, 테살로니키 국제영화제, 예테보리 국제영화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습니다. 눈물로는 부산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 "특별언급"상을 수상했고, 베를린 국제영화제 "파노라마"부분, 모스크바영화제, 인도영화제, 홍콩영화제등에 초청받은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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