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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하 2003. 3. 25.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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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대한 단상.10여년전. 무더운 한 여름날. 해병훈련소의 한 중대원들은 화기훈련장으로 이동했다. 전날부터 내린 장대비로 길은 질퍽였고 화기훈련장의 음습한 분위기는 잔뜩 찌뿌린 하늘과 더불어 어린 병사들의 긴장감을 더욱 유발시켰다.

@IMG1@교관의 긴연설 도중 군용마크가 찍힌 나무상자가 들려왔다. 나무상자의 껍데기엔 위험물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수류탄. 주먹보다 작은 그 검은 쇳덩이가 내 몸뚱아리를 산산조각낼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묘한 공포감이 밀려왔다. 그 작은 쇳덩이의 폭발음은 생각보다 강한 굉음이었다. 갯벌처럼 질퍽거리는 젖은땅은 회색빛포연과 함께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투척을 마치고 언덕을 내려오는 병사들의 얼굴은 사지에서 살아온 듯이 상기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서너명의 동료들과 언덕을 올라가 작고 검은 쇳덩이를 받아들고 벙커안으로 들어갔다.

내 손은 떨렸다. 아마도 그 자리의 모든 어린 병사들은 모두 나 같았으리라. 큰 한숨을 몰아쉬고 가슴에 품은 수류탄의 핀을 손가락에 걸어 뽑아냈다. 그리고 있는 힘껏 냅다 집어던졌다. 그리고 머릴 숙이고 숨죽여 기다렸다. 곧 이어 내가 던진 그 폭탄의 폭발음을 확인하는 순간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내 머리 위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리면서 내 주위로 수많은 파편들이 흩날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의식적으로 몸을 더욱 엎드리고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했지만 도무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폭발음의 충격이 서서히 가시자 고개를 들어 둘러보았다. 그 순간 바로옆 벙커 안에 쓰러져 있는 동료병사의 눈과 마주쳤다. 그제서야 상황이 파악되었다. 그 친구의 수류탄은 그의 바로 위에서 터진 것이었다. 그 병사의 눈과 나의 눈은 아주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벌떡 일어나 언덕 밑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언덕 밑에서 장교들이 정신없이 뛰어오고 있었다. 그 친구의 방탄조끼를 풀었다. 조끼는 걸레처럼 너덜거렸다. 내 옷을 벗어 그 친구를 동여맸다. 금세 내 옷이 검붉은색으로 변했다. 눈만 껌뻑일 뿐 온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그제서야 한쪽팔, 한쪽다리가 없어진 걸 알았다. 그리고 얼굴과 어깨에서도 피가 새어나왔다.

장교들과 교관들이 그친구를 덮치다시피하더니 옷으로 동여맸다. 헬기로 수송되기까지 난 그대로 언덕 위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어도 소리가 안 나오는지 뒤틀린 표정에 입만 뻐끔거리고 있었다.

그 어린 병사가 살아났다는 소식에 모두들 기적이라 했다. 그리고 그는 몇 개월 후 한쪽팔과 다리가 없어진 장애인이 되어 제대를 했다. 최근 들은 그 친구의 소식은 결혼을 하였고 광주의 재래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한다는 소식이었다.

미군의 미사일에 희생된 이라크소년의 사진을 보았다. 머리가 깨져 있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10년전 몸의 반쪽이 깨진 그 병사의 뒤틀린 얼굴과 침묵의 비명과 시커멓고 시뻘겋던 그 모습이 생각났다. 소름이 돋았다. 전쟁이 무슨 3D 워게임이나 정치적 외교적 이해관계에 의해 어쩔 수 없는 필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몸이 깨져 죽어가는 사람의 눈을 보라" 라고 말하고 싶다.

명분이 있든 없든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모든 폭력은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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