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배달호씨 시신과 함께 한 12일
사람이 죽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다. 같이 면회 가고 같이 술 마셨던 분이다. 아직도 눈물이 앞을 가려 글이 쓰여지지 않는다.
구속된 동료들의 면회를 다녀온 날이면 고 배달호씨는 항상 입버릇처럼 구속당한 이들 보기에 부끄럽다며, 다음에는 자기가 교도소에 들어가겠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장가 가지 못했다고 결혼추진위원회도 만들어 준다고 그랬다. 고인은 항상 나에게 그렇게 잘 대해 주었다.
그런데 그분이 가셨다. 본인 생각은 털끝만큼도 하지 않고 그렇게 오로지 남들 생각만 하면서 가셨다.
친일매판자본의 대표기업인 두산이 한국중공업을 특혜인수하고 창립 100주년이 된 2002년. 금속노동조합의 대들보인 한중노조(현 두중노조)의 설립 15주년이 된 2002년.박용성 두중회장과 노동조합은 전국이 빨간 함성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던 월드컵 기간동안, 47일간의 대파업과 무차별 해고 징계 구속 수배로 한판 붙었다. 그 결과 18명의 해고자와 구속자, 수배자를 양산하며 싸움은 노동조합의 일방적인 패배로 끝나버렸다. 그리고 몇 개월 후 한 사람이 분신을 했다.
아침에 출근하여 사무실에 있는데 사람들이 웅성웅성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시신이 있는 민주 광장으로 달려갔다.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시신을 봐도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불에 그을려 타다만 안전화만이 한 노동자의 시신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옆에 있던 동료 수배자 백형일씨가 이 차가 배달호 형님의 차라고 말해주었다. 사실 그때부터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지금도 까마득하다. 배씨의 유언대로 민주광장을 지키겠다는 마음 뿐이었다.
불에 타서 오그라든 시신은 며칠째 그냥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 혹시 부패할지 몰라 넣어 두었던 드라이아이스 때문인지 몰라도 정작 시신을 수습하고 냉동차에 옮기려고 하여도 시신이 땅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아 또 며칠이 지났다. 지금은 얼어있던 시신을 녹이고 부검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왔다. 세상 사람들이, 아니 의로운 이들이 이렇게 많은 줄 미처 몰랐다. 민주노총, 금속연맹, 민주노동당, 사회당 그리고 각 회사의 노조원들이 연일 빈소를 찾아와 한 맺힌 한 영혼을 달래주고 있다.
나 또한 지인으로 지금까지 계속 민주광장을 지키고 있다지만 활동가도 아니고 노조의 대의원이나 집행부의 한 사람도 아니고 지금까지 노조원의 한 사람으로서 노조비 보태주는 것 이외에는 하는 일이 없었던 갑사원 본관 조합원이기에 모든 것이 처음 맞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하게 된 일이 바로 매일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 미망인 형수님 황길영 부인과 구속 및 수배자 부인들의 밥을 챙겨주는 일이다. 내가 보잘 것 없는 일을 맡아 준다면 그 시간에 간부들이 더욱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이다.
그리고 내가 한가지 더 하는 일은 매일 형님의 영혼이 있을지도 모를 이곳 민주광장을 지키는 일이다. 너무 원통해서 죽음으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셨지만 그 원통함 때문에 아직도 하늘나라로 올라가지 못하고 이곳 민주광장을 배회하고 계실 달호 형님을 생각하며 위로하고 오열하고 분노하고 울고 또 울고 말이다.
며칠전 미망인 형수님께서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형님이 집에 나타났는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발가벗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형님은 너무나 온화한 미소를 형수님에게 지었다고 한다. 만지려고 해도 만져지지 않았고 안으려고 해도 안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육신 없는 영혼인데 만질 수 있겠는가.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또 민주광장을 배회하면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서 온 몸에 담뱃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을 당하면서 죽어갔으면서도, 아내가 걱정되어 꿈에서 조차 나타나셨단 말인가? 그 아내를 온화한 미소로 위로하려 하였던가?정식 입관이 되고 장례식이 치러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형님이 이 추운 날씨에 발가벗고 민주광장을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파 주위 분들에게 옷이라도 챙겨드리자고 하여 입던 옷이지만 한벌 가져와서 빈소에 올렸다.
오늘도 주위의 모든 분들이 정작 걱정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데 하도 걱정을 해서 내가 근무하는 부서에 올라왔다. 현실은 사람이 죽어 시신이 아직도 회사에 있고, 동료들은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 멀쩡히 밥 잘먹는 나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회사는 내게 회유와 협박 공갈을 일삼았다. 나는 본부장(이사)을 만난 자리에서 내 의지를 단호하게 밝혔다.
‘사람이 죽었고, 그 시신이 아직 사업장 내에 있으며, 동료의 장례조차 치러주지 못했는데 날보고 근무를 하라니… 이는 인간으로서의 도의를 저버리고 개・돼지가 되어 자기 밥그릇만 챙기라는 말인데 내가 사람된 자로서 어찌 그 말을 따를 수가 있겠는가.’회사는 내가 압력에 굴하지 않자 무단결근처리로 대응하며 나를 해고 시키려는 수순을 밟고 있다.
이제부터는 나도 떳떳한 인생을 살고 싶다. 나도 형님의 길, 내 생각을 안하고 오로지 남 생각만 하는 그 길을 가고 싶다. 물론 주위의 모든 분들이 그런 분들 뿐이라서 이런 말 하기도 부끄럽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나마 방탕한 생활을 접고 지금에야 정신차린 것은 오로지 형님의 덕분이 아닌가 고마움을 금할 수 없다. 이 은혜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다 갚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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