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명시 53 - 박목월의 < 나그네 >

김영환 2002. 11. 15.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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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길은 외줄기남도(南道) 삼백 리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 나그네 > 박목월(朴木月) -나이의 높임말에 연치(年齒)란 말이 있다. 그러나 연치는 연륜(年輪)과는 달라서 함부로 쓸 수 없는 까다로운 어휘이다. 한 해 한 해 쌓는 인생살이 그 경험의 축적을 지칭하는 말이 연륜이다. 하지만 시의 나이를 논한다면 그것은 폭과 깊이를 더하는 `시의 세계`인 것이, `연령`,`연세`,`연륜` 그 어떤 것도 마땅치 않아서 `연치`란 말 이상 합당한 어휘가 없을 것이다.

그같이 <나그네>는 우선 그 `연치`가 돋보인다 하지 않을 수 없다. 30년대의 화자 중심의 이야기시나 역사적 구체성을 지닐 수밖에 없었던 리얼리즘의 장황한 산문적인 형태의 타파가 그것이다.

- 3음보, 2행, 5연의 순환구도.~ ~ ~~길을~ ~ ~~나그네~ ~ ~~삽백리~ ~ ~~저녁놀~ ~ ~~나그네언뜻 보아도 그것은 정화(淨化)된 세계이다. 그러면서 순환구도가 마치 악상(樂想)으로 치면 라벨의 `볼레로(Bolero)`인 양 의식 속에 한없이 반복되는 이미지의 구도인 것이다. 시는 음악이요, 음악 또한 시이다. 시와 음악. 그래서 시인은 `ㄴ ㄹ ㅁ ㅇ`- 이를테면 유포니(euphony)현상인 매끄러운 활음(滑音)을 정돈되게 구사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미지의 흐름을 막고 그 이미지를 꽃봉오리처럼 맺기 위해 매연을 서술형인 `- 다`가 아니고 `명사`로 끝맺었다. - 길, 나그네, 삼백리, 놀, 나그네.그같은 것이 시인은 수없는 나날, 불면의 밤을 지새고, 한 자 한 자, 구구절절, 그 탁마, 그 조탁, 순치, 생략에 매달려 접동새 마냥 피를 토하는 울음을 삼키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 그것이야말로 당신의 생활과 호흡과 연치가 아니겠습니까.이 같은 특징은 동탁이 그 간의 호젓함을 목월에게 띄운 `완화삼`과 대비해도 확연하다.

완화삼(玩花衫) - 목월(木月)에게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물길은 칠백 리(七百里)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이 밤 자면 저 마을에꽃은 지리라.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소년은 흰두루마기를 입고 출타하는 아버지를 강나루가 멀리 보이는 언덕에 혼자 앉아 자주 본다. 강 건너편 가을 하늘 아래에는 누렇게 익은 밀밭이 넘실거리고 아버지는 그렇게 밀밭 새로 학처럼 훨훨 걸어서 사라져 간다. 그러나 매번 아버지가 걷는 길은 딴길 말고 그 길뿐인 외길로 곧장 먼 남도땅 그 끝길로 이어진다. 그것이 어느듯 아버지가 서럽고 그런 소년의 마음도 차츰 차츰 서럽다.

아버지는 어느 마을에 당도한다. 지금쯤 마을 뒷산은 노을로 발갛게 물들고 집집마다 술익는 냄새가 굴뚝 연기 따라 슬슬 피어올라 아버지는 어느 여염집 툇마루에 걸터 앉아 막걸리 한 사발에 목마름과 혼자만의 시름을 달랠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면서 소년은 `내 아버지`가 왠지 슬프다.

해지기 전이라, 아버지는 자리를 털고 다시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처럼 지팡이를 휘휘 저어면서 남도땅으로 이어지는 그 외길을 지금쯤도 혼자 걷는다.

그러나소년의 의식 속 그 `아버지`가 세월이 훌쩍 뛰어넘어서도 살아 있어, `아버지`의 그 영상이 어느새 목월(木月) 자신인, 나라 없는 시절 그 `내`가 되고 말았다.

유유자적물외한인하늘도~강도~나그네가 ~저 달도~구름까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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