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키기 힘든 마음, 꿀떡꿀떡 넘어가길 바라며 만든 노래

김윤주 2026. 3. 2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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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와우산!] 연주곡 버전의 옥상달빛- 회피(Echoes ver.)

옥상달빛 멤버이자 김윤주 와우산레코드 대표의 음악 에세이. 김윤주의 일상과 이야기를 담아 당신의 오늘에 위로가 될 곡을 전달합니다. 음악을 들으며 한 편 한 편 감상해 주세요. <편집자말>

[김윤주 기자]

'이 객실은 금연 객실입니다. '

강릉 숙소 테이블 위에 적혀 있는 안내문을 보니 집을 떠나온 게 실감 난다. 짐을 풀기도 전에 홀린 듯이 창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가본다. 높은 건물에 시선이 부딪치지 않는 탁 트인 바다, 해변가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 모두 드라마 속 장면처럼 평화롭다. 기분 좋은 사람들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혼자만의 이 조용한 시간이 생각보다 더 좋아서 "너무 좋다 너무 좋다" 혼자 중얼거린다.

회피하고 싶은 순간 듣고 싶은 곡
 쉬러 간 강릉 바다에서 떠올린 '회피'
ⓒ 김윤주
꽤 오랜 시간 동안 매 순간 열심을 다해 사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니 나 또한 쉬지 않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나 보다. 3월 중순의 강릉 바다 안에서 조용한 시간을 만나고 나서야 바빠서 뒤로 미뤄두었던 생각들이 하나둘 밀려온다.

사실 생각이 떠오르는 건지 내가 생각을 끄집어내는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언제부턴가 생긴 '생각의 압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넓은 바다 몇 바퀴를 돌 만큼 쉽게 멈추지 않는다.

바다를 보며 '좋.다.'고 느끼기
무섭게 '이걸 찍어서 영상 콘텐츠라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어떤 아티스트의 어떤 노래가 어울리지? 좀 가까이 가서 찍어볼까?' 싶어진다. 쉬러 떠나온 곳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것만 같다.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 생각은 금방 휘발되는 잡생각일 뿐인데, 나는 참 꾸준히 생각만 바쁘다.

지난해 11월 첫 발매한 회피는 새벽에 느꼈던 내 감정을 오롯이 전달하고 싶어 만들었다. 허밍과 피아노 선율에 빗소리가 합쳐져 완성됐다. 조금은 더 쓸쓸함을 느꼈던 그때의 기분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번 글에 들려드릴 회피는 에코스 버전(Echoes ver 소리를 반복·잔향·공간감 중심으로 확장한 음악 버전 - 기자 말)이다. 음악을 듣는 이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당신에게 충분한 도피처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누군가에게 잔잔한 울림을 남길 바라며 기존의 곡을 다시 한 번 재해석해 편집했다.

사실 모든 걸 다 회피하고 싶은 순간에는 음악을 듣는 것도 에너지가 쓰인다. 따뜻하고 좋은 위로의 가사도 발라지지 않은 생선 가시처럼 목에 걸리고 만다. 그래서 꿀떡꿀떡 넘어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든 연주곡이다.

지금까지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가 '회피'였는데, 어째서 이 단어가 2025년의 나를 보호해 주었을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회피' 역시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기 때문이다.

회피 속에 담긴 속내

직면하지 않으면 아직 미성숙한 사람이라고, 치사하고 책임감 없는 거라 믿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회피를 너무 미워하지는 말자'라는 쪽으로 마음이 조금씩 기운다.

예상하지 못했던 슬픈 일이 생기고, 가족 중 누군가 갑자기 아프기도 하고 심지어 이별도 겪는다. 하지만 무너지는 마음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쓴다. 호들갑을 떨며 슬픔을 표현한다 해도 그 슬픔이 줄어들지는 않기에, 힘들어하는 내 모습으로 인해 나 아닌 또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기에, 버겁지만 늘 그렇듯 모든 감정은 결국 내 안으로 향한다.

잠깐이라도 눈을 감고 귀를 닫고 평정심을 찾고 싶지만 이미 시끄러워진 생각들은 잠잠해질 기미가 없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불면에 시달리고, 그런 피곤함으로 또 하루를 시작하고, 없는 에너지를 끌어올려 사회생활을 하고 또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돌아와 마음을 추스르며 각자의 해소 방법 뒤로 숨어버린다.

자기만의 해소 방법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그냥 시간을 흘려보낸다. 나만의 힐링 방법을 묻는 말이 가장 당혹스러운 질문일 때가 있었다. 우울함이 나를 잠식하는 순간까지도 우울함을 깨닫지 못했던 그때는 그저 웃었다. '힘든데 왜 괜찮다고 웃기까지 하냐'는 물음에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나의 어둠을 회피하는 방식이라는 걸 그때의 나는 몰랐으니까.

하루하루를 무탈하게 살아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건지. 그랬다면 마음의 맷집이라도 튼튼하게 준비해 두었을 텐데… 대상 없는 누군가가 야속하기만 했다.

직면할 수 있는 용기

마흔이 넘은 이제야 회피도 직면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아이러니하게도 회피하려는 마음이 생기니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게으른 게 아니라 마음이 힘든 나를 보호하느라 깊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걸 이해하며,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무력감보다는 인정하고 받아들일 용기가 조금은 생겼다.

슬프게도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 가운데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게 가끔은 너무도 슬프지만 우리가 신을 찾을 기회를 남겨준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열심히 살던 열심히 살지 않던 시간은 흐른다. 가끔은 친한 친구에게 하듯 나에게도 따뜻한 말 한마디와 친절을 건네길 바란다. 스스로에게 너무 인색한 삶은 나를 성장시키기보다 작은 것 하나도 시작하기 두려워하는 겁 많은 아이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가끔은 회피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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