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의 문화유산 해설... 사투리에 무릎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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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원 기자]
바야흐로 전국 방방곡곡 어느 곳엘 가나 축제가 한창이다. 1년 열두 달 중 '계절의 여왕' 5월과 '천고마비의 계절' 10월, 이 두 달은 말 그대로 대목이다. 지역이 자랑하는 특산물과 문화유산, 빼어난 자연환경, 배출한 위인과 역사 등 축제의 소재 또한 천차만별 다양하다.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 인터넷이나 언론 등을 활용해 홍보하고, 지역의 시민단체들과 협업하여 방문객을 늘리기 위한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테마별 부스 운영은 기본이고, 가족과 연인, 어린이와 어르신 등 특정 대상에 맞춤한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흡사 지역 축제에 사활을 거는 모양새다.
볼거리와 먹을거리, 놀거리와 즐길 거리가 각양각색이지만, 어딜 가나 빠지지 않는 프로그램이 있다. 공연 중심의 전야제와 명사 초청 강연이 그것이다. 축제 기간이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로 긴 경우엔 요일별로 공연과 강연을 여러 차례 늘리기도 한다. 이쯤 되면 공연과 강연이 축제의 메인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지방자치단체가 제작한 홍보물에도 두 프로그램이 얼굴 격이다. 특히 초청 가수와 강사의 사진과 프로필이 한가운데를 차지한다. 공연의 경우, 아무래도 트로트 가수가 대세다(자료사진). |
ⓒ adityachinchure on Unsplash |
공연의 경우, 아무래도 트로트 가수가 대세다. 지역 축제에 흥을 돋우고,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트로트 음악만 한 게 없어서다. 요즘에는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20대 청년층은 물론, 10대 아이들까지도 트로트에 별 거부감이 없다. 트로트의 '찐팬'을 자처하는 아이들도 드물지 않다.
예전 같으면 무대의 객석이 죄다 어르신들 차지였을 테지만, 요즘엔 노소의 비율이 어금버금하다. 사회자가 즉흥적으로 객석을 향해 '개인기'를 요청하면, 스스럼없이 무대에 올라 멋들어지게 트로트 한 곡조를 뽑는 이들도 대개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초청 가수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긴 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름값' 있는 초청 가수는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하거나, 오프닝이라면 한두 곡 노래한 뒤 서둘러 자리를 뜬다. 얼추 두 시간 가까운 공연을 혼자 감당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들에겐 시간이 '금'인 탓이다. 나머지 시간은 함께 초청된, 이른바 'B급' 가수들의 몫이다. 무명 가수일지언정 흥을 돋우는 그들의 '내공' 역시 만만치 않다.
전문성 보다 인기 위주, 유명 유튜버들의 겹치기 출연
대개 공연에는 가수들이 여럿 초청되지만, 강연의 경우엔 강사 한 명이 한두 시간을 오롯이 책임진다. 대중 강연이라는 프로그램 특성상 방문객들의 관심을 끌기가 여간 쉽지 않다. 지역 축제를 다채롭게 보이도록 하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객석이 텅 비어 주최 측과 강사 모두 데면데면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특히 지역의 문화유산이나 인물, 역사를 주제로 내건 축제라면, 학술제의 느낌을 주는 대중 강연은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의 가치를 깨닫자고 해놓고선 매일 흥청거리는 공연과 먹거리 장터만 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누구 말마따나, '머리'와 '가슴', '배'를 두루 채울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축제다.
그런데, 여기저기 지역 축제를 찾아다니다 보니, 어느 곳이든 강연 꼭지마다 안타까운 점이 눈에 띈다. 우선, 주제와 상관없이 초청 강사가 마치 겹치기 출연하듯 동일한 강연이 많다. 대개 내로라하는 인기 유튜버들로,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고려하기보다 사람들에게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는 이유로 초청된 경우다.
방문객 숫자로 축제의 성과를 평가하는 현실에서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강연마저 유명 연예인을 앞세워 팬들 동원하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명색이 공연도 아닌 대중 강연인데, 주제는 온데간데없고 '팬 사인회' 같은 흥청망청 행사로 전락할 수 있다. 강연이 공연처럼 운영되면 게도 구럭도 다 잃게 된다.
또 축제 기간에 여는 일회성 프로그램이어서 자칫 '행사를 위한 행사'라는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아무리 특강 형식이라고 해도, 전혀 균질적이지 않은 다수의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두 시간 만에 주제를 전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속된 말로 '썰'을 풀며 입담 자랑하다 끝낼 수밖에 없는 셈이다.
듣자니까, 전국에서 봇물 터지듯 지역 축제가 생겨나고, 경쟁적으로 방문객 유치에 나서는 건 그걸 지방자치단체장의 치적으로 삼기 위해서라고들 한다. 지역 축제가 차기를 대비한 선거운동의 일환이라며 문제 삼기도 한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을 둔 지역 정치인을 위해 엄청난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고 한다면 억측일까.
▲ 지역을 사랑하고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일 터다(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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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전문인력 발굴해야
제언하건대, 이러면 어떨까. 문화유산과 역사를 주제로 한 축제의 강연이라면, 해당 지역의 역사 교사가 한두 명도 아닐 터, 그들에게 맡기는 거다. 평소 강의를 업으로 삼은 전문성에다 지역의 정서와 말투를 고려해 타지 사람이라면 알기 힘든 'TMI'까지 소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주민이 지역 축제의 주체라는 의미도 작지 않다.
더 바란다면, 보여주기식의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전문가가 주체가 되어 정기적 강연을 여는 것도 좋을 성싶다. 이후 지역 축제 일정에 맞춰 정기 강연을 결산한다면, '행사를 위한 행사'라거나 '돈 먹는 하마'라는 비판을 피할 수 있을 테다. 정기 강연을 해온 지역의 전문가와 서울에서 초빙한 강사와 대담을 진행한다면, 훨씬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 어느 지역 축제에서는 문화유산에 대해 초등학생이 마이크를 들고 설명하는 모습을 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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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무릎을 쳤다. 대상에 따라 해설의 방식과 수준, 심지어 사용하는 어휘조차 달라야 한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아이의 구성진 사투리에 실린 쉬운 해설이 귀에 쏙쏙 박혔다.
하물며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축제라면 마땅히 지역 주민이 운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재정 자립도가 밑바닥인 현실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연예인과 인기 유튜버를 초청하는 관행이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인지 성찰이 필요하다. 요컨대,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행사여야 진정한 지역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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