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쑤셔넣었죠”…한 ‘폭식 브이로그’의 고백 [요.맘.때]
“치킨, 피자, 마라탕에 꿔바로우, 디저트로 케이크랑 과자 폭식까지 했어요.”
각종 음식 사진으로 가득찬 섬네일(대표 이미지)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상의 제목에는 하루 동안 먹은 음식의 종류가 나열된다.
영상 속 인물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방대한 양의 음식을 씹고 삼킨다. 뛰어난 소화력으로 즐겁게 식사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섭식장애를 앓으며 충동적으로 음식을 섭취했다가 자괴감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른바 ‘폭식 브이로그’다.
성행하는 폭식 브이로그는 섭식장애 환자 수의 증가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28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국내 폭식증 환자는 4115명으로 2018년보다 32.4% 늘었다. 이 수치는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은 환자만 집계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폭식증을 경험한 이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폭식증과 폭식장애는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과 함께 대표적인 섭식장애로 꼽힌다. 신경성 폭식증은 식욕 조절이 어려워 많은 양의 음식을 빠르게 섭취했다가 폭식 후 죄책감 때문에 구토나 설사 등 음식을 제거하는 행동을 수반한다.
폭식장애는 식욕 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역시 많은 음식을 먹지만 구토 같은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폭식증과 차이가 있다.
“음식을 ‘먹는다’기보다는 입에 ‘쑤셔 넣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여러 차례 폭식 브이로그를 올린 적 있는 20대 A씨는 ‘폭식하던’ 시절을 이렇게 돌이켰다.
A씨의 폭식 브이로그는 다이어트 강박증으로부터 비롯된 폭식 장애를 고백하는 일이었다. A씨의 폭식은 3년 전 개인운동 수업(PT)에서 극단적인 식단 트레이닝을 받은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두 차례 극심한 폭식의 시기를 보낸 후 다시 체중을 관리하겠다고 마음먹으면서 ‘다이어트 식단 브이로그’를 제작했다.
그렇게 직접 만든 요리와 다이어트 과정 등 일상 그대로를 공유하며 마음을 다잡던 중 폭식장애가 재발했다.
아무 일 없는 듯 평소와 같은 다이어트 영상을 제작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건강한 식단과 다이어트를 주제로 영상을 찍던 유튜버가 갑자기 폭식 사실을 고백하면 기만처럼 보이지 않을까도 걱정됐다.
그러다 자신도 비슷한 상황을 겪는 폭식 브이로그 영상들을 찾아보면서 위로받고 공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용기 내어 음식을 먹는 모습을 촬영하고 편집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심정으로 먹었는지, 그때 어떤 맛을 느꼈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그러면서 부모님과 친구, 회사 동료들에게 폭식 사실을 털어놓으며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먹는 모습을 숨기고, 폭식으로 달라진 외형 탓에 사람과의 만남을 기피했던 날들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가족,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군것질 대신 규칙적으로 든든한 식사를 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의료기관을 찾아 도움을 받기도 했다. 꾸준한 노력 끝에 현재는 적당히 음식을 즐기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A씨는 그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폭식장애를 겪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혼자서는 매우 극복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A씨는 그러면서도 폭식 브이로그를 올리는 것과 폭식 사실을 숨기는 것 중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이었을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다만 자신의 영상에 꾸준히 ‘선한 댓글’을 달아줬던 이들이 큰 힘이 된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폭식증이나 다른 강박증을 앓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A씨에게 공감과 조언을 건네던 이들, A씨가 영상을 올리지 않으면 혹시나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내용 등은 큰 위로였다.
A씨는 “사람은 누구나 여러 요인으로 변화를 겪을 수 있고, 이전과 다른 자신을 마주하게 될 수 있다”면서 “저의 폭식 브이로그 영상을 클릭한 분들 중에도 몸과 마음이 지쳤던 이들이 있다면 위로를 건네고 싶다”고 말했다.
박선영 기자 pom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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