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도 깜짝 놀란, 아홉살 아이의 묵직한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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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연 기자]
아이를 돌보는 일을 시작하면서, 영화 <곡성>의 대사 "뭣이 중한디"가 생각난 건 어째서일까. 일을 하기까지 7전 8기는 아니라도, 5전 6기 쯤은 될 것 같다. 면접 보고 떨어진 것 뿐만 아니라 몇 군데 지원한 곳에서 연락이 안 온것까지 포함하면 7전 8기일수도 있겠다. 이쯤 되니 자신만만했는데 왜 안되는지 알고 싶긴 했다. 결국 일하기로 한 곳에서는 하기로 했던 분이 취소되면서 연락이 왔다.
사실 대학에서 아동에 대해 공부하고 보육 교사와 정교사 자격증이 있긴 하지만 아이에 대해 제대로 배우게 된 건 부모가 되고 부터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지식이 가슴으로 내려와 몸으로 체득 되어 진짜 내 것이 되는 시간이었다. 나와 아이의 눈물과 콧물, 갈등와 화해, 행복과 불행이 뒤섞인 실타래를 풀어가며 아이라는 존재를 알아갔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보여지는 것 뿐만 아니라 그것의 보이지 않는 곳과 밑바닥까지 겪어봐야 하는 것이기에, 그저 활자로 아는 앎은 온전한 앎이 아닌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부모 입장에서 전공이니, 자격증이니 하는 이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아이들을 돌본 경험이 있는지, 그 나이 또래의 대해 얼마나 능숙 한지가 중요하지 않았을까. 여기저기 내민 나의 이력서를 들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진다. '뭣이 중한지' 몰라도 한참 몰랐던 것이다.
9살 아이와 함께 한 하루
돌보게 된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다. 이제 1학년 신입생의 딱지를 막 떼어냈지만 여전히 귀여움을 벗지 못한 저학년이다. 이 아이와의 일과는 피아노 학원에서 만남에서 시작된다. 피아노 학원 창문으로 내 얼굴이 보이면 아이는 살포시 웃는다. 아이와 집으로 오면서 횡단보도에서 아이 손을 잡았다. 작고 보드라운 손이 한 손에 쏙 들어온다. 큰 아이가 어릴 때 손을 잡으면 작은 손에 힘을 주며 "엄마 꽉 잡아"라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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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를 돌보는 하루. |
| ⓒ bozu on Unsplash |
두 번째 날이 되니 아이는 조금 익숙해졌나보다. 책을 읽다가 나에게 기대었다. 그리고는 내 머리를 만지면서 예쁘게 빗겨주겠다고 한다. "예쁘게 부탁드려요. 잘해주시면 또 올게요"라고 말했다. 머리를 빗기고 똑딱삔을 꽂아주고, 헤어밴드로 머리를 묶어주었다. 거울을 보면서 "어머나 새로운 스타일이네요 마음에 쏙 들어요"라고 말했더니 삔을 빼지 말고 집에 꼭 하고 가야 된다며 못을 박는다.
블록 놀이를 하면서 집이 떠나갈듯 웃고, 장난을 친다. "00이가 아주 장난꾸러기 였구나"라고 했더니 "제가 장난치는 건 적응했다는 뜻이에요"라며 어른스러운 말을 한다. 아이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까 깜짝 놀랐다. 내가 어른이 되어 알게 된 사실을 9살짜리가 알고 있다니. 자신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서 9살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블록을 가지고 놀다가, '묵찌빠'를 하다가, 빙고를 하고, 역할 놀이를 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지고 밖에 불빛이 선명하게 보인다. 오랜만에 몇 시간을 9살이 되어 놀았다. 피곤이 몰려올 즈음 어머님이 오셨다. 나와도 잘 놀았는데 엄마를 보더니 뛰어가서 "엄마, 엄마"하며 매달린다. 어른스럽게 말해도 여전히 아이구나 싶었다. 적응했다고 해도 엄마가 아닌 남과 같이 있으면서 자기도 모르는 불편함이 있었으리라.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편해지겠지.
집에 돌아오면서 몇 살이냐며 몇 번이나 물어보고 장난치던 아이 생각에 미소가 지어진다. 돌봐야 하는 아이가 생기니 관심이 생기고 마음이 쌓여간다. 아무 조건없이 잘 되기를 바라는 존재가 한 명 더 늘었다. 내 안에 순수의 마음을 넓혀주는 존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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