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이 길, 조합원들과 당당히 헤쳐나가겠습니다"
[임용현]
충남 서산에 생산공장을 둔 동희오토는 기아자동차로부터 '모닝', '레이'를 외주 위탁받아 생산하는 완성차 1차 하청 제조업체다. 외주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친 2000년대 초반, 납품형 외주 하청 전문사의 등장은 국내 자동차 제조업의 판도를 재편했다. 원가 절감과 생산성 극대화, 노동법 규제 회피라는 세 가지 난제에 직면한 원청 자본은 OEM 생산방식이라는 묘수를 동희오토에서 꽃피웠다.
1230여 명의 생산직 노동자들이 전부 비정규직인 현장에서 20년째 민주노조 깃발을 지키며 활동 중인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동희오토분회 심인호 분회장을 만나 지난 여정과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4월 16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작업장 민주주의 불모지에서 일궈 낸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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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4.16. 새움터 사무실에서 만난 동희오토분회 심인호 분회장. |
|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2020년 9월 동희오토를 상대로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2023년에는 기아차지부 산하로 편제됐다. 동희오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진짜 사장' 현대기아차 자본과 교섭할 수 있는 교두보가 놓인 것이다.
"작년(2025년) 하반기부터 조합원들과 일상적인 소통 채널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개설했어요. 익명 소통방이다 보니까 우리 조합원들 말고도 현장 주체 형성에 힘을 보태겠다는 조력자들도 지역 민주노조 활동가들 중심으로 여럿 들어왔었거든요. 그런데 작년 가을에 이 소통방의 존재가 사측에 발각되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가 났어요. 업체 관리자들이 개별 면담을 진행하는가 하면, (누군가 익명으로) 직접 소통방에 들어와서 물을 흐리기도 했었고요. 경험 있는 지역 활동가들이랑 우리 조합원들이 용케 잘 막아냈어요."
온라인 공간이었지만, 조합원들과 지역 연대 동지들의 의연한 대처로 작은 전투에서 싸워 이긴 경험은 오랜 기간 서슬 퍼런 감시와 통제 아래 숨죽여 지내 온 조합원들의 자신감을 한껏 끌어올린 사건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싸움의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2025년 크리스마스에 사측이 특근 계획을 잡은 게 도화선이 됐다. 노조 측은 이 계획이 "일방적"으로 잡혔다는 입장이다.
"그때 당시만 해도 육아휴직 등으로 결원이 발생해도 대체인력을 안 뽑아줬어요. 안 그래도 높은 노동강도 때문에 현장에선 '죽겠다'라는 말을 다들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는데. 회사는 이런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리수를 둔 거죠. 현장에서 반발이 거세니까 결국엔 특근을 취소시킬 수밖에 없었어요."
크리스마스 특근 저지는 조합원들의 저력을 체감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현장의 힘으로 사측의 특근 계획을 무위로 돌려낸 그 무렵, 분회 조합원은 200명에 육박했다. 사측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제 사측도 현장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거겠죠. (노조 입장에서는) 올해 새해 연휴 마치자마자 조직적인 탈퇴 공작이 시작됐다고 봅니다. 현장에 민주노조 가입 바람이 좀 일기 시작하니까 가입자를 찾아내고, 관리자 면담 등의 방법으로 탈퇴를 종용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니 당연히 위축되는 조합원들도 생기는 거죠. 그래서 한때 조합 탈퇴서가 물밀듯이 쏟아진 적도 있었고요."
CCTV 설치에 하청업체 대표, 관리자들이 움직이는 것은 노조 와해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노조 측의 판단이었다. 분회도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다행히 업체 사장 등이 면담에서 노조 탈퇴를 종용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조합원들의 녹취 기록이 확보됐고, 분회는 이를 근거로 고용노동부 서산지청에 현장 조사를 요구하고, 언론사에도 관련 사실을 제보했다.
"노조는 하청업체들의 이런 행위가 사실상 원청 동희오토의 의지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11개 업체가 동시에 전방위적 탈퇴 공작에 나섰고, 평소 근태관리에 엄격한 공장에서 근무시간 중 탈퇴 면담이 이뤄졌으며, 원청 공장에 CCTV가 설치됐다는 점에서다. 하청 사장들이 "민주노총 노조가 들어오면 계약이 해지된다"고 읍소한 점도 유력한 정황이다. 동희오토에선 2005년 민주노총 노조 설립 때도 노조 조합원들이 전부 해고된 적이 있다. 원청 동희오토는 입장을 묻는 한겨레21에 답변하지 않았다."
- <한겨레21>, '화장실 문 벌컥 열어 노조 감시하는 그 회사, 동희오토', 2026-02-20 보도
안전보건 교섭에는 노동강도와 인력 배치도 포함돼야
그동안 동희오토분회는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다수 노조가 교섭권을 독점하는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에 가로막혀 노조 설립 이래 원청과 마주앉을 기회를 한 번도 갖지 못했다. 교섭대표 노조가 동희오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에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현장의 불만이 쌓여 갔다. 동시에, 개정 노조법의 시행과 맞물려 소수 노조인 동희오토분회가 처한 이 같은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도 무르익었다.
"1월 중순에 금속노조가 현대·기아차 등 원청 자본을 대상으로 교섭 요구안을 일제 발송했었습니다. 그때 동희오토 원청에도 교섭 요구 공문을 보냈는데, '우리는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원청 지위에 있지도 않거니와 교섭을 요구한 사내하청노조(동희오토분회)는 당사 직원이 아니'라는 답이 왔어요. 전에는 저희가 공문을 보내도 매번 무시하더니 이번에 처음으로 회신이 온 거잖아요. 그래도 반응이 왔다는 것만으로도 좋더라고요 (웃음)."
4월 9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동희오토분회가 제기한 교섭 단위 분리 신청을 인용했다. 이번 결정은 충남지노위가 동희오토 원청을 하청노조의 교섭 상대로 인정했다는 점, 나아가 상급단체가 다를 경우 교섭 단위 분리가 가능하다고 본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심 분회장은 밝혔다.
"원청 등은 이번 노동위원회 결정이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의제로만 한정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원청의 책임 범위를 최대한 좁히려는 게 저들 속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산업안전 의제가 화재, 폭발, 끼임 등 사고성 재해 예방에만 한정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동희오토 현장엔 골병이 만연합니다. 생산 차종도 늘었고 설비 확충도 해서 이제 1년에 27만 대까지 완성차를 납품할 수 있는 생산 체제를 갖췄는데, 도리어 인원은 자꾸 줄이는 거예요. 지속적인 인력 감축, 살인적인 노동강도 때문에 하청 노동자들이 결국 골병드는 거잖아요. 이런 의제들도 안전보건 문제고 원청의 책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동희오토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1·2심 모두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져 불법파견이 인정되지 않았다. 충남지노위의 교섭 단위 분리 결정에도 불구하고, 원청이 동희오토분회와의 교섭에 순순히 응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럼에도 심 분회장은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이 길"을 변화를 갈망하는 조합원들과 함께 당당히 걷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원청 교섭과 현장 조직화, 어느 하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 천신만고 끝에 초석을 다진 만큼 앞으로도 거칠 게 없다는 그의 말에 자신감과 결연함이 묻어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5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임용현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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