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오태규 2024. 10. 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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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사람들] 윤석열 외교 전략에 드리워진 그림자,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윤석열의 사람들’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핵심 인사들의 역할과 이들이 주도한 정책을 분석해 그에 따른 문제점과 사회적 파장을 조명하는 기획입니다.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된 이들이 빚어낸 국정 난맥상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탐구하고 그 대안을 모색합니다. <편집자말>

[오태규 기자]

 9월 6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환담하고 있다.
ⓒ 대통령실
#장면1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9월 6일 서울에서 12번째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윤 대통령 집권 후 28개월 동안 거의 두 달에 한 번꼴로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더 놀라웠던 건 퇴임을 한 달 남긴 '막차 총리'에게 '졸업 선물'을 안기는 듯한 '과공 외교'였습니다.

두 정상은 이날 두 차례에 걸쳐 소인수 회담과 확대회담을 했습니다. 소인수 회담은 정상 외 핵심 측근 2~3명만 배석하는 형식이라 배석자를 보면 회담의 관심사가 무엇이고 누가 그 분야 실세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윤 정권 들어 소인수 회담의 한 자리는 김태효 안보실 제1차장의 지정석이 됐습니다. 거의 모든 소인수 정상회담에 그가 빠짐없이 들어갑니다.

12번째 한일 정상회담의 소인수 회담에도 김 차장은 조태열 외교부 장관, 신원식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배석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무라이 히데키 관방 부장관(정무 담당), 아키바 다케오 국가안전보장국장(외무성 사무차관 출신), 시마다 다카시 총리 비서관(경제산업성 출신 에너지 전문가)이 들어갔습니다.

일본 쪽은 내정과 외교를 담당하는 인물이 고루 들어갔지만, 한국 쪽 배석자 3명은 모두 외교 안보의 인물입니다. 특히, 안보실에서 1인자와 2인자가 동시에 배석한 것은 2인자가 실세라는 점 말고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 [쏙쏙뉴스]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정권 2인자' ⓒ 최주혜

#장면2

윤 대통령은 8월 13일 여름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국가안보실장을 교체했습니다. 228일 근무한 장호진 실장을, 임명 뒤 310일밖에 되지 않은 신원식 국방부 장관으로 바꿨습니다. 초대 김성한 실장, 2대 조태용 실장, 3대 장호진 실장에 이어 집권 2년 3개월 만에 무려 4명의 안보실장을 기용한 겁니다.

안보실장이 세 차례 바뀌는 사이 그 밑에 차장들도 줄줄이 교체됐습니다. 하지만 4명의 안보실장이 부산하게 오가는 와중에도 유독 김태효 차장만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습니다. 윤석열 정권 초부터 김태효가 '사실상의 안보실장'이라는 말이 파다했고, 이번 인사가 그것을 확실하게 확인해 주었습니다.

한 외교·안보 분야 원로가 "안보실장은 정신없이 바뀌는데 그 밑인 1차장은 실세 소리를 들으며 자리를 지키면 그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겠나"라고 한탄했다는데, 임명권자인 윤 대통령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 모양입니다. '4명의 안보실장-1명의 1차장' 체제는 윤 정권의 외교가 조직이나 시스템이 아니라 김태효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장면3

노무현 정권 때 통일 부총리를 지낸 정동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9월 10일 국회 외교·통일 분야 대정부 질문에 나섰습니다. 친일 외교·이념 외교를 주도하고 있는 김태효의 문제를 한덕수 총리에게 조목조목 지적하며 파면 건의를 주문했습니다. 전체 20분 가운데 4분의 3을 김태효 문제에 할애한 '맞춤형 질의'였습니다.

한 총리와 정 의원이 15분 정도 문답하는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김태효'라는 이름 석 자를 한 총리가 끝까지 피했다는 사실입니다. 정 의원이 그가 한 언행과 주장을 열거하며 그의 이름이 누구이고 어디에 근무하느냐고 추궁하는데도 한 총리는 '그분'이라는 대명사로만 답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윤 정권의 2인자인 한 총리도 함부로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사람이 김태효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한 총리는 '그분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점만 되풀이했습니다. 마치 대통령을 대하는 자세를 연상케 했습니다. 정 의원은 질의 마지막에 "직급은 차관급이지만 영향력은 정권의 2인자라고 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날 한 총리의 답변 태도는 이를 역설적으로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 세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김태효가 윤 정권의 외교·안보 실세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더욱 중대한 문제는 그의 이런 위상과 영향력이 과연 좋은 방향으로 행사되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외교 실세' 김태효의 성적표는 낙제점
 5월 30일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 관해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금까지 펼쳐 온 외교·안보 분야 성과만을 놓고 보면, 윤 정권 외교의 설계자이자 집행자로 불리는 김태효의 외교 성적은 낙제점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글로벌 중추 국가'를 외교의 대표 상품으로 내세우지만, 전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참패가 글로벌 중추 국가가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준 대표적인 예입니다.

글로벌 중추 국가 노릇을 하려면 한국을 따르는 친구 나라들이 많아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글로벌 왕따'임이 드러났습니다. 대통령이 코피를 흘려가며 백여 개 국가와 정상과 만나 지지를 호소했다지만, 경쟁국인 사우디가 119표를 몰아가는데 한국 편은 29개 나라에 불과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의 종식, 기후 변화 대책 등이 지금 가장 뜨거운 국제 이슈입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목소리를 내고 활동하기는커녕 스스로 그런 자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9월 10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9차 유엔총회에서는 세계 주요국 정상들이 대거 참석해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과 레바논 공격에 대한 견해와 해결책을 내놓았습니다. 곧 퇴임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기시다 일본 총리도 참석했지만, 윤 대통령의 모습은 없었습니다. 그는 유엔총회 기간에 국제 이슈보다는 원전 수출 영업차 체코를 국빈 방문했습니다.

지난 6월 중앙아시아 3국(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을 순방할 즈음에도 스위스에서 세계 수십 개국의 정상 등이 참석한 '우크라이나 평화 정상회의'가 열렸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 회의에 눈길도 주지 않고 바로 귀국했습니다. 이런 사례만 봐도 윤 정권이 내거는 '글로벌 중추 국가'의 허구성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9월 20일(현지시간)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오른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프라하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한·체코 비즈니스포럼에 참석해 행사 시작 전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둘째, 다변화·다극화하는 세계 정세를 외면하고 미국·일본 추종의 이념 편향 외교로 외교적·경제적 고립을 자초했습니다.

미-중 패권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에 대한 세계 각국의 실리 중심 자세, 브릭스(BRICs)의 급성장에서 볼 수 있듯 미국과 서방의 영향력은 점차 약해지고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 브릭스가 아직 미국을 앞질러 주도권을 행사할 정도는 아니지만, 미국의 말 한마디에 세계 각국이 꾸벅하고 따르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런 추세가 점차 강해져 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세계 정세는 실용 외교, 실리 외교, 유연 외교가 필요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태효가 주도하는 윤 정권의 외교는 이념과 진영 외교라는 역방향으로 내달리고 있습니다. 일본의 역사 부채를 일방적으로 사면해 준 친일 외교, 그를 발판 삼아 몰아치고 있는 한미일 삼각 안보동맹의 추구, 반중국-반러시아-반북한 외교가 윤 정권 외교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본의 '역사 부채' 사면해 주고 자위대 한반도 진출 앞잡이 노릇

그 결과 북한을 억제할 수 있는 물리력이 보강됐을지 모르지만, 잃은 게 너무 많습니다. 더욱 안보 위협을 느끼게 된 북한이 러-일 군사동맹의 복원으로 맞서며 한반도 정세는 더욱 불안해졌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압박하려는 미-일의 선봉대 역할을 자임하면서, 그간 중국에서 얻던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잃고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에 등을 돌림으로써 통일과 한반도 평화 구축 과정에서 두 나라의 협력을 얻기가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가장 위험하고 애통한 것은, 일본의 역사 부채를 사면해 주는 대가도 받아내지 못한 채 일본군(자위대)이 한반도에 다시 발을 들여놓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자초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김태효가 일본의 '사죄 피로증'과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사이, 한미일 3국 국방장관이 역진 불가능한 한미일 '3자 안보협력 프레임워크 협력 각서'라는 비밀 협정을 맺은 식으로 말입니다. 문재인 정권 때 강력하게 반대했던 독일의 유엔군사령부 정식 회원 가입이 최근 성사된 것도 일본을 회원국으로 초청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윤 정권이 벌이고 있는 모든 주요 외교·안보 전략과 행위에는 김태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김태효가 가진 힘의 원천이 윤 대통령과 '특수 관계'라는 건 이제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그의 아버지 김경회는 윤 대통령의 특수부 검사 20년 선배이고, 그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부터 같은 아파트 주민이자 술친구입니다.

윤 대통령과의 관계 뒷배 삼아 극도의 친일 드라이브
 2017년 12월 5일 이명박 정부 '안보실세'로 불린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이 군 사이버사령부 정치개입 관여 의혹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있다.
ⓒ 이희훈
김태효는 이명박 정권 시절 대외전략기획관으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비밀리에 체결하려다 들통이 나면서 물러났고, 2022년에는 군사기밀 유출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까지 받은 범죄자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김태효를 사면까지 해주면서 외교 실세로 부활시켰습니다.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한 최악의 인사입니다.

한마디로 그의 정책 성향은 요약하면 '극도의 친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대통령실에 밀정이 있는 것 같다"고 할 정도로 그의 친일 성향은 이미 널리 정평이 나 있습니다.

일본의 전후 방위 정책에 관한 연구로 미국 시카고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그는 일본 우파 진영에서도 일찍부터 친일 학자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2009년 이명박 정권의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으로 재직할 당시 일본에 보탬을 주는 차세대 학자들을 골라 수여하는 '나카소네상'을 받았습니다. 다른 나라의 현직 관료가 이 상을 받은 것은 그가 유일합니다.

김동춘 전 성공회대 교수는 최근 시민언론 <민들레>의 칼럼에 "일본 문부성 장학생 김태효가 용산 대통령실에 들어가 현재의 친일 일변도의 대일정책을 집행하는 것이야말로 일본 입장에서 보면, 천배 만배 남는 장사가 되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라고 썼습니다. 그의 친일 성향과 일본의 조직적 지원이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 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한일 관계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는 2025년에 나쁜 방향으로 큰 변곡점을 맞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양국의 정권이 이미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계기로 미래지향적인 약속을 담은 공동문서를 발표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물밑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이은 제2의 공동선언을 만들겠다고 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른 '친일 선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1998년 선언은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통절한 반성과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라는 두 기둥이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2025년에 나올 선언은 그동안 윤 정권이 추진해 온 대일정책으로 볼 때 과거사 반성이 빠진 일방적인 미래 협력과 안보 협력을 강조하는 내용이 될 소지가 큽니다.

극도의 친일 성향, 일본과 안보 협력, 한미일 안보 강화를 신조로 삼고 있는 김태효가 버티고 있는 한 불문가지입니다. 그가 대외정책을 주도하게 놔두는 한 한국은 다변화·다각화하는 국제정세에 유연하게 대응하기는커녕 더욱더 이념과 진영 외교의 늪으로 빠질 게 뻔합니다.

여태껏 봐왔던 것처럼, 그 결과는 안보 불안과 국제적 고립, 경제난 심화라는 삼중고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김태효의 교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외교정책을 대전환해야 합니다. 그 핵심에 바로 김태효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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