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궁 수련자가 본 '왕사남' 속 단종의 활쏘기 실력

김경준 2026. 2. 2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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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활을 잘 쐈는지 알 수 없지만 무인적 기질은 기록... 매년 영월서 단종문화제 기념 궁도대회도 열려

[김경준 기자]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아래 '왕사남')가 연일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19일 현재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왕사남>은 누적 관객 수 400만 명을 돌파했다. 손익분기점인 260만 명을 훌쩍 넘는 성과다.

<왕사남>은 계유정난으로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어린 왕, 단종 이홍위(박지훈 분)와 그의 최후를 지킨 엄흥도(유해진 분)의 이야기다. 박지훈, 유해진, 유지태 등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에 힘입어 단종의 비극적 최후를 잘 드러냈다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단종은 실제로 활을 잘 쏘았을까
 활을 쏘는 단종(박지훈)의 모습
ⓒ ㈜쇼박스
이번 영화에 '활'이 주요 도구로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전통 활쏘기(국궁) 수련자로서 개봉 전부터 기대가 컸다. 영화 촬영 기간, 주연배우들이 국궁 사범까지 두고 전문적으로 지도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활쏘기 장면이 어떻게 묘사될지 궁금했다.

실제로 영화에서 활은 단종의 남다른 담력과 용력을 드러내는 도구로 등장한다. 갑작스러운 호랑이의 습격으로 청령포 마을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단종은 전광석화와 같은 활쏘기로 호랑이를 제압하며 마을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안겨준다. 그리고 이 사건은 단종과 마을 사람들이 서로의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된다.

단종이 빈 활을 당기며 자세를 연습하는 장면도 남다른 의미로 읽혔다. 영월에 유배된 뒤 곡기도 끊은 채 방에 틀어박혀 하루 하루 죽을 날만 기다리던 유약한 소년이, 다시 삶의 의지를 회복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다가왔다. 종국에 가서 활은 단종의 운명을 결정짓는 도구가 된다.

단종 역을 맡은 배우 박지훈의 활쏘기는 단기간 교육을 받았다고는 믿기 힘들만큼 훌륭한 자세였다. 그의 교육을 맡았던 국궁 사범도 자신의 SNS에 "첫 시간부터 궁체(활 쏘는 자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성인 남성에게서 쉽게 보기 힘든, 부드러우면서도 흔들림 없는 안정된 자세가 첫 수업부터 나오는 걸 보며 감탄했다"며 박지훈 배우의 남다른 습득 능력을 칭찬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실제로 단종은 활을 잘 쏘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알 수 없다. 단종의 활 솜씨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현재로선 <조선왕조실록>이 유일하다시피 하다. 그의 무인적 기질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 이 실록에 남아 있다.

1454년(단종 2) 10월 모후(임금의 어머니)였던 현덕왕후가 잠든 소릉(昭陵) 제사 후 단종은 수리산, 청계산 등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환궁 후 2주 만에 또다시 사냥을 나가려다 사간원의 제지를 받는 일이 있었다. 또 실록에는 단종이 신하들의 활쏘기를 관람했다는 기록도 자주 등장한다.

반면, <단종실록>에서 그의 활 솜씨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단종의 활쏘기, 의도적 누락은 아니었을까

이와는 대조적으로 <세조실록>은 초장부터 세조의 활 솜씨를 극찬한다. 실록이 전하는 세조의 활쏘기와 관련한 일화 한 토막.

1432년(세종 14) 6월 세조(당시 수양대군)가 금성대군 등 여러 종친과 더불어 활쏘기를 겨뤘는데, 이때 세조가 백발백중하니 양춘무(楊春武)라는 이가 곁에 있다가 "국내 제일가는 명수"라며 감탄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어 해당 실록은 아래와 같이 전한다.

"세조가 또 일찍이 경회루(慶會樓) 못 남쪽에 조그마한 과녁을 설치하였는데, 물을 사이에 두고 있어 그 거리를 잴 수 없었으나 종일 쏘았지만 한 개의 화살도 물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세조가 지은 '사후시(射侯詩)'도 소개한다.

"굳고 강한 활시위 늦출 줄 모르고
신묘(神妙)한 공(功)은 굳센 힘에 있도다.
어김 없는 화살 빗긴 햇살 띠우니
마냥 한가한 영웅(英雄)의 뜻일진저."

"나뭇잎 뚫는 것, 신력(神力)이라 이를손가?
조그만 털 끝인들 그 어이 못맞힐소냐?
경사(經史)를 논하던 겨를에
쏜 탄환이 빗긴 햇살 띠우네."

심지어 형이자 단종의 아버지였던 문종이 세조에게 활을 내려주며 남겼다는, 그의 활 솜씨를 칭송하는 듯한 시까지 싣고 있다.

왜 <세조실록>의 편찬자들은 세조의 활 솜씨를 강조했을까. 주몽 신화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의 영웅 설화에서는 영웅의 기이함을 드러내는 징표가 바로 뛰어난 활쏘기 실력이었다.

특히나 조선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가 신궁이었기에, 뛰어난 활 솜씨는 태조로부터 내려오는 조선 국왕으로서의 유전적 정통성을 이어받았음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결국 찬탈 세력들은 취약한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 유달리 세조의 활쏘기를 강조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반면 단종의 활 솜씨에 대해서는 성군으로서의 자질을 감추기 위해 찬탈 세력이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단종을 추모하는 국궁계
 궁도대회에서 활을 쏘는 선수들의 모습
ⓒ 김경준
영화 개봉 후, 한 지도 어플에서는 남양주 광릉(세조 무덤)의 후기란에 별점 테러가 쏟아졌다. 너무 많은 욕설이 쏟아진 탓에 한동안 리뷰를 볼 수 없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반면 단종이 잠든 영월 장릉의 후기란에는 단종에 대한 추모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단종에게 쏟아지는 현대인들의 애틋한 마음들을 보면서, 가엾은 삶을 살아야만 했던 소년 임금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반인들은 잘 몰랐던 사실이겠지만, 국궁계에서는 이미 단종을 추모하기 위한 활쏘기 대회를 열고 있다. 단종이 마지막 삶을 보낸, 그리고 지금도 잠들어 있는 영월의 한 국궁장(금호정)에서 매년 봄이면(4월) 단종문화제 기념 궁도대회를 개최하고 있는 것이다.

<왕사남>을 보고 마음이 먹먹해진 나 역시 올해는 어떻게든 짬을 내어 대회에 참가할 생각이다. 마음 편히 활 한 번 쏠 수 없었던 소년 이홍위를 추모하며, 그를 위한 한 발의 화살을 날려 보내리라.

덧붙이는 글 | 김경준 기자는 국궁 에세이 <살짜쿵 활쏘기>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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